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in 타루트 ⑤]SBS 박수택 기자, 숲과 강이 울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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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박기자, 이곳에 와 주중에는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주말은 꼭 시간을 내 이곳저곳 여행을 하리라 맘먹었다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는 타루트에서 마찬가지로 기차를 타면 한 시간 반 만에 닿는 피우사(PIUSA)라는 데를 다녀왔습니다. 에스토니아 동남쪽 끝단, 러시아 국경에 위치한 아주 한적한 산촌입니다. 우리가 종점에 내리는 유일한 방문자였습니다. 조용해서 참 좋습니다. 가게도 없습니다. 도자기 공방 하나 있는 데, 어느 영혼 맑아 보이는 작가가 작업에 열중합니다. 그때는 삐그덕 문을 열고 들어가 보기는커녕, 창문 사이로 눈빛 살짝 마주쳤을 때도 얼른 피하고 싶습니다. 방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치료차 산촌에 잠깐 떠나와 있으면서 벌써 권태를 느끼며 1920년대 식민지 도시 경성의 황홀을 그리워한 모던보이가 있었죠? 그 이상한 시인 김해경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직까지 ‘모던’이 그리 그립지 않습니다. 21세기 포스트모던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떠나있는 게 좋습니다. 먼지와 소음 등 온갖 공해에서 소외된 이곳 고요의 산책이 바로 지금은 우리가 열중할 존재의 시간입니다. 파트너와 숲으로 난 흙길로 걸음해 봅니다. 인적 없고 주룩주룩 비가 내려 약간 으스스 하지만, 어느덧 절대 한적 천연 산림의 신비에 빠져듭니다. 땅 위에는 이곳 특유의 식물들 천지입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박기자?

▲ ⓒ전규찬 교수 제공

멀리 발트에서 보내는 탱자의 이 뜬금없는 서한이 혼자 오랜 시간 힘겹게 버텨왔을 박기자의 고충에 어떤 위안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먼저 이 말 꼭 전하고 싶습니다. 박기자, 멀리서 위로의 인사를 전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미련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텔레비전 화면에서 환경전문기자로서 빼어났던 박기자의 그 선한 얼굴과 허스키한 음성을 보거나 듣지 못한 지가 한참 되었는데, 그동안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까마득히 그대를 잊고 있었습니다. SBS를 언제 그만두셨는지 아닌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죠. 명색이 언론운동장에 몸을 담근 자로서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못 뵌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나요. 미안합니다. <물은 생명이다>를 진행하던 박기자 신상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 하나의 중요한 방송현장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 안위와 방심의 탱자를 맘껏 화내주십시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전체주의 국가권력에 맞서려는 활동가로서, 진실을 추구하는 시청자로서, 자본국가의 언론장악과 선전검열 문제를 비판해 온 학자로서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해 너무 섭섭했다고 비난하셔도 됩니다. 박기자를 조금은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도, 박기자 인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탱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숲속을 바라보며 반성합니다.

▲ ⓒ전규찬 교수 제공

다시 그때를 돌아보면, 박기자는 상부의 수상쩍은 호출을 받고 있었지요. 4대강개발 선전권력과 결탁하려는, 결탁하자는, 결탁해야 ‘우리’가 산다는 매체자본의 노골적인 장사꾼 술책에 홀로 맞서고 있었죠. 당시를 기록한 취재 노트가 그 증거입니다. 회유를 거부하자 바로 부당하게 전보조치를 당합니다. 기자직을 내놓고 논설위원 한직으로 쫓겨납니다, 결국 SBS보도국 내 4대강 취재팀이 해체되고, SBS에서 4대강 비판 보도가 통째로 사라집니다. 이후 환경 감시할 SBS뉴스는 치명적으로 무력해집니다. 제어 받지 않은 자본 국가 권력은 10년 내내 인간사회의 조건은 물론이고 자연생태의 환경까지 불행하게 파괴해 갑니다.

박기자 혼자 힘으로 막아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SBS에 대해, 위태로워진 SBS의 저널리즘에 관해, 위험하게 통제해 들어오는 SBS 소유주의 전횡에 대해, 내부 언론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바깥의 시청자·활동가·학자 우리가 달라붙어 관심 갖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게 정답이었습니다. 노회한 윤세영 회장이 대놓고 나대지 못하도록, 오만한 태영 자본이 마음대로 SBS뉴스제작에 간섭하지 않도록, 이제라도 늦었지만, 모두가 힘 합쳐 막아내야 합니다. 10년에 걸쳐 이명박·박근혜 부정부패 정권이 철저히 자행한 한국사회·한국생태 파괴사업에 태영이, SBS가, SBS 뉴스가 다시는 또 음모적으로 가담치 못하도록 말입니다.

▲ ⓒ전규찬 교수 제공 

박기자님, 강이 계속 죽어갑니다. 숲이 더욱 사라져갑니다. 한국 생태계는 10년 사이 너무나 큰 재난에 처해있습니다. 심각한 생태문화 파괴양상입니다. 민주공화정의 해체, 언론자유와 저널리즘의 말살, 공영방송과 방송공정성의 파괴만큼이나 중요한 우리의 위험현실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다시 시작해 박근혜 정권 내내 유지·지속되어 온 재해. 4대강을 일방 개발하고 강원도의 숲을 무단 파괴한 죄악은,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뿌리째 갉아먹은 죄악만큼이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은 물론이고 그에 부역한 권력방송에 반드시 물어야 할 죄과입니다. SBS는 대체 어떤 진정한 환경저널리즘으로써 미래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걸까요?

박기자, 회장의 전횡과 폭력, 간섭을, 통제를 용서하지 맙시다. 그리고 길었을 외로움의 시간, 다시 전하는 미안하다는 말에서 작으나마 위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진정 우리의 최고 환경전문기자시던 박수택 기자님께 물어봅니다. 아직도 죽어가는 4대강의 분노, 올림픽공사에 깔린 강원도 숲의 슬픔은 어떻게 하지요? 인간들은 이제 멸망한 정권의 책임자들에게 분노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자연의 족속들이 지난 세월에 겪은 참상은 누가 대신해야 할까요? 이곳 숲속 빨간 베리들이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천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의 숲과 강, 새와 짐승들도 저들끼리 행복을 누릴 자연의 권리가 있지 않나요? 지혜를 부탁드립니다.

 

언론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는 현재 연구를 위해 에스토니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영 방송의 정상화, 독립 PD의 처우 개선 등 언론계 뿌리 깊게 박힌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전 대표가 에스토니아에서 보내온 소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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