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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7 18:20
  • 수정 2016.11.25 10:20

“라디오 드라마, 목소리 하나만으로 만드는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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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시즌5] ⑤ KBS ‘라디오 극장’ 성우 최옥희, 송정희, 전지원, 장희문, 이규창, 이정민

“목소리 하나만으로 세밀한 감정을 담아내고, 예상치 못한 시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청취자들도 나름대로 상상해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게 라디오 드라마의 매력 같다. TV드라마와 달리 라디오 드라마는 두 번, 세 번 들으면 느껴지는 캐릭터의 느낌과 그와의 상호작용이 매번 다르다.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의 느낌, 감동은 무한대다” (성우 이정민)

콘텐츠의 범람으로 TV드라마의 인기도 전과 같지 않은 요즘, 라디오 드라마는 과거의 그 영광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그만의 매력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7일 오전 KBS 한민족방송 <라디오 극장>의 11월 드라마 ‘오버더힐파티’ 녹음 현장을 찾아, 여섯 명의 성우와 함께 베일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라디오 극장>은 현재 얼마 남아있지 않은 라디오 드라마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지난 2008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7년의 밤’, ‘선암여고 탐정단’ 등 국내 다양한 문학작품, 영상작품 등을 재해석 해 라디오 드라마로 꾸미고 있다. 매일 20분씩 한 달간 한 작품이 방송된다. 이번 11월 작품 ‘오버더힐파티’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오리지널’ 라디오 드라마로, 마흔을 눈앞에 둔 서른아홉 살 세 여자의 삶을 통해 우리네 인생을 비춘다.

▲ KBS 한민족방송 <라디오 극장> ⓒKBS

이번 인터뷰에서는 1973년에 성우로 데뷔한 최옥희 성우, 16년차 성우 송정희,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는 11년차 성우 전지원, 작년 1월에 입사한 동기 장희문, 이규창, 이정민 성우와 함께 성우로서 느끼는 라디오 드라마의 매력, 또 그 안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라디오 드라마란, 완전한 창조의 세계

Q. 성우에게 라디오 드라마란 어떤 의미인가

전지원 라디오 드라마는 성우 스스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완전한 창조의 작업이다. 머릿속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적합한 연기를 해낸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역할을 맡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그림들을 폭넓게 소화해내야 한다.

송정희 소리만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예술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있는 그대로만 볼 수 있다면, 라디오 드라마는 청취자마다 자기만의 여지를 두고 들을 수 있다.

최옥희 성우들이 주로 하는 것 중에서 외화는 어느 나라가 됐든 그쪽 생활권이고, 그쪽의 문화다. 그런데 라디오 드라마는 대부분 우리 창작물이다. 우리 생활에서 나오는 것들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고, 연기라는 걸 정말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송정희 라디오 드라마 페이는 사실 성우들이 다른 외부 일로 받는 페이 중에 센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장 우선순위에 있다. 선후배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연기를 직접 배울 수 있고, 연기 지도를 받고, 다른 성우들과 연기로 호흡하고 공감하고 싸울 수 있는 곳이기에 소중하다.

이규창 스타 영화인들이 시간이 지나면 연극판에 돌아오지 않나. 비유하자면 그렇다. 영화배우들이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느낌. 재밌고 살아있는 느낌이다.

▲ 지난 7일 오전 KBS 한민족방송 <라디오 극장>의 11월 드라마 ‘오버더힐파티’ 녹음 현장을 찾아, 여섯 명의 성우와 함께 베일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20여 명의 성우들이 녹음에 참여하고 있다. ⓒ김성헌

목소리 연기, 그 세밀한 작업

Q. 라디오 드라마에서 연기를 할 때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을까

최옥희 더빙은 만들어진 것에 내 소리, 입 길이 등을 맞추면 된다. 그런데 라디오 드라마는 그야말로 작가가 창작을 해온 바탕으로 작가 의도에 맞게 이 역할은 어떤 사람인지, 이 대사, 이 연기를 왜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해 그림을 그리면서 해야 한다. 내가 눈앞에 그리면서 연기를 해야 듣는 사람들도 상상으로 그걸 그리면서 이해를 한다.

송정희 사람마다 보편타당한 그림을 그리는 게 맞지만 간혹 다른 성우가 나와 전혀 다른 그림을 가져온 경우가 있다. PD가 우리와 또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의견을 좁혀나가고 합을 맞춰나가야 한다.

