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라인업 부재…MBC ‘막장드라마’ 벗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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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테이블] MBC 파업 이후 드라마 정상화 방향은

두 달 넘게 이어진 MBC노조의 파업이 끝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MBC 구성원들이 외쳤던 ‘공영방송 쟁취’는 파업이 끝난다고 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현장 복귀를 서서히 준비하고 있는 PD들이 파업 이후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유다.

김장겸 MBC 사장 해임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MBC 구성원들은 드라마, 예능,시사교양 등 각 부문별로 ‘MBC 정상화’를 어떻게 할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전날 늦은 시간까지 드라마국 총회에 참석한 손형석‧윤영조‧박상훈‧이동현‧최정인 PD가 PD연합회 회의실에 모였다.

 

▲ 지난 8일 PD연합회 회의실에서 진행된 MBC 드라마PD 간담회. ⓒ구보라 기자

손형석 PD 2000년 입사, <파수꾼> <투윅스> <빛나거나 미치거나> 연출

윤영조 PD 2005년 입사, 기획PD <앵그리맘> <그녀는 예뻤다> <역적>

박상훈 PD 2007년 입사, 단막극 <기타와 핫팬츠> <생동성 연대> 연출

이동현 PD 2012년 입사, <화려한 유혹> <불어라 미풍아> 조연출

최정인 PD 2016년 입사, <불야성> <20세기 소년소녀> 조연출

“2013년 이후 신입 안 뽑아 …인력 충원 절실”

손형석 2012년 파업 때에도 드라마 방송을 모두 멈추진 않았다. 드라마 PD들이 이번에 가장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내년 2월 이후엔 라인업이 없는 상태다. 예능이나 시사교양국과 다르게 드라마는 사전 준비가 6개월 정도 필요한데 한텀 정도는 쉬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총회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동현 단기처방이 아니라 MBC 드라마를 재건하겠다는 각오로 파업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게 인력문제다. MBC는 IMF 때에도 공채를 건너뛰지 않았는데, 2013년 이후 신입 공채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특히 숙달된 조연출 그룹이 부족하다.

박상훈 드라마국 PD가 56명 정도 되는데, 1990년대 중후반에 입사한 선배들 중에 회사에 남아있는 선배들이 거의 없다. 1996년 입사한 선배 8명 중 6명이 나가고 2명만 남았다. 허리나 어깨의 위치에 있는 연출 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이동현 어제 충회에서 드라마국 막내 사원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선배들이 나갈 생각을 하고 일하는 걸 보면 후배 입장에서 동기 부여가 안 된다. 다 같이 즐겁게 일하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 손형석 MBC 드라마 PD.

손형석 회사를 떠난 분들의 선택도 존중한다. 옮긴 곳이 월등하게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MBC를 떠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MBC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게 힘들어서 일수도 있다. 파업에 나서게 된 문제뿐만 아니라 드라마 제작 시장도 급변하고 있다.

이동현 돈의 흐름을 보면 연기자나 엔터사 쪽으로 흐르고 있다. 고액을 받는 작가들이 늘면서 좋은 작품을 확보하려면 방송사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방송사의 구조상 예산을 집행하려면 오랜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외주제작사는 대표 한명의 결단으로 이게 가능하다.

손형석 초반에는 케이블채널에서 배우를 캐스팅을 하려면 웃돈을 주고 데려 갔다. 이제는 배우들이 같은 대본이더라도 MBC와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경영진 단기성과 급급…드라마 질 하락 초래”

박상훈 지난 십년간 경영진은 제작비를 줄이는 식으로 단기 경영성과를 내는 데 열을 올렸다. 제작비를 줄이면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게 불가능하다. 작품 자체의 질이 떨어지고 출연하는 배우의 폭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윤영조 몇 해 전 편당 제작비 상한선을 ‘시대극과 사극은 4억원’ ‘미니시리즈는 3억원’에 맞추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당연히 대형 기획은 모두 중단됐다. 이후 KBS <태양의 후예>가 뜨니까 ‘왜 우리는 대형 기획은 없냐’는 이야기가 위에서 나왔다. 적은 제작비로 적당한 질을 추구해서 만든 게 결국 막장 드라마다. 처음에는 중장년층에 어필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박상훈 20~40대 시청자들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경영진은 아직까지도 전체 시청률을 기준으로 본다.

이동현 대기업 마케팅팀 관계자에게 왜 MBC에 광고를 팔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시청층이 나이가 많아 굳이 광고를 할 이유가 없다고 답변하더라.

박상훈 라인업도 1~2년 장기적으로 구성하는 게 아니라 급하게 들어가는 게 많다. 왜 하는지 모르는 프로젝트가 위에서 내려오는 거다.

▲ 윤영조 MBC 드라마 PD

윤영조 내부에서 드라마 기획을 하려면 인력과 시간, 경제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은 ‘기획은 열려 있다’는 말뿐이다. 기획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작가나 외주사 관계자들을 만나서 ‘같이 해보자’라고 말하는 게 왠지 사기치는 느낌이다.

손형석 MBC 수목드라마가 잘 나가던 1990년대에는 연출자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세웠다. 연출 PD가 직접 작가를 물색하고 외주제작사를 접촉하면서 다양한 드라마를 할 수 있었다. 이후 정책적으로 외주제작 드라마 비율을 늘려가면서 자체제작 드라마 비율이 줄고, 종편 등의 채널이 생기면서 좋은 작가와 작품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졌다.

