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망치는 무지한 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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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창룡 인제대 교수

학교도 가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어미가 학교에 한번 다녀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심지어 숙제 한번 한 적 없고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수행평가 상까지 받아내는 기적이 연출되기도 했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친구들이 대학에 갈 무렵이 되자 이 아이는 어머니에게 ‘나 어떡해’라고 물었다. 어미는 이미 답변을 준비해뒀고 학교도 콕 찍어 정해줬다. 세상사람들이 소위 일류대학이라고 부르는 이화여대에 들어갈 것이라고.

엄마의 능력을 경험해온 아이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 ‘난 이화여대 간다’고 이미 자랑까지 했다. 이 자랑은 그냥 허풍이 아니었다.

엄마는 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에 맞춰 이화여대를 개조했다. 그의 전지전능한 손은 이화여대 입시요강을 바꿔 ‘승마특기생’을 뽑는 규정을 신설하도록 했다. 서류제출기한이 지난 효력이 없는 금메달, 그것도 단체로 받은 메달을 평가에 포함시키도록 또 괴력을 발휘했다. 아이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메달만 목에 걸고 입시면접장에 들어가서 면접교수들에게 보여줬다.

▲ 신대희 기자 = 19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에서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 주관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 시민이 비선실세 최순실의 가면을 쓰고 포승줄에 묶인채 끌려가고 있다. 2016.11.19 ⓒ뉴시스

이대는 이미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뽑아라’는 지침을 내렸고 면접교수들은 그에게 최고점수를 줘서 당락을 뒤집었다. 아이는 엄마말대로 해서 이대에 합격했다. 남들은 두 번 세 번 떨어지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대학교에 너무 쉽게 합격하니 엄마가 대단해보였다.

안하던 공부를 대학 갔다고 하는 경우는 없다. 대학 안에서도 기적은 계속 됐다. 학교에 가지 않고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고 리포트를 제출하지 않아도 학점은 잘도 나왔다. 원칙을 운운하는 지도교수는 엄마가 학교에 가서 욕 몇 번 해주고 바꿔버렸다.

그렇게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교에 그렇게 간단하게 들어가더니 학생들이 골머리를 싸매며 힘들어하던 리포트, 시험을 한번 보지도 않고 학점을 척척 받아내니 이 아이에게 세상은 너무 쉽고 너무 편했다.

그 사이 할 일이 없어진 아이에게 남자도 생겼고 아이도 만들었다. 스무살 나이에 아이 엄마가 됐고 경제능력도 없었지만 엄마는 어디선가 가져온 뭉칫돈을 계속 던져줬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호텔 하나를 사서 아이를 돌보는 하인들 방은 따로 두고 철마다 파티를 열며 호사를 누렸다.

신이 난 아이는 주변에서 수군대는 아이들에게 “돈도 능력이다. 부모를 원망해라.”고 당당하게 쏘아붙였다.

▲ 배훈식 기자 = 전국청소년정치외교연합 회원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최순실 게이트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2016.11.06. ⓒ뉴시스

나중에 세상이 떠들썩해서 살펴보니 이 아이의 어머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통령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또 다른 숨은 대통령이라고 했다. 기세등등한 재벌들도 이 어미 앞에서는 슬슬 기며 부르는 대로 수십억씩 바치고 추가 지원까지 약속하는 등 불법과 탈법으로 검은돈을 끌어 모았다고 했다.

모든 것을 대신 다해주던 아이에게 갑자기 어미가 사라졌다. 대통령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던 어미가 왜 감방으로 가야하는지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실수로 감옥에 갔지만 그동안 능력을 보건데 엄마는 곧 나오리라고 아이는 믿었다.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우롱했던 어미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아 아이를 바보로 만들었다. 이제 부정 비리의 장본인으로 지목돼 어미에 이어 아이까지도 감방을 가야 할 운명으로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어머니가 실수로 도시락 가방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울리는 바람에 부정행위자로 적발된 수험생이 있었다. 1교시 언어영역 시험 중 도시락 가방에 든 휴대전화 벨이 울려 퇴실당한 아이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저랑 같은 시험실에서 치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한참 집중해야 할 국어 시간에…”라고 사과의 말을 남겼다.

어미의 본의 아닌 실수로 수능 시험을 망친 재수생이 원망이나 억울함은커녕 오히려 동료 수험생에게 사과하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오히려 위로의 말들을 전했다. 이 학생이 삼수의 길을 택할지 다른 대학을 선택할 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린 나이에, 절망적 상황에서도 죄책감에 빠진 엄마를 위로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사과할 정도의 인성이라면 멋진 인생을 만들 준비가 된 셈이다. 시련은 사람을 키우는 힘이다. 타인을 짓밟고 규정을 무시하면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 세상은 결코 쉽지 않다.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이상한 괴력을 발휘하면 ‘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의 힘이다. 부모의 빗나간 사랑에 취하면 아직 피지도 못한 아이의 인생은 단 한번으로 끝장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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