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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2 18:00
  • 수정 2017.12.26 17:25

“시사교양이 MBC 신뢰 회복 견인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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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근행 MBC 시사교양본부장

▲ 이근행 MBC 새 시사교양본부장 ⓒ김성헌

[PD저널=이미나 기자] 2009년, 이근행 PD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 당선자로서 노동조합 특보에 “우리가 이 시대에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썼다. 어느 때보다 거센 한파가 MBC에 몰아닥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 당선 일성이었다.

이 말은 현실이 됐다. MBC는 세 번의 파업을 겪었고, 네 명의 사장을 겪어냈다. 그 과정에서 해직되는 등 징계를 받거나 현업에서 배제된 이들의 수는 셀 수 없었다. 앞장서 싸운 이근행 PD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직된 뒤 ‘특별채용’ 방식으로 MBC에 돌아왔지만, 시사교양 PD라는 본업에서는 멀어진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 PD는 2009년 당시 이렇게도 썼다. “겨울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언제나 봄꽃은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 말도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찬바람이 한참 매서워지던 2017년 11월, MBC에는 때 이른 봄이 찾아왔다. 김장겸 전 사장이 해임됐고, 해직자 출신 최승호 PD가 사장이 됐다. 쫓겨났던 구성원들도 모두 제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 꽃을 피우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근행 PD는 이 같은 마음으로 새 시사교양본부장 자리를 수락했다고 했다. 2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만난 이 본부장은 “앞으로 시사교양 부분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MBC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찾아오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근행 본부장은 파업 기간 동안의 공백기, 그리고 긴 시간 이어진 MBC 내부의 탄압 때문에 현재 MBC의 시사교양 부문이 크게 무너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본부장은 “저항은 방향과 대상이 확실한 만큼 내 생각만 다잡고 흔들리지 않으면 됐지만, 적폐를 치우고 (MBC 시사교양 부문을) 재건해 내는 일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과업도 많다”고 털어놨다.

시사교양본부장으로 임명된 후 일주일이 정신없이 흘러갔다고 했다. 일단 이 본부장은 그동안 흩어져 있던 구성원들을 결집해 새롭게 조직을 꾸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최근 <PD수첩> 등 전통적인 탐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부서부터 <MBC 스페셜> 등 다큐멘터리부서, 경쟁이 치열한 생활정보 프로그램 및 외주 프로덕션과의 보다 수평적인 상생관계를 담당하는 콘텐츠협력센터, 그리고 시사교양 부문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프로그램개발 부서까지 일단 진용이 갖춰진 상태다.

이근행 본부장은 “일차적으로는 붕괴된 제작기반을 복구하는 게 급하고, 나아가서는 (시사교양 부문의) 체력을 회복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지금이 바닥이라면, 1년 정도 안에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PD라는 집단은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될 때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여기에 액셀을 밟는 건 (내적 자발성과) 경쟁심이라고 생각한다. 방향이 틀어지지 않는 이상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앞으로 ‘건강한 (선의의) 경쟁’을 장려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장 직속 체제가 된 현재의 시사교양본부에 과거와 같은 경영진의 개입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는 “제작 부문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 짧은 기간 안에 프로그램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뿐”이라며 “앞으로 사장이 (취재) 아이템을 가지고 통제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이근행 MBC 새 시사교양본부장 ⓒ김성헌

“붕괴된 제작기반 복구가 가장 시급”

- 그동안 MBC 내부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근행 본부장도 해고된 뒤 복직된 후에도 TV주조정실에서 본업과 관련 없는 일을 해야 했다. 그동안 가까이에서 지켜 본 MBC의 시사교양 부문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너무 망가져 볼 수도 없었고 볼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모니터를 해야 하니까 TV를 봐야 하는데, 장기간 ‘도’를 닦으면 봐도 안 보이고 들어도 안 들리는 경지에 갈 수 있다. (웃음) 다루어야 할 것을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를) 방기하거나 회피하고, (권력에) 순응하면서 그저 연명했다고나 할까. 비겁한 시간을 보냈다는 게 솔직한 평가라고 본다.”

- 그런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게 한 편으로는 상처가 됐을 수도 있겠다.

