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 뉴스' 계속하는 MBC 보도국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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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잠정 중단 뒤에도 제작거부 계속 하지만...'모니터링' '백서 작성' 등 분주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소속 보도국 조합원들은 총파업 잠정 중단 이후에도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대신 매일 오전 한 자리에 모여 전날의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갖는 등 '정상화' 이후의 MBC 뉴스를 준비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PD저널=이미나 기자]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전국수학능력시험이 전격 연기된 15일 오후, MBC <뉴스데스크> 날씨 리포트는 엉뚱하게도 "수험생들은 따뜻하게 챙겨 입으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날도 <뉴스데스크>는 미리 대부분의 리포트를 녹화해 방영하는 이른바 '녹화 뉴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시작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아래 MBC본부)의 총파업이 72일 만에 잠정 중단됐지만, 아직도 '정상화'에 이르지 못한 곳이 몇 군데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MBC 보도국이다.

MBC 보도국 소속 조합원들은 총파업이 잠정 중단된 뒤에도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뉴스를 생방송으로 송출할 수 있는 기술 부문 조합원들도 제작 거부에 동참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녹화 뉴스'가 계속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난 14일 총파업 잠정 중단을 앞두고 노조가 연 기자회견에서 김연국 MBC본부장 또한 지금의 MBC 뉴스를 '적폐'로 규정하며 "현 보도국장 밑에서 다시 뉴스를 만들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보도국 조합원들은 매일 오전에는 약 1시간 동안 전날의 뉴스들을 모니터한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에 참석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소속 보도국 조합원들은 총파업 잠정 중단 이후에도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대신 매일 오전 한 자리에 모여 전날의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갖는 등 '정상화' 이후의 MBC 뉴스를 준비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지난 21일 오전 보도국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이날은 MBC 본사에 검찰이 대대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보도국 조합원들이 전일 방영된 <뉴스데스크>의 내용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자리는 빼먹지 않고 열렸다.

이날의 화제는 <뉴스데스크>에 인용된 영상에 대한 것부터 연일 계속되는 지진 관련 뉴스 등 다양했다. 발표자들은 "지금의 MBC 뉴스는 뉴스 없는, 아이디어 없는, 현장 없는 뉴스"라며 "취재원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는 물론, 독립심과 집요함이 앞으로의 MBC 뉴스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매일 오후 2시에 열리는 편집회의를 앞둔 오후 1시 40분께부터는 손 팻말 시위도 벌어진다. 박지민 노조 보도부문 부위원장의 통솔 아래 보도국에서 회의실로 가는 통로 양 끝에 나란히 선 조합원들은 "적폐뉴스 중단하고 MBC 뉴스 재건하자", "김장겸 뉴스 적폐인사 즉각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문호철 보도국장을 비롯한 보도국 간부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들 사이로 지나갔다.

박 부위원장은 <PD저널>에 "앞으로 시청자에게 새로운 MBC 뉴스를 보여드릴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MBC 뉴스를 심각하게 훼손해 온 보도국 간부들 밑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손 팻말 시위를 벌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소속 보도국 조합원들은 총파업 잠정 중단 이후에도 제작 거부를 이어가며 매일 오후 손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뉴스의 속성이 그렇거든요. (간부들이) 데스킹하는 과정이 있는 한 그들이 (기사 생산에) 개입할 수밖에 없잖아요. 시청자에게 '(김재철 전 사장 체제 이래) 9년간 싸워온 노조 조합원들이 다시 돌아가 만든 뉴스가 이 정도인가'하는 혼란을 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지민 부위원장)

이 외에도 이들은 자체적으로 팀(백서팀)을 꾸려 지난 9년간의 MBC 뉴스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백서 작성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 부위원장은 "보도국 소속 310명의 조합원들이 지난 9년간 MBC 뉴스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 이면에는 누구의 지시가 있었으며 어떤 시스템이 작동했는지 등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취합했다"고 전했다.

2014년 당시에도 백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상황적인 이유로 한계가 있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광범위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 수집과 각 이슈별 정리, 여러 조합원들의 기억을 종합해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것까지가 현재 백서팀의 일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소속 보도국 조합원들은 총파업 잠정 중단 이후에도 제작 거부를 이어가며 매일 오후 손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지난 2014년에 MBC본부장을 맡았던 이성주 기자도 최근 백서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기자는 24일 <PD저널>에 "(백서 내) 범주 중에 처음 우리들도 생각하지 못했다가 추가된 범주가 있는데, 바로 '방송 사유화'"라며 "(백서 작성 작업 중) 그동안 전 경영진이 보도국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얼마나 잘못된 지시들을 내려 왔는지, '부역자' 명단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 중 얼마나 나쁜 행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지 등의 상황이 추가적으로 발견되는 등 내용이 워낙 방대해져 작업 완료가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보도국에서의 뉴스들로 MBC 뉴스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표현할 만큼 낮아지지 않았습니까. 이 지나온 과정들을 반성하고 되짚어 보는 일이 백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고자질을 하거나 개인적인 일기를 쓰자는 게 아닙니다. 결국은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기 위한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가능하면 각 범주별로 '제언'이라는 항목을 두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성주 기자)

보도 정상화 이후를 대비하는 '뉴스 재건팀'도 최근 꾸려져 활동을 시작했다. 박지민 부위원장은 "앞으로 (MBC 뉴스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하는 팀"이라며 "또 사회의 사건 사고들이나 정치적 사안들을 어떤 자세와 시각으로 취재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 등도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보도국 소속 조합원들은 다음주 중 자체 간담회를 열고, 공정보도를 위한 조합원들의 요구사항들을 모아 내달 선임되는 새 사장에게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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