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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3 16:32
  • 수정 2017.03.14 12:49

“들려줘, 너의 책경험! 보여줘, 너의 인생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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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노홍철·장강명의 ‘책번개’ 김효진 PD

▲ 새내기 책방주인인 노홍철과 월급 사실주의 소설가로 유명한 장강명 작가가 특정 주제를 정해 책번개를 치고,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책을 읽었던 경험’에 대해서 즐거운 책수다를 나눴다. ⓒKBS <책번개>

지난 2월 12일부터 3주 동안 방영됐던 KBS <책번개>는 작가나 연예인이 출연하는 책 소개 프로그램과는 확연히 달랐다. 새내기 책방주인인 노홍철과 ‘월급 사실주의 소설가’로 유명한 장강명 작가가 특정 주제를 정해 책번개를 치고,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책을 읽었던 경험’에 대해서 즐거운 책수다를 나눴다. 

책번개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순간에 그 책을 읽었는지, 어떤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기에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처음 보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책에 담긴 내용이 아닌 책을 읽었던 경험과 그 사람이 지닌 이야기에 집중한 <책번개>를 보고, 시청자들은 ‘신선하다’, ‘어렵지 않고 재밌다’, ‘나도 책번개에 참여하고 싶다’ 등 공감하는 반응을 쏟아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책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TV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미 책에 대한 정보는 TV보다는 인터넷에 더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책번개>에서는 예전에 어떤 책에 푹 빠져서 밤을 새웠던 그런 즐거웠던 기억을 소환하고 싶었어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라거나 ‘그 때 나를 밤새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라고 생각도 해보다가, 실제로 예전에 읽었던 그 책을 읽어볼 수도 있는 거죠.”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근처에서 만난 김효진 PD는 “사람들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여기에 대해서 새롭게 보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요즘 사람들은 예전 세대보다도 더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들을 접하고 있고 즐기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책번개>는 지난해 8월, 20부작으로 종영한 KBS <TV책-김창완과 책읽기> 이후 이어진 <TV책> 시즌2라고 볼 수 있다. 

▲<책번개> 1편(2월 12일에 방영)에서는 ‘나를 변화시킨 책’을 주제로 책수다가 이어졌다. 출연자들이 서울시 용산구 해방촌 골목에 위치한 노홍철의 '철든 책방'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KBS 화면캡처

참여형 토크 프로그램…나의 한 구절, 너의 한 구절을 나누는 시간

2월 12일에 방영한 1편은 지난 겨울 서울 용산구 해방촌 골목에 위치한 노홍철의 <철든 책방>에 10명의 출연자가 모여드는 모습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노홍철이 책번개를 공지하자 참여 신청을 한 사람들이었다.

책방 주인인 노홍철과 장강명 작가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책방에는 처음에는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그날의 주제였던 ‘나를 변화시킨 한 권의 책, 그 쨍한 첫 경험'에 대해 한 명씩 털어놓기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사랑을 글로 배웠네’를 주제로 한 2편에서도 ‘책으로, 글로 사랑을 터득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읽었던 <마담 보바리>, <1cm>,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책을 읽은 감상이 다른 경우, 진지하게 토론을 하기도 했다.

김효진 PD는 결국 “책을 계기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1년에 한 권을 읽었어도 그 책이 본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얼마나 좋았는지 알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하고,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는 당당하고 튼튼한 자아를 지닌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해, 다양한 책으로 서로 자극을 받을 수 있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일반인이 나와서 시청률이 안 나오거나 재미없을 수 있겠다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첫 회 촬영부터 너무 재밌었다”며 “사람들은 교수나 평론가 같은 전문가들의 추천보다도,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자신의 관심사와 같은 사람을 (인터넷상에서) 발견하면 그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더 읽고 싶어진다. 저는 이렇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미니 인플루언서’(Mini Influencer)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책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책에서 담고 있는 사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꼭 완독할 필요는 없어요. 한 포인트만 기억해도 좋아요. 어떤 책을 안 읽었다는 이유로, 그 책에서 제기된 사유들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거잖아요.”

이처럼 <책번개>는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책번개에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뿐만 아니라, ‘독서 초심자들’도 있었다.

갑자기 한 권의 책을 만난 것을 계기로 독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한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고유한 책경험을 부담 없이 얘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책번개>의 MC를 맡은 노홍철 또한 초심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1편에서 ‘나를 변화시킨 책’으로 <순례자>를 들며, 몇 년 전 잠시 방송을 쉬게 되었던 당시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 그 책을 읽었던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강렬한 책경험을 한 노홍철은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지난해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해방촌 골목에 자신의 서점을 내기까지 했다.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노홍철은 “나에게 특별한 시간이 있었지 않느냐. 그때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으면서 강력한 에너지를 얻었다. 이건 내가 (책방을) 차려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본 김효진 PD는 <책번개> MC로 노홍철이 적격이라는 생각에 그를 찾아갔고, 노홍철 또한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며 <책번개>의 MC를 맡게 됐다.

