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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7 13:20
  • 수정 2017.01.18 18:37

“파업 끝난지 5년…현업으로 돌아가지 못해 책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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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민식 MBC 드라마 PD 신간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 김민식 MBC 드라마 PD가 영어공부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출간했다. 지난 11일 상암MBC 근처 카페에서 김 PD를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박근정

“책이 정말 잘 팔렸으면 좋겠다. 베스트셀러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를 바란다. ‘드라마PD가 왜 드라마는 안 만들고 영어공부 책을 쓰고 있지?‘ 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인의 꿈을 꾸고 기자, PD로 살겠다고 MBC에 온 사람들이, 파업이 끝난 지 5년인데 아직도 현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행이다. 책이 정말 잘 팔리고 있다. 출간된 지 일주일도 안 된 지금, 책은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1위, ‘자기계발’ 분야 2위에 안착했다. 독학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까지 다녔던 김민식 MBC 드라마 PD가 영어공부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들고 나왔다.

책이 출간되던 지난 11일 상암MBC 근처 카페에서 만난 김 PD는 돈과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MBC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책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드라마 PD지만 드라마도 아닌, 드라마 연출 책도 아닌, 영어공부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웃픈’ 현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김민식 MBC 드라마 PD 지음) ⓒ위즈덤하우스

지난 2012년 MBC 170일 파업 이후 김 PD는 드라마 메인PD 자리에 돌아가지 못했다. 심지어 2015년 말에는 비제작부서인 편성국 주조실로 발령을 받았다. 한때 PD저널리즘의 지평을 열었던 한학수 PD와 함께 말이다.

그때 한창 ‘멘붕’에 빠져있던 김 PD는 그의 첫 저작이었던 <공짜로 즐기는 세상> 편집자를 만나게 된다. 편집자는 김 PD의 첫 책을 냈던 출판사가 망했다며 책이 절판될 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오히려 잘 됐다”며 더 좋은 출판사와 계약해 책을 새로 내라고 제안했다.

김 PD가 같은 내용을 새로 내는 건 의미가 없다고 하니 편집자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 중 한 챕터였던 ‘공짜 영어 스쿨’을 확대해 책으로 내보는 건 어떻겠냐고 추천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국내에서 영어 독학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 PD는 영어 학원 강사도 아니고, 영어 공부도 20대 때 했는데 어떻게 책 한 권을 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비제작부서에만 있어야 하는 괴로운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뉴욕, 남미, 발리, 오키나와, 타이베이 등을 여행하다 돌아오니 문득, 여행을 잘 할 수 있었던 건 언어 덕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김 PD는 꾸준히 써오던 개인 블로그에 영어공부 관련 글을 포스팅했다.

글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고, 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면서 출판사 여러 곳에서도 연락을 받게 된다. 김 PD는 “영어공부 하자는데 ‘종북 좌파’라고 뭐라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가장 큰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 김민식 MBC 드라마 PD가 영어공부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출간했다. 지난 11일 상암MBC 근처 카페에서 김 PD를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박근정

책은 말 그대로 영어책을 딱 한 권만 외워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물론 그 안에 김 PD가 몸소 겪은 노하우가 들어있다. 김 PD는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아버지의 강제로 초등학교 여름 방학 때 중학교 영어교과서 한 권을 무조건 다 외웠다. 그때는 정말 하기 싫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

군대 신병훈련소에 있을 당시에는 “이 500명과 나는 아무 차이가 없구나” 하는 자괴감에 영어회화 책을 외웠다. 복학을 한 뒤 전국 고수들과 겨뤄보자는 생각에 대학생 영어토론대회에 나갔는데 덜컥 2등을 했다. 당시 1등은 외교관 자녀로 중고등학교를 외국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물론 영어책 한 권을 외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김 PD의 책은 그 어떤 영어책보다 재밌다. 예능PD로 입사해 10년 간 시트콤,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드라마PD로 변신한 이력이 있는 김 PD는 “정말 재미있게 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수십 년 간 로맨틱코미디를 연출한 PD가 재밌는 책을 쓴다는 신념을 가지고 쓴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 PD는 “예능PD로 입사하면 재미가 우선이냐, 의미가 우선이냐를 따지게 된다. 그때 예능 선배들에게 들었던 건 예능은 무조건 재미라는 것이다. 아무리 의미가 있어도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고,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며 “공부법도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책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막상 영어공부를 안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영어학습서를 읽으면서 빵 터지고 재밌으면 됐다”고 웃어보였다.

▲ 김민식 MBC 드라마 PD가 영어공부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출간했다. 지난 11일 상암MBC 근처 카페에서 김 PD를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박근정

앞으로 김 PD는 시리즈로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왼쪽 위 모서리를 보면 아주 작은 글씨로 ‘독학의 신과 함께하는 된다, 된다, 영어 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독학의 신과 함께하는~’ 시리즈를 내기 위한 초석이다.

두 번째로는 ‘독학의 신과 함께하는 한다, 한다, 소셜미디어 한다’가 예정돼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창의성을 키우고, 혼자서 블로그, 유튜브, 팟캐스트 등의 콘텐츠를 만들고 즐기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그 다음으로는 ‘독학의 신과 함께하는 간다, 간다, 세계일주 간다’가 준비돼 있다. 프로그램이 ‘망할’ 때면 항상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났던 김 PD가 혼자 배냥여행을 다니는 노하우에 대해 전하는 책이다.

▲ 김민식 MBC 드라마 PD가 영어공부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출간했다. 지난 11일 상암MBC 근처 카페에서 김 PD를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박근정

이 시리즈들도 결국 MBC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김 PD만의 방법이다. 김 PD는 “‘이 사람이 영어학습서도 이렇게 재밌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드라마를 만들면 얼마나 재밌을까, 이런 PD들이 빨리 현업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분들이 한분이라도 늘어나면 좋겠다. 이런 사람들이 MBC에는 100명이 넘게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JTBC 보도 이후 많은 사람들이 MBC는 필요 없다, 어차피 물 건너간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정말 위험하다. 아무리 지금 JTBC가 잘하고 있다 해도 MBC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 손석희 선배가 정말 잘해주고 있지만, 종편은 사주가 있는 기업으로서 사주의 성향이 바뀌면 언제 바뀔지 모르지 않나. JTBC도 남겨두고 MBC도 정상화해서 공정보도를 놓고 둘이 경쟁하는 구도가 되면 얼마나 아름답겠나”하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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