“YTN 해직 사태 8년, 슬픔과 분노가 일상화 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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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해직 사태 8년, 슬픔과 분노가 일상화 된 시간”
[인터뷰] YTN 임장혁·권민석 기자, 그들이 없던 8년을 말하다
  • 구보라 기자
  • 승인 2016.10.06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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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08년, 대통령 특보 출신의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다가 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조승호, 정유신, 현덕수 총 6인의 기자가 해직됐다. 이후 다른 방송사에서도 이어진, 정권의 언론장악의 시작이라고 평가받는 그날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2016년 10월 6일, YTN 해직사태 8년을 맞았다. 누군가는 “YTN 해직사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냐”며 놀라는 긴 시간 동안 변화는 있었고, 또 없기도 했다. 2014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통해 3인의 해직기자들(권석재·우장균·정유신)은 회사로 돌아갔지만, 3인(노종면·조승호·현덕수)의 기자들은 여전히 ‘해직기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PD저널>은 YTN 해직사태 8년을 맞아, 해직 기자들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며 해직 빼고는 다 당해봤다는, 그리하여 ‘투쟁의 화신’으로 불리는 임장혁 기자(1995년 입사)와 해직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던 2008년 2월에 입사해 해직 사태 이후의 YTN의 모습을 지켜본 권민석 기자를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노조 사무실에서 만나 ‘그들이 없던 8년’에 대한 소회를 들었다. 이들은 인터뷰 내내 지난 8년 동안 “취재와 보도에 대한 능동적 의지가 사라진” 분위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YTN 권민석, 임장혁 기자(사진 왼쪽부터)가 YTN 해직사태 8년을 하루 앞둔 10월 5일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헌

- 해직사태 이전의, 그리고 해직사태 직후의 YTN은 어떤 모습인가.

임장혁 YTN 해직사태가 있기 직전 5년 동안은 취재와 보도의 한계가 사라지고 구성원 저마다의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던 시기였다. 2002년 보도 책임자 선출방식이 변화하면서부터였다. 심지어 2002년부터는 연 매출도 지속적으로 오르고, 시청률도 상승세였다. <돌발영상>으로 많은 국민에게 주목을 받고, 특종 보도로 상도 받던 시절이었다. 이 얘기는 다 낙하산 사장이 오기 전의 얘기다.

권민석 회사에 열정을 가지고 다녔던 시절이 있다. 언론사에서 모든 보도에 걸쳐 진보성과 뚜렷한 논조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다만 어느 하루 나는 ‘의무방어용 리포트’를 내보내더라도, 동료들의 또 다른 좋은 보도들이 존재할 때 “이 정도 콘텐츠를 내보낼 역량이 있다면, 이 회사에 충분히 내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무언가는 필요하다. 

이런 대리 만족들로 서로를, 그리고 조직을 묶을 수 있는 거다. 지금 당장 자신이 못 했더라도, 딴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있는, 그래서 언젠가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입사 초기만 해도 나에겐 ‘우리 회사에선 저런 보도가 나간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 2008년 YTN 해직사태 이후 어떤 점들이 변했다고 보나?

임장혁 낙하산 사장이 들어오면서 보도 방향이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들에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왔다. 예상된 상황이긴 했지만, 당시 보도 결정자들은 낙하산 사장이 하자는 대로 기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보도 방향을 정했다.

그래서 맞서 싸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토론과 논쟁에서 끝나지 않고, 회사 차원의 징계와 처벌로 이어졌다. 그리고 데스킹 과정에서 의사소통 과정이 축소됐다. 데스크의 지시로 제목이나 기사 첫 문장부터 바뀌기도 하고, 과거엔 기사로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정권에 일방적인 칭찬 멘트까지도 뉴스에서 버젓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례로 대통령의 해외순방과 관련해 보도하면서 ‘매력적인 대통령의 진가를 발휘했다’ 등의 멘트(▷링크)가 있었는데, 이런 멘트가 무슨 문제냐는 태도다.