김효진 PD는 “노홍철은 책.알.못(책을 알지 못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렇지만 “내가 책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자기 중심이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막연히 무비판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그런데 이건 이렇지 않아요?’ 하며 비판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프로그램에서의 노홍철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 방송인 노홍철은 <책번개> 1편에서 ‘나를 변화시킨 책’으로 <순례자>를 소개하며, 몇 년 전 잠시 방송을 쉬게 되었던 당시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 그 책을 읽었던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KBS 화면캡처

책 읽는 새내기 그리고 책벌레와의 만남의 장

또한 <책번개>에는 책.알.못 노홍철 외에도 MC를 맡은 사람이 있다. 바로 지난 2015년 문단에서 가장 핫한 소설가로 떠오르며 4대 문학상을 모두 석권한 장강명 작가다. 

김효진 PD는 장강명 작가에 대해 “평소에도 ‘책 읽기는 나만의 것’, ‘남들에게 휩쓸릴 필요가 없다’. ‘아무리 자신이 쓴 책이더라도, 책은 읽는 사람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라며 저자와의 대화에도 잘 나가지 않는 작가였다”고 설명하며 “<책번개>가 각자의 책경험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라고 얘기하자, ‘다양한 독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며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내가 꿈꾸는 공동체’ 라는 주제를 다뤘던 3편(2월 26일 방송)에 출연했던 유시민 작가도 장강명 작가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책번개>에 출연했다.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한 <어떻게 살 것인가>(2013), <국가란 무엇인가>(2017)의 저자이기도 한 그였지만, 프로그램은 ’유시민 작가만의 1인 강연‘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유시민 작가는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던 경험을 소개하며, 다른 일반 출연자들이 감명 깊었던 책 이야기를 소개할 때 열심히 경청했다.

김효진 PD는 “유시민 작가는 평소에도, 강연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그대로 흡수되거나 본인이 우상화되는 걸 무척 경계하는 편이다. 또한 독자들이 스스로의 주관을 가지는 것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분”이라며 “<책번개>를 촬영하고 나서 ‘강호에 고수가 많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좋아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2월 26일에 방영한 <책번개>에서는 ‘내가 꿈꾸는 공동체’를 주제로 책수다가 이어졌다. ⓒKBS 화면캡처

이렇듯 <책번개>는 책을 잘 알지 못 하는 초심자든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든, 한 구절이라도 자신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책경험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어줬다.

이에 대해 김효진 PD는 “<책번개>가 뉴비들과 책벌레들끼리의 만남의 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뉴비newbie란 한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다.)

그는 “<책번개>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는 묻혀있거나 주목받지 못 했던 책을 다시 끌어내는 역할이 되고,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독서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이야기 떠나서, 너의 호기심에 맞춰서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책번개>는 온라인에서도 활발한 소통이 이뤄졌다. <책번개> 촬영 현장은 KBS 공식 어플리케이션 myK와 페이스북 공식계정을 통해 생중계됐으며, 이를 통해 시청자들의 의견도 책번개 자리에서 소개됐다. 촬영이 끝나고, 방송이 나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램에서 소개됐던 책의 정보나 참여자들의 촬영 후기, 시청소감 등도 <책번개> 다양한 SNS 계정에 올라왔다. (▷<책번개> 홈페이지 링크)

“책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더불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감을 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책번개>를 통해 책을 사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책번개>를 보고 너무 반가웠다.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에게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오래오래 해주시길 바란다”

KBS <책번개> 홈페이지의 시청 소감 게시판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담긴 시청자들의 시청 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번개>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3부작으로 막을 내렸다. 정규 편성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책번개> 4편이 곧 나오기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김효진 PD의 ‘인생책’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근처에서 만난 김효진 PD와 KBS <책번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PD저널

김효진 PD는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채 책장에만 꽂혀있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 <TV책-김창완과 책읽기> 연출할 때, 김창완 선생님께 들으니 선생님은 따로 책을 사지 않고, 그때그때 손에 닿는 책들을 읽는다고 하시더라”며 “결국 읽는다는 것도 습관인거죠. 읽고 사유하는 습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뭐든 손에 짚히는 걸 읽었으면 한다.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한다. 그래서 제 인생책은, 책장에 있는 아직 읽지 못한 책”이라고 말했다.

“<책번개>가 시청자들에게도 책과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이제 책에 미안해하지 말고, 강박을 갖지 말고, 어디서든 손을 뻗어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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