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in 타루트⑥]세계의 대학, 대학이라는 세계를 짓밟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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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 in 타루트⑥]세계의 대학, 대학이라는 세계를 짓밟는 것들
  •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 승인 2017.10.12 13:4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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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긴 추석 연휴를 마치고 꽤 만만찮은 후유증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파업대오에 나설 동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주 짠합니다. 무슨 넉넉한 휴식 기간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갑갑한 방통위는 어떻게 압박할지, 악착같이 버티는 저 자들은 대체 어찌해야 할지, 파업대오는 어떻게 유지할지, 주변의 관심은 또 어떻게 붙들어 둘지, 여러 고민과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을 겁니다. 그러면서 다시 함께 행동에 나서 힘차게 파업의 일상을 재개하는 모습을 보니 미안해하면서도 신선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뻔뻔히 출근하는 고대영과 마주하고, 김장겸 일파의 비리를 폭로하느라 정신이 없죠?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동지들. 우리는 당신들을 뜨겁게 지지합니다. 멀리서도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런 약속을 전하며, 탱자는 지난 태국여행의 못 다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겠습니다. 일정을 다 마치고 태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지성의 공간, 타마삿(Thammasat) 대학에 다시 들렀습니다. 군사정권이 기억을 봉쇄한, 수백 명 젊은 생명을 바친 1976년 10월 6일 혁명 기념비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빗물이 고인, 생생한 탄압의 장면을 환기시키는 조각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섬뜩합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저 과거의 이미지들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태국 최고 대학 캠퍼스에 떡하니 들어선 저놈의 군용차량이 생경하면서 두렵습니다. 겁난 탱자는 반대편 텐트 아래에서 휘휘 감시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군복 입은 사내들은 사진으로 찍을 엄두도 못 냈습니다.

▲ 태국 타마삿 대학 내 1976년 10월 6일 봉기 기념비 일부) ⓒ전규찬 교수 제공
▲ 타마삿 대학 내에 배치된 군경 차량 ⓒ전규찬 교수 제공

이게 지금 태국 대학의 불행한 꼴입니다. 쿠데타 군사정권이 아직까지 대학을 물리적으로 태연히 점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학의 치안 스테이트화. 외부로부터의 폭력의 공포가 대학 내부 분위기를 제압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과연 어떤 해방의 학문, 자유의 학술이 진정으로 가능할까요? 실제로 어떤 대항의 지식·불온의 지식인이 바로 그 반역의 시공간에서 변증법적으로 탄생해 왔다는 사실, 그 역사의 아이러니에서 약간의 위안을 느껴야 하는 걸까요? 아, 이 환멸의 현장을 빠져 나오면서, 탱자는 언뜻 다시는 태국에 걸음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저 불길한 소외의 현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도 더욱 악착같이 걸음 해야지 하는 작심을 하게 됩니다.

여행자 저널리스트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러면서, 돌아봅니다. 저게 남의 일인가? 과거 우리의 모습인가? 지금 우리 대학은 어떻습니까? 군사라는 확연히 눈에 띄는 역사의 유물을 대신한, 신자유주의라는 쉽게 눈에 잡히지 않는 신종 괴물이 아직까지 대학을 잡아먹고 있고 있지 않나요? 평화와 거리 먼, 또 다른 점령상태. 무서운 참상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 일 아닌 듯 느껴지는 사태이기에 더욱 무서운 현실. 신자유주의는 대학을 놀라운 속도로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문영어로 롤백(Roll-back)이라고 하죠. 더 이상 영향력이 확장되지 못하도록 적절히 봉쇄(Containment)하다 유리한 국면이 되면 재빨리 말아버리는 체제전략입니다.

▲ 타루트 대학 본관 모습 ⓒ전규찬 교수 제공

그것은 미국에서 90년대 일찌감치 시작해 한국에서 2000년대 가히 폭발적 수준에 이릅니다. 오늘날에는 일본이나 홍콩 등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전역의 보편·공통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탱자가 머물고 있는 발트·에스토니아의 대학, 1623년 스웨덴 국왕에 의해 설립된 매우 유서 깊은 이 타르투 대학 또한 어찌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까? 관료주의와 일방주의의 급증, 학술행위의 도구화와 기능화, 분주한 학과 통합과 퇴출, 미래 학문세대의 절망 등이 비슷한 증세로 나타나고 있을 겁니다. 국가가 국고 지원을 의도적으로 줄이면, 대학은 자동적으로 외부 지원금이나 후원금에 목을 매게 됩니다. 시장이 대학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면, 교수들은 덩달아 프로젝트 따내는 데 혈안이 되지요.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곳 대학도 마찬가지 게 분명합니다. 예외를 허락지 않는 글로벌 신자유주의 체제입니다.