권민석 처음엔 보도 부분에서 엄청나게 싸웠다. 물론 누군가는 무책임한 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정말 ‘주어진 여건과 환경 아래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봤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들이받고, 때로는 유하게 얻어낼 것들을 얻어냈다. 그런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가 너무 힘든 시간들이 이어졌다.

임장혁 우리가 낙하산 사장을 반대한 것은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8년 우리가 우려한 상황들이 현실이 됐다. 이제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는 방향대로 보도가 이뤄진다는 우려가 (현실로)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됐다. 구성원들 스스로가 자기 검열과 체념, 방관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권민석 앞서 말한 YTN 보도에 대한 자부심은 사라졌고, 점점 더 자기 검열의 멍에에 갇혀서 취재와 보도에 대한 능동적인 의지를 상실했다. 추동성을 상실했다고 보면 될까. 어떤 걸 하고 싶다가도 내가 이런 회사에 열정을 바쳐서 무엇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동반 하향 평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YTN 임장혁 기자 ⓒ김성헌

- YTN 보도국 내부의 만연한 현상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한다면?

임장혁 현재 YTN은 YTN이 할 수 있는 보도를 안 하고 있다. 보도 결정권자들이 남들이 하는 걸 하나라도 안 하면 안 된다는 조급증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보다 타 매체가 먼저 보도를 하면, 기사의 방향성, 팩트(사실) 취재와 보강에 대한 고민 없이 후배들에게 ‘기사 하나 말지’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냥 대충 빨리 하나 내보내라는 뜻이다. 창의성과 자발성이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소위 말하는 ‘물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만의 보강 취재를 한다거나 심층 보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기자의 마음 속에 하고 싶은 취재가 뭉클대더라도 ‘빨리 말아라’는 지시가 오면 거기에 진이 빠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타 언론에서 한 보도를 YTN이 바로 하지 않는다 해도) ‘YTN은 왜 보도가 늦지? 안 하지?’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YTN만이 설정할 수 있는 방향성을 실종시키고 취재를 밀어붙이는, (다른 언론을) 따라하기에 급급한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게 가장 문제라고 본다.

권민석 언론사란 어떤 존재일까를 종종 생각한다. 사회의 문제들과 이슈에 대해 감시해주고, 관찰해주길 바라는 대중의 그런 욕구들을 맡아두고 있는 곳 아닐까. 기자를 희망할 때도, YTN에 입사했을 때도, 이런 언론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YTN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데 마음이 아프고, 이런 상황이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임장혁 사실 YTN은 (이전부터) 전체적인 보도방향에서 기계적 중립이나 양비론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돌발영상> 등을 통해 다른 노력들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2004년에 노종면 선배(해직기자)가 나를 <돌발영상> 후임으로 지정했을 때 거부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돌발영상>이 그전까지 정치부를 출입하면서 느꼈던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정당을 출입하면서 느낀 절망감이 있다. 여야로 나뉜 출입처 기자들이 저마다 (출입처에서) 들은 내용만 보도하면서 결국 알리고자 했던 내용이 왜곡되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돌발영상>에서는 하나마나 한 얘기가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줬다. 그런데 YTN은 지금 (<돌발영상>을 폐지하고) 기계적 중립의, 무색무취의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라면 (혹시 누군가에게) 편향적으로 보이더라도, 잘잘못은 반드시 따지며 진실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YTN 권민석 기자 ⓒ김성헌

- 뉴스 보도 외 다른 콘텐츠들이 부쩍 늘었다.

권민석 YTN의 본질은 뉴스라고 생각한다. 뉴스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이외의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 회사는 뉴스가 아닌 프로그램들에 너무 많은 인력과 시간과 제작비를 투입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그렇다.

임장혁 회사에서는 YTN 콘텐츠의 다양화, 외연 확장 등의 측면으로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들을 제작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왜 이런 걸 해”라는 단순한 거부감으로 다양한 콘텐츠 제작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필요한 보도의 맥을 끊는다면 문제가 있지 않나.