“나뿐만이 아니라 MBC 구성원들이 누구보다 MBC를 지키려고 했고, 공영방송의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싸워 왔다. 지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살아남기 위한 과정도 처절했다고 본다. 9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는데, 어느 때보다 잔혹했던 정권과 경영진의 탄압 속에서 오늘을 맞이한 게 기적과 같이 느껴진다.”

- 투쟁 과정에서 2014년 분리됐던 교양제작국이 이번 조직개편에서 부활, 승격돼 시사교양본부가 됐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PD들끼리는 ‘분리’라고 안 한다. ‘해체’라고 했다. 그것도 의도적인 해체. 공영방송에서 시사교양 부문은 국민에게 유익한 정보와 지식을 주는 동시에 우리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나아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과거 경영진이 이걸 해체해 없앴다는 건 공영방송으로서 건강성을 지키려는 집단을 약화시키고 퇴출시키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그 속에서 시사교양 부문 구성원들은 유랑민 같은 생활을 했다. 말하자면 시사교양의 유랑 시대였던 거다.

다시 시사교양본부가 생긴 건 MBC 부활의 한 축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거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면서도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하는 콘텐츠를 통해 공영방송 MBC의 가치를 실현하는 튼튼한 축이 되려고 한다. 그동안 (시사교양 부문) 인적 자원도 많이 약화됐고, 제작 환경도 거의 황폐화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결집한 시사교양 PD들의 의지도, 사기도 많이 올라와 있는 상태다.”

- 그 ‘의지’의 일환으로 시사교양 PD들은 지난 2주간 <PD수첩>을 통해 지난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방송을 본 PD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번 파업 말미에 시사교양 PD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 총 4편이다. 당시는 사실상 지휘 공백인 상태였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어떻게 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때였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이 프로그램들을 준비했다는 것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질적으로도 괜찮았다. 과거에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다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울컥하고 고통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새 출발을 하게 만드는 세례 의식과 같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작에 참여한 PD들도, 시청한 PD들도 그런 점에서 분발하게 된 것 같다. 결과적으론 내부의 의욕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었다. 현재 <PD수첩> 제작부서에 들어간 PD들 중 반 이상이 자원한 거다. 입사해서 이런 광경은 처음 봤다. (웃음)”

- 해직됐다 돌아온 강지웅 PD가 <PD수첩> 담당 부서를 이끌게 됐다. 한학수 PD가 진행자가 된 점도 눈에 띈다.

“<PD수첩>과 같은 탐사 저널리즘 프로그램이 국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힘을 가질 때 MBC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회복된다고 봤다. 강지웅 PD는 워낙 인화력이 있는 인물이다. 부서 안의 사람들을 잘 관리하고 도와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한학수 PD는 과거에도 <PD수첩>을 했고, 유능한 PD다. 한 PD가 <PD수첩>에 돌아오는 건 지금 시점에서 상당한 의미도 있을 것이고, 프로그램 새출발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 <PD수첩> 외, 시사교양본부 내 다른 부서에는 각각 어떤 과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장기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제작 환경을 개선시켜가는 일도 중요하다. 시사교양 부문이 다양화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지켜야 할 영역이 있다면 바로 다큐멘터리다. 소위 ‘명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브랜드화하고,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투자해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다.

생활정보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전통적인 지상파 TV의 시청 층으로 꼽히는 40대, 50대 주부층에 MBC가 건강하고 유익하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사실은 아침이 (방송사 간) 전쟁터인데, 지금까진 어떤 측면에선 질적인 저하가 있었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환경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런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공영방송으로서 질적 하향화에서 벗어나 변화를 주고 싶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외주 프로덕션이 제작한다. 앞서 언급한 열악한 환경에서 시청률 전쟁까지 감당하기가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외주제작 환경개선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됐고, 최승호 사장도 충분히 유념하고 있는 부분이다. 제작환경을 개선하는 일과 더불어 프로그램의 질적 개선을 함께 고민하겠다. 단기적으로 손볼 수 있는 부분은 고쳐 보고,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단계적으로 개선해 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예전엔 MBC 시사교양 부문에 <경찰청 사람들>이나 <이야기 속으로>와 같은 킬러 콘텐츠가 있었다. 당시엔 시청률이 30% 가까이 나오고 해서, 경영진이 ‘시청률을 좀 낮춰 봐라, 선정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사회를 감시하는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를 휘어잡을 수 있는, 그래서 그걸 보기 위해 (시청자가) 빨리 집에 가게 하는 프로그램을 하나 내지는 두 개 정도, 적어도 일 년 안에 론칭하는 게 목표다. 시사교양 부문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보고 싶다.”