장희문 보통 녹음 하루 전날 캐스팅이 되고, 현장에 나가 바로 대본을 받는 경우도 있다. <라디오 극장>의 경우 한 회분에 20분, 이걸 하루에 3회분 정도 녹음하면 세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보통 그 자리에서 대본을 받아 한 시간 가량 리허설을 하고 바로 녹음에 들어간다.

송정희 작품 녹음 첫 날에는 PD의 생각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왜 이 캐릭터를 만들었는지, 이 역할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 다음 서로의 연기톤이 겹치지 않게 합을 맞춘다. 외모는 똑같은 사람이 없지만 소리는 톤이 같으면 캐릭터에 구분이 안 간다. 그래서 화술법도 달라야 한다. 소리로 하는 연기가 굉장히 디테일한 작업이다.

전지원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최옥희 선생님이 이 한 장면이 20분짜리 전체 안에서 어떤 위치인지, 그냥 흘러가야 할지 부각이 돼야 할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대본을 받고 연습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짧다 보니, 글에 대해 빨리 흡수하고 이해하고 파악해서 행간의 의미를 알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또 그걸 할 줄 알아야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 지난 7일 오전 KBS 한민족방송 <라디오 극장>의 11월 드라마 ‘오버더힐파티’ 녹음 현장을 찾아, 여섯 명의 성우와 함께 베일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왼쪽부터) 최옥희, 송정희, 전지원, 장희문, 이규창, 이정민 성우 ⓒ김성헌

‘성우’라는 직업, 그만의 매력

Q. 어떻게 보면 성우는 감춰진 사람이다. 장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장희문 작년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7전 8기의 도전을 했다. 군대에서 처음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성우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이 라디오 드라마를 하고 싶어서 성우에 그렇게 오랫동안 지원을 한 거다. 그때 이등병일 당시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는 내용의 라디오 드라마를 들었었는데, 그렇게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위안이 되고 싶어서 성우를 하게 됐다.

송정희 개인적으로는 원래 성우가 꿈이 아니라 배우가 꿈이었다. 그래서 처음 성우가 되고서는 마이크 앞에서만 연기하는 게 답답했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건 배우로서 활동하면 많은 작품을 할 수 없어 다양한 역할을 할 기회가 적은데 성우는 그보다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아이 역할을 했다가, 저기 가서는 분위기 있는 목소리를 내고, 또 다른 곳에서는 신나는 내레이션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연기로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게 성우의 가장 큰 매력 같다.

이규창 더빙도 하고, 다채로운 장르를 할 수 있으니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게 좋다. 물론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때 서운한 건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알아봐주길 바랄 때도 있다. 길을 가다 광고에서 내 목소리가 나온다고 “이거 난데! 이 목소리가 저에요!”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장희문 사실 그렇게 나서고 싶은 것도 아니고, 가려져있는 게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다큐에서 내레이션을 하면 감명 깊게 봤다는 평들을 읽는다. 물론 성우에 대한 칭찬이 있는 게 아니고 작품, 장면에 대한 칭찬이 있는 거지만 그걸 보면서도 그거에 일조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행복해진다.

최옥희 지금은 또 세태의 흐름이 그저 예능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부분도 있다. 때로는 눈을 감고 귀로 들으면서 뭔가를 상상하고 느끼는 감성이 좋은데 그런 기회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그래서 다른 매체로 흘러가는 관심들이, 성우라는 연기자로서 섭섭한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아직도 성우를 꿈꾸고 그 매력을 느끼고 열정을 가진 후배들에게 좋은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쉽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

▲ 지난 7일 오전 KBS 한민족방송 <라디오 극장>의 11월 드라마 ‘오버더힐파티’ 녹음 현장을 찾아, 여섯 명의 성우와 함께 베일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왼쪽부터) 최옥희, 이규창, 송정희, 장희문 성우가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김성헌

Q. 시간이 흘러 성우 ○○○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로 남고 싶은지

송정희 우선 사람이 돼야 연기가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선배들이 항상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고 하셨다. 삶이 깊어져야 연기에도 그런 인간미가 툭툭 던지는 한마디에 베어 나온다는 걸 선생님들 연기를 보고 배운다. 그래서 인간미 있는 성우가 되고 싶다.

장희문 어떤 정점에 섰다가 후배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조용히 떠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최옥희 성우도 연기자로서 내가 했던 수많은 역할들이 있지 않나. 단역이든 주연이든, 내가 했던 작품들을 누군가 떠올릴 적에 ‘아 그랬었지’ 하면서 웃을 수 있는, 내가 악역이었던 선한 역이었던 누군가 ‘그때 그랬었지, 그때 참 같이 울었는데’ 혹은 ‘웃었는데’ 하고 기억해줄 수 있는 성우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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