-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내 분위기도 많이 변했을 것 같다.

권민석 물론 언론사도 회사다. 하지만 언론사는 기본적으로 회사 이전에 언론사다. 회사의 속성은 명분이 아닌 생존을 나누는 곳인데, YTN은 해직사태 이후 명분을 나누던 곳에서 생존을 나누는 곳으로 바뀌었다. (언론사가 아닌) 일반 회사와 다름없어진 거다.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다 보니 구성원들도 원자화 됐다. 각자의 유대감도 약해지다 보니 자기 일만 하게 되더라.

그리고 확실히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걸 느낀다. 시간이 많이 흐르다 보니, 해직사태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YTN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도 대의명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 일로 여기는 정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임장혁 가끔 후배들과 YTN 해직사태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가 있다. 하지만 해직사태 이후 입사한, 이 문제를 직접 체감하지 못한 후배들에게는 공자님 말씀이 돼 버린다. 아무리 이해하기 쉽게 말하려 해도(웃음). 그런데 이건 내 잘못도, 후배들의 잘못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공감하고 동의하더라도 분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TN 해직사태 이후에 들어오는 후배들이 평균치 이상으로 대의명분에 공감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마운 일이다.

- 지금까지 말한 YTN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

임장혁 지난 2015년 YTN 구성원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YTN 발전을 위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8%가 ‘해직자 복직’이 노사화합을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라고 답했다. 해직자 복직 문제를 해결해야 YTN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게, YTN 사람들이 갖는 기대이자 바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구성원들이 해직기자들의 복직을 원한다 하더라도, (윗선의) 일부 결정권자들이 이를 원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사내 민주화가 정착되고, 결정권자들도 구성원들의 바람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다면, 아무리 대법원 판결까지 내려진 사안이라 하더라도 ‘해직사태를 해결해 화합과 갈등을 종식해야 한다’는 공감대 안에서 앞으로의 발전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 정치권에서도 해직 언론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제스처를 보여왔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임장혁 특정 정치 세력이 우위에 서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여야가 함께 참여해 해직 언론인 문제 해결을 위한 큰 틀의 합의를 이뤄낸다면, 이는 발전적인 정치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공공연한 비밀처럼 청와대에서 YTN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에서도 반드시 탈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장 선임 과정에) YTN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하거나 외부의 (중립적)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YTN 임장혁 기자, 권민석 기자(사진 왼쪽부터). ⓒ김성헌

- 8년은 긴 시간이다. 해직 언론인 문제 해결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여론이 많지만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 문제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임장혁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도 감수를 하고 시작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가지고 8년을 지켜봐주는 게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YTN의 문제말고도 어렵고 힘든 일들이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다.

- 궁금하다. 두 사람에게 8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남았나?

임장혁 슬프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생각밖에 안 든다. 분노만 계속 쌓이는 것 같다. 신뢰하는 사람들이 계속 회복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 발전 없는 느낌이 점점 심화된다. 매해 돌아오는 10월 6일, 그 시점마다 감정이 극대화되긴 하지만, 사실 이런 감정들은 일상적이다. 새롭게 의욕이 충전되지 못하고 8년이 지나버렸다.

권민석 기자로서의 야성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순치(馴致)되어 버렸다. 기자가 야성을 잃으면 회사원이고, 그저 타이피스트다. 예전에는 시절이 좋아지면 못 해본 거 다 해봐야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열정은 총량이 정해져 있다. 회사에 시달리다 보면 열정이 쉽게 충전되지도 않는다. 억울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토마스 맥카시, 2016)를 보면, 한 기자가 취재 내용 나왔으니까 빨리 기사를 내자고 한다. 그때 편집국장은 전체를 다 건드려야 한다며 더 깊은 취재를 기자들에게 요청한다. 그 모습이 정말 멋있더라. 우리는 왜 그런 걸 못하는걸까 싶었다. 기자로서의 야성을 발휘할 없는 환경에 화가 난다. 타사의 보도만큼, 영상만큼 우리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못하는 채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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