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을까? 2017년 TV가 바라보는 청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 방송에서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

청년을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들이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그동안 방송은 주로 취업 문제,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 비싸고 열악한 주거 비용 등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의 아픔을 통해 '우리나라 청년들이 힘들다'는 사실을 전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기에 청년들의 현실을 잘 몰랐던 다른 세대는 TV를 시청하며 눈물지었을지 몰라도, 당사자인 청년들은 '이미 겪고 있는 현실'을 재확인하는 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청년 실업률이 12.3%에 달했던 지난 2월 방영한 EBS <다큐 프라임-2017 시대 기획 청년>(연출: 김지원) 4부작과 KBS <명견만리> ‘저성장 시대 부채세대 생존법’(연출: 김은곤)은 이와는 달랐다. 

청년들의 사례를 보여주면서도 결코 사례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았다. 좀 더 생생하면서도 다양한 상황에 처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청년 문제를 지닌 해외에서, 청년들이 직접 나서서 변화를 주도하는 에너지도 전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그 청년들에게 어떤 답을 주어야할지 질문을 던졌다. 

▲ EBS <다큐프라임> '시대 기획 청년' 4부작 ⓒEBS

TV, 2017년을 살아가는 다양한 청년의 삶에 주목하다

먼저 EBS <다큐프라임-2017 시대탐구 청년> 중 3부 ‘평범하고 싶다‘에서는 힘들게 노력해서 취업했지만, '평범해지고 싶어서' 회사를 나온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들에게 사회는 "조금만 더 참고 다니지", "편한 것만 추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공을 위해서 나 자신을 포기해야 하더라. 그렇게 사는 인생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생각했다”, “참고 견디면 좋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높은 연봉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원한다”며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프로그램은 그들의 얘기를 통해 신입사원 중 27.7%가 1년 이내에 퇴사하고, 70만 명의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는 결국 ‘장시간 노동’, ‘수직적 문화’ 등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 때문이었음을 지적했다.

또한, 1부 ‘보통의 날들’에서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 또는 '취업 준비생'에 맞춰졌던 시선에서 벗어났다. 그동안 TV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에 주목한 제작진은 제조업 종사자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2030 청년들의 노동 현장을 찾아 그들이 겪는 아픔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지난해 2월, 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20대 청년 5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사건을 통해, 청년 공장 노동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2부 ‘최저 인생-삶의 최소 출발선 '최저임금'’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 역사상 최초의 청년 위원으로 임명된 20대 노동자 위원인 김민수 씨('청년유니온' 위원장)의 시선과 내레이션을 통해,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특히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 직접 ‘청년 전문가’로서 문제 해결의 주체로 등장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까지는 청년을 주제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등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이처럼 청년이 '힘들어하는 사례자'가 아닌 ‘청년 전문가’로 등장한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KBS <명견만리> 청년기획 2부 ‘저성장 시대 부채세대 생존법’편에서는 사회생활의 시작과 동시에 빚을 안고 가는 청년들이 결국 평생 빚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강연자(프리젠터)인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와 제작진은 그 대안을 찾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그리고 ‘잃어버린 20년’ 이후 청년을 위해 정책을 세우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강조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학생에게 매달 일정 금액 이상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학자금 대출도 일정 소득 이상이 되기 전까지는 유예하는 제도를 마련해두고 있었다. ​

결국, 하준경 교수는 “대학 진학률이 높은 현실 속에서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처럼, 지원금을 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우리가 가진 재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며 성적 장학금 대신 소득에 따라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고려대학교를 사례로 들었다. 마지막으로는 “청년의 빚을 사회가 포용할 때 새로운 성장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청년이 처한 현실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주어진 여건과 현실에서도 적용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지난 3월 22일에 방송한 MBC <PD수첩> ‘두 평에 갇혀버린 청춘’(연출: 오상광·장호기)편은 서울에서 열악한 주거 환경에 처한 대학생들을 찾아 그 현장을 보여주며,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학 기숙사를 들었다. 그러나 사실상 서울 소재 대학교의 기숙사 수용률은 10%에 불과했으며, 민자 기숙사의 경우 원룸이나 오피스텔만큼이나 비싼 월세로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이에 <PD수첩>은 민자 기숙사가 지닌 구조적 문제까지 지적하며 무엇이 학생들을 위한 길인지 질문했다.

▲ KBS <명견만리> ‘저성장 시대 부채세대 생존법’ ⓒKBS

'할 수 있을까''할 수 있다'! 

개그맨 겸 작가인 유병재가 진행자로 나선 EBS <다큐프라임> 4부 ‘할 수 있을까’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움직임들을 소개했다. 제작진과 유병재는 청년 실업률이 60%였던 스페인, 살인적인 주거비와 수십년째 같은 월급으로 고통받는 대만을 찾았다.

그곳에서 청년들은 변화의 객체가 아닌 주체였다.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나 퍼포먼스를 벌였고 투표를 통해 청년들을 정당으로 보냈다. 그 결과 스페인에서는 청년들의 정당 포데모스가 제3당으로 부상했으며, 대만에서는 5명의 청년 의원(신생정당 ‘시대 역량’)이 당선돼 3당 체제가 구축됐다. 정치의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청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처럼 절망적이었던 상황에서도, 눈에 띌만한 변화를 이뤄내는 두 나라의 사례를 보고, 유병재는 말했다. “사실 저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잖아요. 우리가 투표로 세상을 바꿔야 하고, 어떤 작은 움직임이 나부터 앞장서야 한다. 이런 것들을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데, 그게 참 실천이 어려운 문제잖아요. 근데 실천한 분들을 뵙고 나니까 변화를 위해 어떤 조건이 또 충족되어야 할지. 당연히 나부터 뭔가를 해야 하겠지만 조금은 복잡한 기분이에요.”

시청자들도 방송을 시청하고 ‘조금은 복잡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에너지를 포착함으로써 우리에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할 수 있다!”로 바뀔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기서 “할 수 있다”는 4부의 부제이기도 하지만, 스페인 청년 정당인 ‘포데모스‘의 슬로건이다. 또한 이 때의 “할 수 있다”는 기성세대가 한국 청년들에게 “하면 된다. 할 수 있어”라고 건네는 말과는 다르게 와닿는다.)

▲ EBS <다큐프라임> 4부 ‘할 수 있을까’ ⓒEBS

▲ EBS <다큐프라임> '시대 기획 청년' 4부작 중 4부의 마지막 화면. ⓒEBS

“자연스럽게 제도권 안에서 입학을 하면 자연스럽게 기숙사를 가고, 자연스럽게 저소득층 학생은 약간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제도적으로 자연스럽게 갔으면 좋겠어요. 너무 이상적인 사회인가요?” MBC <PD수첩> ‘두 평에 갇혀버린 청춘’에서 제작진과 인터뷰하던 한 학생이 던진 질문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 청년들에게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일이 우리나라 청년들에게는 ‘꿈’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방송은 꾸준히 청년 이슈를 다뤄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동안 방송이 청년을 보여주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큰 울림을 전했다. 두 프로그램이 더욱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