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in 타루트 ⑥] 태국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려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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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작년에는 돌꿰는동네후진학교 학생들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에 갔었습니다. 그곳 국립예술학교 학생들과 고려인 이산의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워크숍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나라 청년 작가들이 2주 나름 서로 배움의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근대 이후 민족/국가의 고착된 울타리 안에 단 한 차례도 구속·획정된 적 없이 늘 어디론가 유랑하던 ‘우리’ 역사를 아시아라는 ‘방법론의 공간’에서 다시 사유해 볼 기회가 되어 참 좋았습니다. 그런 생각의 틈을 위해, 최대한 작업 중인 학생들로부터 떨어져 혼자만의 산책도 시도합니다.

사실 탱자는 학교에서 늘 아시아를 횡단하며 사유하고 작업하자 떠들어 왔습니다. 유식한 척하지 말고 쉽게 풀면, 한국 바깥으로 눈을 돌리자는 겁니다. 거기서 ‘그들’ 타자와 조우하고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공간의 여행에서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에 관해 성찰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우즈베키스탄도 괜찮은데, 지나친 관료주의가 맘에 들지 않고 딱딱한 행정주의가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태국으로 행선지를 바꾸어 봤습니다. 탱자도 에스토니아를 잠시 떠나 학생들과 함께 이곳에 2주 정도 머물 계획입니다.

▲ 콰이강의 다리 ⓒ전규찬 교수 제공

여행 중의 여행. 바쁜 일정입니다. 이곳 학들과 함께 위안부의 흔적과 기억, 공간을 찾아 이야기하는 꽤나 야심 찬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한 팀은 노수복 할머니 등의 희미한 자취를 쫓고 있고, 다른 팀은 아시아 여성의 공통된 비참을 기억하는 것의 (불)가능성이라는 만만찮은 테제를 에세이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팀은 아유타야, 칸차나부리 등지의 공간과 건축이 과연 아직까지 ‘그들’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담고 있는지 이미지로 추적 중입니다. 모두가 흥미롭고 중요한 시도들입니다.

과연 두 나라 청년들은 역사와의 진지한 대화에 다큐멘터리라는 양식으로써 성공할까요? 어떤 다큐멘터리로 지난 과거를 현행의 역사 속으로 다시 소환할 수 있을까요? 그 전에, 낯선 저들끼리 우선 좀 더 가까워질 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짧은 시간의 협업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일본과 훨씬 더 친분이 깊은 태국의 청년들은 사실 한국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관해 관심이나 지식이 없다고 솔직히 토로하며 시작합니다. 이번 기회에 최대한 이해하고 공부하겠다는 각오입니다. 그렇다면 한국학생들은 어떨까요? 우리는 과연 뭘 얼마나 알죠?

▲ 아유타야 옛 위안부 수용 캠프로 추정되는 곳의 모습 ⓒ전규찬 교수 제공

참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까지 태국관광에 나섰습니다. 이 글 읽으실 여러분이나, 이 글 쓰는 저도 포함됩니다. 태국은 쌉니다. 싸구려 관광이 가능하죠. 지금도 아무나 마치 국내여행처럼 편히 일정을 잡습니다. 방콕 도심의 환상적인 쇼핑을 즐기러, 복부 치앙마이의 한적한 소수민족 마을을 찾아, 푸켓의 멋진 해변이 선사할 낭만을 쫓아 쉽게 떠납니다. 혹은, 파타야의 밤 세계를 탐하는 사람들이 일행 중에 끼일 수도 있겠죠. 칸차나부리에는 콰이강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방콕 시내에서는 한글이 선명한 노란색 관광버스가 쉽게 눈에 뜨입니다.

그래서 태국은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워진 걸까요? 태국에서 나는 항시 무엇을 보며 즐기고 있었지요? 태국하면 우선 떠오른 이미지와 이야기는 뭐지요? 솔직히 한번 말해 보도록 해요. 당신은 태국에서 이런 기억을 떠올린 적이 있나요? 버마로 끌려갔다 태국에 수용되고 그곳에 남겨진 ‘우리’의 위안부들, 태국-버마 철도공사에 끌려간 ‘우리’의 노무자들, 이곳의 군무원으로 동원되었다 BC 전범으로 몰려 사형 당한 ‘우리’ 포로 감시원들. 이런 ‘우리’의 역사에 관해 제대로나 알고, 제대로 알기 위해서 태국으로 여행한 적이 혹 있으시나요? 아유타야를 그런 이야기를 찾아 헤매고, 콰이강 철교 위를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은 적이 있나요?

