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침체기 보낸 시사교양, 기지개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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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장르 결산 ③시사교양] 정통 시사교양 공백 속 젠더 등 다양한 소재 프로그램 선전

[PD저널=이미나 기자] 2017년 방송가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크게 ‘흥하지’ 못했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과거 정권에서 입은 내상으로 이미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파업으로 인한 방송의 공백기가 생기면서 그나마 희미하게 이어지던 목소리마저 낼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 SBS와 JTBC 등이 시사교양의 앞날을 모색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강력한 주자들이 동력을 잃은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경쟁은 김이 빠져 보였다.

그러나 ‘시사교양의 침체기’ 속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갈증을 풀어 줄 만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꾸준히 등장했다는 점은 의미가 깊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어진 페미니즘 열풍이 브라운관에 담겼고, 프로그램 간 경계를 허물고 예능인 듯 시사교양인 듯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프로그램들이 여러 편 방영되며 숨통을 틔우는 모양새다.

그리고 2017년의 끝자락에서 <PD수첩>이 방송을 재개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2018년, 시사교양 명가 자리를 놓고 방송사 간의 경쟁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페미니즘' 열풍을 타고

▲ EBS <까칠남녀>의 한 장면 ⓒEBS

미국의 온라인 사전인 메리엄-웹스터사는 올해의 단어로 '페미니즘'을 선정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출판계에서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속속 출판됐고, 인터넷에서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발맞춰 방송가에서도 그간 크게 각광받지 못했던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차례로 등장했다.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SBS <SBS 스페셜>이 제작한 2부작 다큐멘터리 '바디 버든'은 시의적절하게 쟁점을 짚어낸 프로그램으로 주목을 받았다.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SBS 스페셜> '82년생 김지영, 세상 절반의 이야기'는 1980년대 태어난 다양한 ‘지영씨’들과의 만남을 통해 여성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을 보여줬다.

특히 EBS <까칠남녀>는 데이트폭력에서부터 '맘충'이나 '꽃뱀' 등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 임신중절, 나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룸으로써 젠더 혹은 섹슈얼리티 관련 이슈에 대한 시청자의 이해를 넓히고 있다. 최근 성소수자 특집을 방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로부터 집단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까칠남녀>를 향한 대중의 주목도를 방증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예능이야, 교양이야? 경계 허문 콘텐츠

▲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2> 스틸컷 ⓒtvN

최근 몇 년간 콘텐츠 소비의 흐름은 가볍고 재미있는 방향으로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방송 프로그램의 경계가 허물어져 프로그램의 성격을 하나로 단정해 말할 수 없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에도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 형태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특성을 갖는 프로그램이 여럿 방송됐다. 이른바 '시사교양의 예능화', '예능의 시사교양화' 현상이다.

특히 CJ E&M의 활약이 눈에 띈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올해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히며 시즌 2까지 방영됐고, tvN <수업을 바꿔라>는 다양한 나라의 교육 현장에서는 어떤 수업이 펼쳐지는지를 관찰하며 한국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짚었다. XTM <밝히는 과학자들>은 미세먼지, 랜섬웨어, 비트코인 등 생활 속 소재들을 ‘과학’으로 풀어본다는 기획으로 주목받았다.

KBS에서도 스타 호스트들이 프레젠테이션 경쟁을 통해 문화재를 소개하는 <천상의 컬렉션>, 음식과 책을 접목한 <서가식당> 등을 선보였다. 그러나 <천상의 컬렉션>의 경우 동시간대 자리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가식당>의 경우 2016년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2017년 정규 편성되었으나 12부에서 방송을 종료한 상태로, 향후 프로그램을 정비해 새로운 시즌을 맞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려동물인 천만 시대, '개통령'의 등장

▲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스틸컷 ⓒEBS

사회 안팎으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국내 인구도 천만 명을 넘어섰다.

이와 함께 동물을 다루는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약진했다. SBS <TV동물농장>은 어느덧 방송 17년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 대 시청률을 보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을 거쳐 지난 8월 정규 편성된 MBC <하하랜드>도 <TV동물농장>의 콘셉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동물병원의 24시, MC 노홍철과 반려 당나귀 동키의 일상 등의 소재를 다뤘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이들 사이에선 '개통령'으로 통하는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씨가 고정 출연하는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도 2016년 말 시즌 2를 시작해 현재까지 순항하고 있다. 문제견으로 불리던 사연 제보자의 반려견들이 강형욱 씨의 훈련을 통해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다. 반려견인들 사이에서는 강 씨가 제시하는 해결책이 일종의 경전처럼 여겨지는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돌아온 <PD수첩>, 시사교양의 미래는

▲ MBC 스틸컷 ⓒMBC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 KBS와 MBC는 공영방송사로서 사회의 민감한 이슈, 정치적 이슈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추적 60분>(KBS)이나 <PD수첩>(MBC) 등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권력과 자본의 감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여론에 직면해야 했다. 그 가운데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등이 굵직한 활약을 보이며 반대급부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이 프로그램들이 국정농단 사태를 여러 차례에 걸쳐 다루기는 했으나, 시청률은 5~6%대에 머무는 등 대중의 냉대가 여전한 상황이다. 결국 지난 9년간 두차례 파업을 벌였던 MBC 구성원들은 지난 9월 초 다시 한 번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세 번째 파업에 들어갔고, 이들의 '삼 세 번 도전'은 성공으로 마무리됐다.

MBC의 상황과는 달리 여전히 KBS 구성원들은 일손을 놓고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야권 추천 KBS 이사의 해임을 건의하는 등 이들의 투쟁에도 긍정적 신호가 비치는 상황이다.

최근 <PD수첩>은 2주에 걸쳐 MBC와 KBS의 지난 9년을 돌아보고, 시청자에게 반성의 뜻을 전했다. 이근행 MBC 시사교양본부장도 앞서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변화를 다짐했다. 그러나 <PD수첩>의 방송 재개는 단지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다. 공영방송이 시사교양 부활의 신호탄을 울리고 시청자의 신뢰를 회복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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