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특혜법 ‘규제프리존법’ 폐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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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병일 진보인권연구소 이사

또 다른 비선이 작업에 들어간 걸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갑자기 보수 일간지와 경제지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슈가 있다. 규제프리존법 얘기다. 경제도 어려운데 국회는 ‘경제살리기 법안’에 손 놓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규제프리존법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에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가 신청한 27개 전략산업에 대해 규제를 풀고 재정과 세제를 함께 지원하자는 내용의 법안이다. 자율주행자동차, 사물인터넷, 스마트헬스케어 산업 등 첨단산업이 그 대상이다. 언론들은 이 법안이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계가 없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한다는 이유로 조속한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중요한 당사자인 재벌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정경유착’의 산물이라는 의혹을 거두기 힘들다. 이제 밝혀졌다시피, 지난 2015년 10월 26일 재벌들의 미르재단 입금이 완료된 바로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특별 주문했다. 규제프리존법은 그 직전 10월 7일 개최된 대통령 직속 자문회의에서 처음 제기되었고, 전경련은 그 해 1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규제 없는 지역특구’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2016년 3월, 19대 국회에 현 청와대 경제수석인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하였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된 후, 20대 국회 첫날 새누리당 당론으로 발의되었다. 즉, 규제프리존법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재벌 대기업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내놓은 또 다른 작품일 뿐이다.

▲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재벌특혜 규제프리존법 추진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단체 회원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더구나 규제프리존법은 차은택이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서 개입해왔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관련되어 있다. 규제프리존법에서 제시된 ‘전담기관’은 바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의미하며, 이에 따라 이 법에 따라 지원하는 지역전략산업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역시 창조경제추진단 단장이었으며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위원회에는 대기업과 함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심부름꾼인 안종범 정책수석과 차은택의 외삼촌인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이 참여해왔다. 지난 12월 1일, 시민사회단체들은 최순실-차은택-전경련이 주도해 온 규제프리존법과 관련한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보고, 박근혜, 최순실, 이승철 및 대기업 회장들을 고발하였다.

물론 규제프리존법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만 문제는 아니다. 이 법안은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규제를 풀어주어 보건의료, 환경, 교육, 개인정보, 경제적 약자보호 등 공익과 기본권을 위협한다. 법안은 규제를 나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애초에 규제가 도입된 것은 어떠한 사회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시대에 뒤떨어져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규제가 있다면 철폐하거나 완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타당성을 국회에서 세심하게 검토해서 결정할 일이지, 이 법안과 같이 단지 산업육성만을 이유로 규제를 완화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규제프리존법은 사물인터넷 관련 사업을 경영하는 역내사업자, 혹은 자율주행자동차 사업자 등에 대하여, 이들이 수집한 개인정보를 ‘비식별화’ 처리를 하면, 정보통신망법 및 위치정보보호법의 개인정보 보호 관련 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여,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사업자들이 수집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내 정보의 일부를 살짝 가리면, 내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식별화 된 개인정보는 언제든지 재식별 될 수 있어,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규제프리존법과 별개로, 정부가 지난 6월 30일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비식별화’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현행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률을 위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규제프리존법을 통해 또 다시 개인정보보호법을 우회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개인정보는 권역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개인정보가 강원도 규제프리존에서 수집되었다고 그 내에서만 유통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IMS헬스 코리아가 병원과 약국에서 수집한 우리 국민 처방전 정보는 전세계로 팔렸다.

▲ 4월 24일 TV조선 보도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규제프리존법 처리 합의' ⓒTV조선 화면캡쳐

일부 야당 의원들과 지자체장들도 규제프리존법에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월 전국 14개 시·도지사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규제프리존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는가 하면, 최근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도 법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국민의 인권과 공공성보다는 자신들이 챙길 치적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세월호에서부터 옥시 가습기 사건까지, 기업의 이익을 위한 허술한 규제가 국민의 안전, 건강, 인권을 어떻게 위협했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200만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염원하는 것은 비단 박근혜와 그 일당들의 퇴진만이 아니다. 공공성과 인권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회구조, 재벌중심의 경제구조, 정경유착이라는 구태와 같은 ‘낡은 체제’를 바꾸지 못한다면, 촛불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진전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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