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풍자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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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풍자 전성시대
[방송 따져보기] 권력의 누수가 시작되자, 숨통 트인 대중문화의 정치풍자
  • 방연주 객원기자
  • 승인 2016.11.23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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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패러디의 전성시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건의 여파로 풍자 현상은 정점에 달하고 있다. 매주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동시 다발적으로 10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참여한 시위 현장은 가장 주목받는 ‘풍자의 장’(場)이 됐다. 시민과 청소년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문을 빗대어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만 들어’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현실을 환기시키는 표현수단이 다양해진 것이다. 현실 속 광장과 대중문화 무대 모두 정권을 희화화하거나 패러디하면서 현실을 환기시키고, 권력을 향한 따끔한 비판과 조소를 보내고 있다.

동시대성을 지닌 TV 속 풍자가 넘쳐난다. “왜 내 눈 앞에 나타나~ 네가 자꾸 나타나~.” 지난 20일 KBS 주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익숙한 노래의 후렴구가 흘러나왔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등장한 제보자의 이름은 ‘김주원’. 드라마, 시사 프로그램 할 것 없이 박 대통령이 병원 치료를 받을 때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여주인공 ‘길라임’을 가명으로 사용한 사실을 풍자한 것이다. 이미 KBS <개그 콘서트> ‘민상 토론2,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내 친구는 대통령’ 등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강도 높은 정치 풍자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한 발라드 가수의 경우 ‘곰탕’ ‘프라다 구두’ 등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을 풍자한 노랫말을 붙인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 현실 속 광장과 대중문화 무대 모두 정권을 희화화하거나 패러디하면서 현실을 환기시키고, 권력을 향한 따끔한 비판과 조소를 보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광주 시민 10만명이 모인 촛불집회 모습. ⓒ뉴시스

이렇게 대중문화 안팎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풍자가 폭발하는 이유는 무얼까.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에서 풍자와 해학은 검열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TV 심야 토크쇼의 풍자 대상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정치인들이 비판과 풍자의 표적이 되는 상황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대중문화에서 정치와 시사가 가장 민감한 소재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가 공고화되면서, 정치인과 사회 부조리에 대한 풍자는 더욱 소극적으로 변했다.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의 입지도 좁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풍자 수위를 높일수록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받거나 검열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방송심의기구로부터 과도한 정치적인 심의를 받는 상황이 반복됐다.

일례로 CJ E&M이 보유한 케이블채널 tvN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가 대표적이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방영 내내 방송심의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 특히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풍자 수위를 높이던 해당 코너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패러디한 앰비, 안쳤어, 구라돌이 등의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해당 코너는 잦은 심의와 제재를 받으며 폐지 수순을 밟았다. 최근 최순실 사건을 통해 청와대가 미운털이 박힌 CJ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껄끄러운 정치풍자에 대한 정권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처럼 권력의 누수가 본격화되면서 그간 옥죄여온 정치풍자의 숨통이 트인 것으로 보인다.

▲ KBS <개그 콘서트> ‘민상 토론2,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내 친구는 대통령’ 등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강도 높은 정치 풍자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11월 23일 〈웃음을 찾는 사람들〉 중 ‘내 친구는 대통령’ 장면이다. ⓒSBS

풍자가 억눌렸던 시대, 대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중매체들은 정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문화 속 풍자를 마냥 유행이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정권이 자초한 붕괴에 더해 풍자 자체가 권력의 빈틈을 파고드는 등 정치적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풍자로 힘을 잃었던 프로그램들이 세태를 비꼬거나 날 선 비판을 앞세워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대중의 호감을 얻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금기시하던 연예인들은 집회 현장으로 향하고,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해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거침없이 발언한다. 이렇듯 한 나라의 대통령의 상식을 뛰어넘는 비선 파문은 대중문화를 거쳐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을 불식시키고, 대신 정치 참여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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