태국에서 지난 ‘우리’의 흔적을 찾아보자는 탱자의 이야기가 과하다 여기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내가 현지관광 중이고 외국여행을 떠난 거지, 무슨 역사공부하려고 온 건 아니잖아 항변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편한 관광을 즐기려는 분들에게 솔직히 탱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제 이야기에 애당초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제 독자가 아닙니다. 오직 불편을 감수하는 진정한 여행을, 불편을 체험하는 새로운 여행을 모험하는 여행자들에게만 이런 소감을 전합니다.

전쟁 책임이 있는 일본은 오랫동안 이곳을 찾아 가해의 증거, 폭력의 증언, 야만의 사실들을 완벽히 수집해 갔습니다. 그 끈질긴 노력을 통해 이곳에 ‘인류’의 메시지를 남기고, ‘평화’를 기억하는 기념비를 세우며, ‘우정’을 약속하는 가교를 세우는 데 성공합니다. 태국에는 더 이상 전쟁책임국가 일본을 알리는 표시, 표지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일본 단체 관광객들도 따라서 태국에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희한합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태국에 한국은 여전히 어떻게 남아있고, 이곳에 유기된 ‘우리’ 흔적들을 한국인들은 당사자로서 어떻게 회수 중인가요?

▲ 방콕 1973년 10월 14일 민주화 기념관 모습 ⓒ전규찬 교수 제공

아무것도 한 게 없지 않나요?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차원에서 모두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자취조차 챙길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그들’이 우리의 흔적에 관심 갖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 전에 현실의 태국사회 자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뭐가 있을까요? 저렴하고 맛있는 태국 음식들? K팝과 한류의 여전한 인기? 택시를 타고, ‘톡톡이’에 몸을 실은 채, 혹은 호기심에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고 카오산을 즐겨 찾습니다. 더욱더 화려해져 가는 시엠을 빈번히 출입하고 여전히 분잡한 실론으로 반복해 나섭니다.

그때 우리 눈에 시내 곳곳의 군복 입은 사내들, 근엄한 표정의 경찰들이 제대로 들어올까요? 태국 민주화 운동 기념 공간을 사실상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엄연한 사실을 가까이서 목격할 수나 있을까요? 인터넷 검열이 계속되고, 비판적인 저널리스트에 대한 군기잡기가 자행되며, 왕가의 명예를 지킨다는 이유로 인권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이 반복되는 섬뜩한 현실은요? 현재 태국 사회는 쿠데타로 집권한 수상이 이끄는 반민주적 군사정권 하에 있다는 불길한 사실은요? 현지의 청년들이 군인들을, 군사를, 집권군부를 두려워하는 속내는요?

▲ 방콕 국립경기장역 근처 보스방크루아(NorthBaankrua)역사 공동체 모습 ⓒ전규찬 교수 제공

탱자는 틈만 나면 산책에 나선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습관은 바뀌지 않습니다. 새벽이고 야밤이고 가리지 않습니다. 똑같은 기술입니다. 전시되는 대로 안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방법뿐입니다. 주변정황을 동서남북 제 발로 걷고 제 눈으로 살피며 제 느낌대로 파악하는 것이 답입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키우고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그러면, 제가 (의지와 상관없이) 묵게 된 호텔이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밀어내고 들어선 젠트리피케이션의 산물임을 금방 부끄럽게 간파하게 됩니다.

어째야 하죠? 자본의 번창하는 건축물 바로 뒤편, 레드셔츠라는 이름으로 봉기한 도심빈민 프리케리어트들이 아직도 다닥다닥 슬럼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저 어둠의 공간은요? 그들의 눈에 한가로운 쇼핑객, 호색의 관광객, 그리고 저처럼 한가롭게 산책 중인 ‘파랑’들은 과연 어떻게 보일까요? 환대의 대상일까요, 아니면 적대의 상대가 될까요? 그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는 건 여행에 필수적인 모험일까요, 아니면 사고를 자초하는 무모한 짓일까요? 생각이, 고민이 깊어집니다. 저 밤 고양이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언론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는 현재 연구를 위해 에스토니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영 방송의 정상화, 독립 PD의 처우 개선 등 언론계 뿌리 깊게 박힌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전 대표가 에스토니아에서 보내온 소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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