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인 듯, 방송인 듯, 실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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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중년의 공감대 발화 SBS ‘불타는 청춘’
  •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6.11.28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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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인 듯, 방송인 듯, 실제인 듯 미묘한 ‘중년의 썸’이 리얼리티를 획득하면서 자칫 질릴 수도 있는 연애 감정을 내세운 예능에서 ‘불타는 청춘’은 가족적 구성의 리얼 버라이어티로 한발 더 나아갔다. ⓒSBS

현재 방영 중인 예능 중 가장 활기 넘치는 프로그램은 단연 SBS <불타는 청춘>(이하 <불청>)이다. 2015년 3월에 시작했으니 곧 2년째에 접어드는 중년들의 리얼버라이어티는 나이에 걸맞은 느긋함 속에 이제야 안정적인 체제를 마련했다. 들쑥날쑥했던 멤버들은 어느 정도 벼려서 확실한 캐릭터를 가진 가족 구조를 이루게 됐고, 여기에 설렘과 기대를 품게 만드는 ‘새 친구’들이 합류해 다채로움을 더한다. 여러 캐릭터들이 모여서 뿜어내는 재미 속에서 2000년대 후반 <무한도전>과 <1박 2일> <패밀리가 떴다> 등 리얼 버라이어티 전성시대 때 예능들의 그리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불청>의 출발은 중년의 동창회 같았다. 예능 대세와 관계없는 중년의 스타들, 혹은 그동안 TV에서 활동하지 않은 추억의 스타들이 연애 감정을 드러내고, 쌓아온 인생의 무게를 담담히 내려놓았다. 또래의 시청자들과 공감도 하고 설렘을 느끼며, ‘이 나이에도 불가능한 게 없겠구나’라는 희망을 건넸다. 하지만 타깃이 확실한 만큼, 반대로 기획의도에서부터 멀어진 시청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솔솔 피어오른 김국진과 강수지가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프로그램의 에너지와 방향이 달라졌다. 장난인 듯, 방송인 듯, 실제인 듯 미묘한 ‘중년의 썸’이 리얼리티를 획득하면서 자칫 질릴 수도 있는 연애 감정을 내세운 예능에서 가족적 구성의 리얼 버라이어티로 한발 더 나아갔다. 김국진 강수지 커플이 중심을 잡고 김광규, 최성국이 코믹 라인, 훈남 막내는 구본승, 중간 역할에 김완선, 여성성을 뽐내는 막내 이연수 등 각자의 캐릭터와 역할이 마련되면서 세대를 불문하고 지켜보면 재밌는 예능으로 재설정된 것이다.

▲ SBS ‘불타는 청춘’ ⓒSBS

캐릭터 잡기는 최근 <불청>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불청>은 큰 틀에서 팜을 갖고 매주 출연진의 조합을 자유롭게 맞추고, 새 멤버를 끊임없이 유입하는 유동적인 체제다. 따라서 매주 출연진이 다르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새 친구가 합류하는가 하면 스케줄에 맞춰 촬영 중간에 드나드는 것도 자유롭다. 이런 방식이 갖는 단점도 있는데 시청자들과 정을 깊게 쌓기 어렵고, 캐릭터쇼가 가능한 관계망 형성에 어려움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시간이 쌓이면서 정예 멤버가 가려지고, 기존 멤버들의 캐릭터가 확실히 다져지면서 이런 단점들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새 친구를 맞이하는 제작진의 따스한 노력이 어우러지면서, 오히려 맞이하는 설렘이 더욱 커졌다. 제작진은 자막과 편집을 통해 새 친구들이 어색하지 않고 친밀하게 느껴지도록 캐릭터를 바로바로 잡아준다. 박선영은 40금으로, 오솔미는 4차원으로, 장호일을 투덜이로, 권선국은 시청자 모드의 약초 건달로, 박영선은 미국 언니 혹은 검지의 여왕으로 캐릭터를 잡아서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소개하면서 가능성을 타진한다. 가장 최근 합류한 황영희의 경우 모두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요리 과정을 전부 내보내 그녀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이 정도 특혜는 그전까지 주로 배고프면 참지 못하는 김도균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 시점에 리얼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불청>이 매우 새로운 볼거리는 아니다. 캐릭터를 부각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구성도 그렇고, 자막과 배경음악을 통해 호흡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그렇다. 함께 밥 해먹는 등 소소한 일거리를 하며 친밀한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힘을 합쳐 ‘불타십쇼’와 같은 큰 이벤트를 벌이는 것도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모두 했던 것들이다.

▲ 함께 어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즐겁게 지내는 분위기가 시청자들의 안방에도 전달되는 거의 유일한 예능이 <불청>이다. 사진은 지난 10월 18일에 방송에서 나온 ‘불타십쇼’. ⓒSBS 화면캡처

만약 아이돌이나 예능 선수들이 했다면 기시감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새롭게 보이는 것은 실제로 이 쇼에 참가하는 출연자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캐릭터에 잘 입혀내는 노련한 연출이 한 몫을 한 덕분이다. 함께 어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즐겁게 지내는 분위기가 시청자들의 안방에도 전달되는 거의 유일한 예능이 <불청>이다.

중년의 공감대에서 발화된 예능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캐릭터의 역할과 관계망이 확립된 주말 예능급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됐다. 2016년 말에 리얼 버라이어티라니 올드할 수 있지만 예능 시청자들에게 출연자들과 그들의 나이에 반비례하는 에너지가 올드함을 중화시켜버린다. 안 그래도 중년 시청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대거 포진한 일요일 예능 블록에 <꽃놀이패> 대신 <불청>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화요일 밤에 매여 있기에는 뿜어내는 에너지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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