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미션 임파서블⑪] 소리가 되고 싶은 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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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령도 두무진 ⓒ안병진 PD

[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그래서 이 풍경을 ‘소리’로 어떻게 전할 것인가? 보여주지 않고 오직 소리만으로 인천의 섬을 생생하게 전하겠다는 야심찬 시작이 이제 대답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소리화 되지 않는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라디오로 전할텐가?

올봄부터 가을까지 틈틈이 인천의 섬을 여행하며 소리를 녹음했다. <소리로 떠나는 인천 섬 여행>이란 특집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서였다. 라디오를 듣지 않는 시대, 라디오의 가능성은 ‘소리 매체’라는 데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청각매체를 업으로 삼은 라디오맨으로서 뭐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일종의 오기였다.

동시 녹음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를 만나 입체음향 녹음과 믹싱을 장착하고, 화면해설까지 공부한 베테랑 작가이자 아내가 합세하여 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과 소리로 풀어내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서라운드 입체음향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마치 내가 그곳에 가 있는 듯 리얼하게! 들려주면 되지 않을까. 섬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소리로 체험하면 보는 것보다 더 신비롭고 아름답지 않을까.

가깝지만 우리가 몰랐던 인천의 섬들은 아름다웠다. 우리가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나 유지태는 아니지만, 유지방 가득한 몸을 이끌고 섬에 취해 한 해를 보냈다. 백령도 콩돌해변 파도에 콩알만한 작은 돌들이 나동그라지는 소리, 석모도 보문사의 장엄한 저녁 예불 소리, 교동도의 여문 들판에 불던 바람 소리, 대이작도 삼신할매 약수터에서 들었던 평온한 숲소리, 덕적도 초등학교 솔숲에서 들리던 파도와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들. 소리가 전하는 자연과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취재를 계속할수록 최초의 질문이 결국 우리를 괴롭히고 말았다. ‘그런데 소리가 없는 것들은 어떻게 담을 것인가?’ 이를테면 석모도의 자랑인 노을 지는 풍경을 어떻게 소리로 담을 것인가. 천년을 바라보는 교동도 은행나무 소리를 어떻게 담은 것인가.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백령도 두무진 절경을 어떻게 소리화할 것인가. 굴업도의 쏟아지는 별들을 어떻게 소리로 담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무 소리도 담지 못했다. 애당초 소리로 담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걸 담기 위해 애쓴 우리들의 투박한 소리만 코미디처럼 녹음기에 남아 있다. 백령도 천연기념물 물범을 만났으나, 정작 물범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 탄식했던 우리의 한숨 소리. 노을 지는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앞에 서서 부처님만 쳐다보던 우리의 멍한 눈빛들. 노파가 된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 떡과 커피를 들고 나온 할머니들과 나눈 오랜 이야기들. 이 와중에 ‘소리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며 제작팀을 등진 황당한 스텝까지.

모든 걸 오직 소리로 담아내겠다는 마음은 우리의 욕심이었다. 우리가 들은 소리들 그리고 작은 소리마저 될 수 없었던 섬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이 듣는 이에게 전해지기를 그저 바라는 것으로 이번 섬 여행은 끝이 났다.

섬에 가니 뭐가 제일 좋았냐고 동료가 묻는다. 나는 일 끝내고 밤에 낚시할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적막한 밤, 아무것도 낚지 못했지만 컴컴한 바다에 퍼진 그 고요가 내내 좋았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마음이 내내 평화롭고 좋았다.

경인방송(90.7 MHz) 개국 20주년 특집 <소리로 떠나는 인천 섬 여행> 굴업도, 덕적도, 백령도, 교동도 편이 오는 10월 14일과 15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방송될 예정이다.

▲ 소리로 떠나는 인천 섬 여행 ⓒ유튜브 freeman lovesky 계정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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