대학에는 외부 일반 독자들에게는 아무 영양가가 없는, 자기들끼리의 글쓰기에서 형식적으로만 인용되는 데 그치는, 오직 실적평가 때나 빛나는 논문 자동생산 로봇들의 교수라는 이름으로 분주합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오랜 <대학(大學)> 본연의 가르침은 뒷전입니다. 선생·학생 간 배움의 관계는 더 이상 아름답게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학은 결국 대화적 정치윤리사회가 아닌 전문적 연구물주물공장으로 소외·고립되고 맙니다. 체제에 유리한 정보와 데이터, 이론, 담론, 지식 생산 장치가 되고 말지요. 대학 지식인 사회의 멸망인데,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가 짧은 기간 이룩한 놀랍고 결정적인 성과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사실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아주 중대한 결과입니다. 대학의 체제 내부화, 권력 기제화는 사회의 종말, 정치의 퇴장으로 직결됩니다.

▲ 2009년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 당시 석관동에 위치한 한예종 본관 모습 ⓒ전규찬 교수 제공 
▲ 2015년 3월 31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영신관 앞에서 중앙대학교 학생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중앙대 대학본부 규탄 및 공대위 참여 독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학에 몸담은 사람으로 하는 엄살이 아닙니다. 공적·정치적 영역으로서의 대학이 사유화되고, 대학과 바깥의 거리가 단축되며, 대학이 전문학교화 할수록, 사회는 자기성찰·지성발견의 주요기능 중 하나를 상실하게 됩니다. 권력의 무단지배가 가능해집니다. 자본국가가 야수처럼 대학을 노리는 까닭이죠. 물론, 태국 군사정권처럼 군인·차량을 주둔시키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점령방식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무섭게 확인하지 않았나요? 2009년, 국무총리실과 감사원, 국정원 등 온갖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대학 자율성을 침탈한 한예종 사태를 탱자는 지금도 몸서리치며 기억합니다. 서울대학 법인화가 있었죠. 속물의 재벌이 대학 독립성을 철저히 유린한 중앙대 사태는 또 어떻습니까? 삼성이 소유한 성균관대는 <중앙일보> 랭킹에서 오르니 진정한 학술 공동체라도 된 걸까요?

당신들이 나온, 당신들의 후배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대학이 지금 이런 꼬락서니입니다. 서글픈 신자유주의 대학 풍속도. 군경이 장악한 태국의 꼴은 아니라 다행이다 자위할 겁니까? 이런 참상을, 저런 타락상을 공영방송은 철저히 은폐했습니다. 오히려 자본국가에 의한 대학멸망의 역사를 조장·홍보·미화하는 프로그램을 내놓는데 급급했습니다. 체제에 영합하고, 권력에 부역하며, 현상에 승복하는 사이비대학으로의 타락을 방송이 노골적으로 조장합니다. 그 죄악이 큽니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다시 끊어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반드시 이번 파업에서 승리해 공정방송·공영방송을 다시 세워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현 상황을 방기한다면, 대학세계를 지금처럼 자본국가의 점령상태로 내버려두면, 우리 사회에는 절대 희망이 없습니다. 어깨가 무겁겠지만, 필승합시다.

 

언론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는 현재 연구를 위해 에스토니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영 방송의 정상화, 독립 PD의 처우 개선 등 언론계 뿌리 깊게 박힌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전 대표가 에스토니아에서 보내온 소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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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성 2017-10-12 16:47:41
Max Weber, Wissenschaft als Beruf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1917년 11월 강연 (날짜 불분명)

조필성 2017-10-12 16:47:25
"학문은 오늘날에는 자각과 사실관계의 인식에 이바지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행해지는 '직업'이지, 구원재와 계시를 주는 예견자나 예언자로부터 받는 은총의 선물이 아니며 또한 세계의 의미에 대한 현인과 철학자의 반성의 일부분도 아닙니다.“

조필성 2017-10-12 16:46:58
"강단에 서는 사람이 지도자 자질을 갖고 있기를 바라는 요구에 직면해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입니다. 더 우려할 만한 것은 강의실에서 지도자인 체하는 것이 각각의 대학교수에게 방임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흔히 지도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역할을 가장 적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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