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판 블랙리스트’…“소고기 등급 나누듯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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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판 블랙리스트’…“소고기 등급 나누듯 분류”
“의욕상실과 원래 본인의 능력부족과 게으름으로 영향력 상실”…인격모욕 서슴지 않아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7.08.0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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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노조 MBC본부는 8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진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인물 성향’ 문서를 공개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노보

“현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들”
“의욕상실과 원래 본인의 능력부족과 게으름으로 영향력 상실”
“관찰대상. 추후 보도국 이외로 방출필요”
“업무능력 부족하고 게으른 성향과 개인욕심이 많아 기회시 변절할 인원”
“주니어 중에 노조 주요세력으로 절대 격리필요”
“무능과 태만으로 존재감이 없는 인물로 현재 영향력 상실”

[PD저널=이혜승 기자] MBC가 카메라기자 65명을 대상으로 작성한 '블랙리스트'가 폭로됐다.

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는 8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진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인물 성향’ 문서를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2013년 7월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MBC본부에 따르면 MBC 경영진은 2012년 파업 이후 사원들을 4개 등급으로 분류해 이들을 인사 평가와 인력 배치에 활용했다. MBC 경영진은 기자 각각을 회사 정책에 대한 충성도, 노조와의 관계, 정치적 성향 등에 따라 ☆☆, ○, △, ✕ 등급으로 분류하고 ‘인물평’을 남겼다.

▲ 언론노조 MBC본부가 공개한 'MBC 블래리스트' 문건 일부 ⓒ언론노조 MBC본부

인물평에는 ‘영향력 제로’, ‘무능과 태만’, ‘존재감 없음’ 등 인격모욕적인 표현들도 다수 등장한다. 이들은 특히 ‘X등급’ 대상자들에 대해 ‘현 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들’, ‘(절대) 격리 필요’ ‘보도국 외로 방출 필요’, ‘주요 관찰 대상’ 등 노골적인 표현들을 사용했다.

MBC본부는 ‘블랙리스트’가 실제 인사와 평가, 승진 등의 핵심 자료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표에 나타난 ‘X등급’의 기자들은 실제로 2012년 이후 보도국 외부로 전보되거나, 보도국 내에서 중요도가 낮은 부서로 배치돼왔다.

반면 ‘☆☆부류’는 현재 보직을 맡고 있거나 정치부‧사회부 등 보도국 내 주요 부서 등에 전면 매치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C본부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와 ○부류는 파업 이후 승진 인사 때마다 1~3단계씩의 직급을 승진했다. △와 ✕부류 중 10여 명은 5년간 단 한 차례도 승진하지 못했다.

MBC본부는 “이번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은 영상PD들의 취재 교육을 마치고 김장겸 당시 보도국장이 주재하는 회식 자리에서 6개월간의 해외연수를 제안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매년 연말에 시상되는 창사 기념 포상자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들이 받은 상은 당시 보도국에서 단 2명만 수상할 정도로 이례적이었다”고 밝혔다.

▲ 언론노조 MBC본부는 8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진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인물 성향’ 문서를 공개했다. 권혁용 MBC 영상기자회장이 문건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아나운서, PD, 경영…모든 부문에 실행됐을 것”

MBC본부는 ‘블랙리스트’가 카메라기자뿐 아니라 아나운서, PD, 경영, 취재기자, 엔지니어, 촬영감독, 그래픽 디자이너 등 MBC내 모든 부문에 걸쳐 철저하게 실행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MBC본부는 최근 불거진 아나운서 탄압에 있어 ‘신동호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MBC본부는 “블랙리스트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예는 아나운서국”이라며 “아나운서 국장 신동호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있는 아나운서들은 밖으로 축출(11명)되거나 회사를 그만둬야(12명) 했다. 아나운서국에 남아있더라도 파업 참가 조합원들의 방송 참여는 극도로 제한됐다. 라디오, 예능, 시사제작 PD들이 수 십 차례 진행과 내레이션, 출연 요청을 해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이유로 신동호에게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MBC본부는 블랙리스트가 지휘 계통을 거쳐 당시 인사권자인 김장겸 보도국장(현 사장), 박용찬 취재센터장에게 보고됐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MBC본부는 "최근 제보에 따르면 인사 상 중요한 시기마다 인사 총책임자 책상 위에 블랙리스트가 놓여 있었으며 여기 기재된 구성원들은 승진, 인사평가, 연수 등에서 불이익을 당했고 심지어 사내 단합대회 참가자 명단 등에서도 배제됐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X등급에 오른 것으로 확인된 나준영 카메라기자는 “관리당하고 감시당한다는 부담감은 항상 있었다. 내 마음의 고통과 부담이, 내 동료들의 고통과 부담이 왜 어디서 발생했는지 오늘 그 퍼즐을 비로소 다 맞추게 됐다”며 “가장 마음이 안타까웠던 건 함께 20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람들을 성향으로 판단해서 등급으로 분류하려 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함께 X등급에 있었던 양동암 카메라기자는 “정말 죽도록 힘들었다. 내가 18년 동안 카메라를 메고, 나름의 직업의식을 가지고 방송을 만들었는데, 그게 회사에서는 ‘너네는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걸 끊임없이 강요받으면서 회사를 다녀야 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MBC 영상기자회는 블랙리스트에 대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서울 상암MBC 광장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MBC 영상기자 블랙리스트 비대위는 “엄중한 인권, 언론탄압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보도부문 총회를 요구한다. 비대위는 사장 김장겸과 논설실장 박용찬의 퇴진 투쟁에 앞장 설 것이며 이들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결의했다.

▲ 언론노조 MBC본부는 8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진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인물 성향’ 문서를 공개했다. MBC 영상기자회는 블랙리스트 비상대책위원회를 마련하고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명백한 헌법 위반…검찰 고발”

MBC본부는 향후 진상조사단을 꾸려 모든 직종의 블랙리스트 관련 증거를 수집할 계획이다. 또한 9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블랙리스트 관련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신인수 변호사는 “헌법 제33조 1항 근로자의 노동3권을 침해하는 반헌법행위이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81조에서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이고, 영상카메라 기자가 가진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는 행동을 방해했기 때문에 형법 314조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이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3년을 받았다”며 “그 사건은 보조금 지원에 있어서만 차별이 있었다. 그런데 (MBC는) 같이 몸을 부대낀 동료, 선배, 후배들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와 각종 승진, 연수에서 차별을 둔 것으로 범죄의 질과 양, 강도 측면에서 더 무거운 범죄”라고 지적했다.

MBC 경영진은 이날 “언론노조가 내세운 ‘카메라 기자 성향 분석표’는 회사의 경영진은 물론 보도본부 간부 그 누구도 본 적도 없는 문건입니다. 누가 작성하고 누가 유포했는지도 모르는 ‘유령’ 문건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해서 회사를 비방 매도하는 행위는 언론노조가 늘 해오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MBC는 “알지도 못하는 정체불명의 ‘유령 문건’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해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경영진과 보도본부 간부들의 명예를 훼손한 인사들에 대해서는 형사와 민사 등 모든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연국 MBC본부 위원장은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누가 작성했고 어떤 목적으로 누가 지시했으며, 누가 보고했고 어떻게 추진됐는지 수사를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 언론노조 MBC본부가 공개한 'MBC 블래리스트' 문건 '요주으' ⓒ언론노조 MBC본부
▲ 언론노조 MBC본부가 공개한 'MBC 블래리스트' 문건 일부 ⓒ언론노조 MBC본부
▲ 언론노조 MBC본부가 공개한 'MBC 블래리스트' 문건 일부 ⓒ언론노조 MBC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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