▲ 이근행 MBC 새 시사교양본부장 ⓒ김성헌

사장 직속 체제, "전폭적인 지원 의지 표명"

- 일각에선 시사교양본부 등 콘텐츠를 담당하는 부서가 사장 직속이 된 것을 두고 사장이 제작에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조직 개편은 콘텐츠 제작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사장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단기간에 MBC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일이다. 우려하는 바도 사장이 알고 있을 것이고, 향후 운영상 문제가 있으면 보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지 않았나. 콘텐츠 제작에 간섭하거나, 예전처럼 정치적 아이템을 던져 주거나 통제하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장 일만 해도 바쁠 텐데, 무수하게 많은 제작 관련 업무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하면 아마 감당하지도 못할 거다. (웃음)”

- 지금까지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발맞추어 나가는 일도 과제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경쟁자도 많다. 그 가운데 MBC의 시사교양 부문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 보나.

“미디어 환경이 변했다는 건 MBC 구성원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정치적 이유로 이에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고, 전 경영진이 책임을 방기한 부분도 있었다고 본다. 크게 봤을 때 지상파의 매출이 줄고 있고, ‘본방사수’족은 사라지고 있다. 이른바 ‘지상파 프리미엄’도 없어진 지 오래다. 예전엔 지상파냐, 케이블이냐 하는 수단 자체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젠 매체에서의 우월성은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플랫폼에서 우리의 콘텐츠가 유통될 수 있게 만들고, 제작 시스템과 콘텐츠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 궁극적으로는 시사교양 부문의 재건이 목표일 것이다. 얼마나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나.

“장기간 제작환경 황폐화가 이루어졌고, 직전의 72일 파업 기간 동안의 공백기도 있었다. 이 공백이 만들어 놓은 상처, 훼손된 부분이 분명 있다. 이걸 복원하고 보강하는 게 일차적으로 급하다. 체력 회복도 필요하다. 일정 궤도에 올라서면 적은 체력으로도 멀리 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6개월에서 1년간은 하는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1단계 상승은 보여주고 싶다.

<PD수첩>은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상당 부분을 투자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고, 그 기간 내에 킬러 콘텐츠도 하나 만들어 보고, 다큐멘터리도 시청자에게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획을 몇 차례 보여주었으면 한다. 또 우리만으로 부족하다면 문호를 개방해 외부의 유능한 크리에이터들과 결합하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 이 정도가 1단계, 정상화 겸 한 단계 상승이라고 본다. 이 단계가 성공하면 이걸 바탕으로 다시 한 단계 상승을 추구해 보겠다.”

- 시사교양본부장이 아닌 이근행 PD의 입장에서는, 보직을 맡느라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사교양본부장은)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이었다. 제작 여건을 좋게 만들어야 전체적인 아웃풋도 좋아질 테고, 그래야만 MBC가 살아날 수 있다면 나는 이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시사교양본부장으로서 평가를 받고, PD로 돌아갔을 땐 다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 예전 인터뷰에서 ‘밑바닥까지 내려가 사람들을 만나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전하기도 했다. PD로 돌아갔을 때,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나.

“사실, 공격적으로 무언가를 고발하는 건 힘들어 하는 스타일이다. (웃음) 하면서도 마음이 가볍지 않다. 날 서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어떻게 보면 상대방도 다치고, 나도 다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쪽은 힘들어하는 편이라 나중에 프로그램을 만들더라도 따뜻한 것들을 하고 싶다. 그동안 우리는 처절하게 싸우면서 변화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서로 웃고, 소통하면서 문제 인식이나 나아가야 할 방향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근행 MBC 새 시사교양본부장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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