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에 사람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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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KBS 세월호 특별기획 ‘3년, 세월의 시간’

그는 담담했다. 쉽게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고 쉽게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 담담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3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렀을까,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떠올리기 힘든 지난 시간이, 눈빛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단원고 2학년 故 이창현 군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수천 번 반복해 말했을 그날의 상황을 오늘도 카메라 앞에서 되뇌었다.

<KBS스페셜> 내 특별팀을 꾸리고 세월호 참사를 기획했을 당시, 제작진은 벅찬 동시에 두려웠다. 유가족들이 그토록 필요했을 때 침묵했던 우리가, 과연 3년의 시간을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비로소 세월호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돼서야 무엇을 기획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또한 막막했다. 세월호를 온전히 잘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만큼 잘 제작해야 한다는 무게감이 제작진의 어깨를 눌렀다. 그렇게 기획의 시작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었다.

▲ 지난 16일에 방영한 KBS 세월호 특별기획 ‘3년, 세월의 시간’ ⓒKBS

작가 김훈 선생 또한 그러했다고 한다. 그동안 동료 작가들과 팽목항을 찾기도 했던 김훈 선생은 기고문이나 강연을 통해 세월호를 말했지만, 정작 소설을 통해 세월호를 말하진 못했다. 수차례 자료를 검토하고 마음을 먹어보았지만 쉽사리 세월호를 써내진 못했다고 한다. 그간의 참담함이 그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월호를 써야 하지만 쓰지 못한 시간이 제작진과 닿아 있었다. 방송 출연을 가급적 하지 않아왔던 김훈 선생은, 제작진이 찾아간 첫날 세월호를 함께 얘기해보기로 그 자리에서 약속했다.

3월의 동거차도는 아직 겨울이었다. 훈훈한 기운조차 없었다. 찬바람에 서 있기도 힘든 이 바다를 유가족분들이 텐트에 의지해 지키고 서 있었다. 침몰 지역에서 2km. 동거차도 산마루에 올라서 바라보면 손에 닿을 듯한 착각이 드는 거리다. 가족들이 매일 번갈아 산마루에 섰다. 그동안 산마루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받아냈을까. 그 눈물을 안고 가족들은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를 배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록하고 있었다. 김훈 선생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유가족이 하는 상황이 기가 막히다’라고 했다.

사실 가족들이 처음에 이곳 동거차도 산마루에 올랐을 때, 모두 한 번씩 탄식을 내뱉었다고 한다. 현장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이 존재했다니. 3년 전 그날부터 알았더라면, 24km 떨어진 팽목항 끄트머리에 그저 앉아있지만은 않았을 텐데. 혹시나 사고 지점에 전해져 들리지 않을까 팽목항에서 온 힘을 다해 소리치지만은 않았을 텐데. 누구도 가족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오늘도 가족들을 산마루에 서게 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그날부터 언제나 그랬듯 그 자리에 있었다. 때마다 들고 나는 건 찾아왔다가 이슈가 사라지면 없어져 버리는 취재진이었으리라. 아직 찾지 못한 가족을 위해, 진상규명을 위해 현장은 떠날 수 없는 곳이었다. 한 치의 새로움 없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현장. 가족들은 그것을,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 버린 일상을 대체한 일상이라 했다. 비극적인 일상. ‘때를 맞춰’ 다시 찾아온 제작진으로선 그 일상을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 지난 16일에 방영한 KBS 세월호 특별기획 ‘3년, 세월의 시간’ ⓒKBS

“일어나”

“밥 먹어”

“늦었다, 지각이야”

너무나 찾고 싶지만, 다시 찾을 수 없는 일상. 이제는 다시 오지 못할 일상. 그 슬픔을 카메라에 담을 때가 너무도 힘들었다. 똑똑히 보고 있어야 방송으로 잘 전할 텐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사소한 것의 고귀함‘이라는 김훈 선생의 표현처럼 일상의 소중함에,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일상에 대해 침묵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졌다. 가족들은 오히려 고개 숙인 제작진을 담담한 목소리로 보듬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도 담담해 슬픔을 뚫고 나온 담담함이라 생각이 됐다. 담담한 동시에 담대했다.

제작진은 그 담대함을 온전히 전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디어를 통해 한없이 울부짖고 거리에 나가 투쟁하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유가족이 아니라, 힘들지만 한 걸음씩 걸어나갈 수밖에 없는 담대한 유가족을 전하고 싶었다. ‘해야함은 할 수있음을 함축한다’는 단원고 2학년 故 김다영 학생의 메모처럼, 할 수 있다는 의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족들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담대함이, 지난 시간 세월호를 지우려는 사회의 시도에서 아이들을 지켜냈을 것이다. 단원고 기억 교실에서의 인터뷰는 그런 제작진의 고민이 반영된 촬영이었다.

3주기는 돌아왔고, 인양됐다. 하지만 아직 조금도 해결된 것이 없다. 방송도 때를 맞추어 나갔지만, 이것이 얼마만큼의 울림이 있었는지 알 수도 없다. 한 차례의 방송이 미치는 영향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일까. 그것으로 그간의 침묵이 속죄될 리도 없다. 우리는 2014년 5월 KBS본관 앞 찬 바닥에 앉았던 유가족분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후 ‘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지키지 못한 채 물러나기만 했던 약속은 이제 더 이상 뒷걸음질 칠 곳이 없다. 이제라도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계속 지켜보고 침묵하지 않는 것만이 다시 세월호에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약속이다. 아직 ‘그 위에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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