“상명하복 분위기에 다양성 드라마 ‘원천 봉쇄’”

윤영조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가 미친 영향도 크다. 드라마국장이 있던 시절에는 같은 사무실에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했는데, 본부장 체제로 넘어간 뒤로 CP들만 본부장을 ‘알현’하는 구조가 됐다. 드라마라인업 선정 위원회가 있지만 요식행위가 된 지 오래다. 라인업을 누가 어떻게 짜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평PD들도 용기를 내야 한다. 한 달 전에 라인업을 메꾸느라 급하게 들어가느니 ‘재방’이나 미드를 내보내더라도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류 채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지금 MBC의 모습이 일류는 아니지 않나.

최정인 2016년에 입사해 처음 느낀 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조직이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 실패한 PD는 차기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다른 방송사에서는 웹드라마나 짧은 연작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의 드라마가 나오고 있다. 입사 후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맞는 길을 찾아가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없었다.

손형석 MBC가 새로운 시도를 전혀 안했던 건 아니다. 웹드라마 제작, 극본공모도 여러 번 했다. 문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시청률의 잣대로 실패를 단정한다는 것이다. 제작부서에서 드라마를 기성품처럼 평가 검증하고 있다.

이동현 리스크테이킹(risk taking)은 고스란히 연출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2012년 이후 MBC에 관료주의가 심해지면서 관리자가 위험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연출자에게 책임을 넘기고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라는 반응이다. 그러다가 흥행에 실패한 드라마가 해외 판매를 통해 나중에 돈을 벌어도 PD의 공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 박상훈 MBC 드라마 PD.

박상훈 평가의 기준이 PD로서의 자질과 덕목 등이 아니라 PPL을 얼마나 받았나, 제작비를 얼마나 덜 썼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평가 기준은 드라마 완성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자연스럽게 PD는 촬영 일수를 줄이려고, 밤샘 촬영을 하고 충분한 준비 없이 급하게 방송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

윤영조 회사 경영진이 드라마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드라마에 대한 지원을 R&D 관점에서 해야 한다. 현재 드라마 제작부서와 사업부서가 분리되어 있는데 드라마 기획단계부터 홍보, 마케팅팀 등의 사업 파트를 포함해 프로젝트 단위로 조직을 재편하는 게 필요하다.

“달라진 시장 환경, 경영진 인식 바뀌어야”

손형석 드라마 국장 본부장 등의 간부들이 자신의 경험으로 현재의 드라마를 평가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시장을 독과점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 한국 시청자보다 중국 시장을 보고 나오는 드라마 기획이 많다. 과연 현실에 안주해 중국 한류에 기대 드라마를 제작해도 되는 것인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MBC가 드라마국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PD의 역할을 ‘기획형’과 ‘디렉터’ 중에 어디에 무게를 둘지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 이동현 MBC 드라마 PD.

이동현 회사에서 KBS <태양의 후예>의 성공을 분석한 드라마 활성화 전략 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결론이 ‘송중기와 송혜교’ 캐스팅이었다. 드라마의 성공하기까지 다양한 요인이 있을텐데 표면적인 현상만 보고 분석을 한 것이다.

박상훈 김장겸 사장이 취임하면서 ‘품격있는 젊은 방송’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콘텐츠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방송 시간과 편수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면서 드라마의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손형석 30~40년 동안 통했던 드라마 공식은 이미 깨졌다. 예전에 프로그램 시청률이 20%는 기본으로 나왔지만 이제는 1%대 프로그램도 나오고 있다. 시청률 6~7%면 잘 나온 편이다. 콘텐츠 중심 회사라고 말만 할 아니라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tvN의 장르물이 자리를 잡기 까지 10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낮은 시청률과 거듭된 실패를 학습비용이라고 여기고 지속적으로 밀어붙인 성과다. 우리도 10년 동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자는 건 아니지만 장기적인 안목은 있어야 생각한다. 매번 연말 정산만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이동현 요즘 KBS 드라마를 자주 보는데 같은 지상파 방송사이지만 드라마 포맷이 다양한 편이다. 8부작으로 편성된 KBS <란제리 소녀시대>는 단막극에 한두 번 나온 연기자를 주연급으로 캐스팅했다. <고백부부>도 세대를 아우르는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재미도 있다. 자회사를 만들어 빠른 의사결정과 유연한 소통 구조를 만든 게 주효했던 게 아닌가 싶다.

박상훈 (김장겸 사장 후임으로) 오는 새로운 경영진이 열린 자세를 보이고,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은다면 현재 MBC 드라마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MBC처럼 숙달된 인력과 우수한 제반 시설이 결합된 조직은 흔치 않다.

손형석 현장에 기반을 둔 MBC의 PD 트레이닝 과정은 여전히 강점이다. 누가 드라마국에 오더라도 조연출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는데, 현장이 중요하다는 전통과 시스템은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 최정인 MBC 드라마 PD.

최정인 공영방송인 MBC는 이익 창출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송사다. MBC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상훈 드라마는 감동과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다. 입사할 때 어떤 선배에게 드라마 PD가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답했다. 드라마는 우리 시대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MBC가 다시 재미있고 의미있는 드라마로 시청자들과 만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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