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수자 하차 결정, 나쁜 선례로 남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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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 하차 결정, 나쁜 선례로 남을 것"
[인터뷰]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 교수..."차별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 김혜인 기자
  • 승인 2018.01.18 15: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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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혜인 기자] 일상 속에서 '혐오 표현'을 접하는 게 대수롭지 않은 시대다. 특히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의식도 커지고 있다. 

농담처럼 쓰이던 말들이 약자를 향한 혐오 표현으로 규정되면서 일부는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최근 <말이 칼이 될 때>를 펴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43)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무 민감한 거 아닌가', '이런 말도 못 하냐'고 하는데 진짜 그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 차별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홍성수 교수는 한국사회를 ‘잠재적 위험사회’로 규정한다. 물리적 폭력이 벌어지는 빈도는 낮지만, 극단적인 커뮤니티나 정치인의 발언 등을 보면 차별에서 폭력으로 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출판된 <말이 칼이 될 때>는 ‘예방주사’로 나온 책이다. 그는 “어떤 말이 혐오 표현인지 명시적으로 답을 주기보다는 생각해보고 토론해 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라며 “책을 읽는 사람들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고 혐오 표현의 문제의식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패널의 하차로 EBS<까칠남녀>에 대한 논쟁이 불거진 지난 16일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홍성수 교수를 만났다.

▲ 지난 16일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 교수. ⓒ김성헌

EBS <까칠남녀> 폐지를 주장하는 일부 학부모단체와 기독교단체가 EBS 사옥을 찾아 시위를 벌였다. 이런 직접적인 항의 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하나.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는 게 표현의 자유의 기본적 원칙이다. 다만 그런 말들이 소수자 개인이나 집단을 억압하거나 사회적 발언을 못 하도록 위축시키거나 실질적인 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경우에는 제한을 가할 수 있다. 형사 처벌이 아니더라도 그런 목소리들이 사회적으로 적당한 수준에서 통제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이 경우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보나.

-단순히 EBS에서 앞에서 집회를 하는 식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넘어서, 물리적인 압박을 가하거나 방송 관련 구성원 개개인을 위협한다면 표현의 자유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일 수 있다.

성 소수자인 <까칠남녀> 출연자가 ‘중도 하차’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의식적으로 성 소수자나 여성에 관한 부분들을 다루려고 했던 건 방송의 공적 책무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로 편성했는데 일부의 비판이나 반발이 있다고 해서 출연자를 하차시킨 건 굉장히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 정당하지 않은 항의를 하는 쪽에 ‘항의하면 물러나게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혐오 표현과 표현의 자유를 나누는 기준은.

-혐오 표현은 ‘대상 자체가 소수자 집단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욕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차별받는 소수자들이 그런 말을 듣거나 노출됐을 때는 추가적 피해가 드러나게 된다.

▲ 홍성수 교수가 집필한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말이 칼이 될 때>. ⓒ김성헌

방송법에서도 '성별, 연령, 직업, 종교, 신념, 계층, 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방송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표현 수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혐오 표현이 거리에서 외쳐지는 것과 방송에 나오는 건 다른 문제다. 거꾸로 소수자들의 대표성이 일반 사회에서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것인 현실이지만, 방송에서만큼은 대표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방송의 공적 책무다.

방송에서 소수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대표성을 반영한다는 건 단순히 (그들을) 출연시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거다. 특별대우도, 무시도 아닌 구성원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패널 중 절반 정도는 여성이어야 한다. 열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라면 방송에서도 열 명에 한 명 정도는 장애인이 나오는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산술적인 비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수자가 어떻게 비치는가'이다. 잘못하면 소수자를 단순하게 소비하거나 오히려 왜곡되게 비칠 수 있다. 영화 <범죄 도시>와 <청년 경찰>에서도 조선족이나 중국 동포가 나오지만, 한국 영화에서 전형적으로 그들을 범죄자로 다뤘기 때문에 그들이 등장한다고 대표성이 반영됐다고 보기엔 힘들다.

책에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차별 금지 조항을 언급했는데.

-내용 자체는 부족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차별 금지 사유들을 나열했는데, 얼마나 세심하게 선별된 건지 고민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는 19개의 차별 금지 사유가 나열되어 있는데, 그중 일부만 방송심의 규정에 들어가 있다. 조항 자체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지금도 집행하는 사람들의 의지만 있다면 방송의 공공성이나 소수자 인권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다룰 수 있다.

언론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혐오 표현들이 있다면.

-내용은 그렇지 않은데 제목 자체가 소수자 집단을 ‘스테레오 타입’(고정관념)하거나 정형화해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고 고착화하는 경우들이 있다. 기사 내용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지만, 제목만 보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예를 들면 ‘외국인 범죄 늘어나’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의 내용을 보면 외국인의 숫자가 늘어나 범죄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기사를 대충 보거나 제목만 보는 이들에게 외국인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주게 된다. 

성 소수자를 다루는 언론 보도는 어떤가. 

- ‘성 소수자’라고 통칭하는데,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형태의 소수자가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런 모습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없다. 가능하다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최근 <말이 칼이 될 때>를 펴낸 홍성수 교수. ⓒ김성헌

책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 표현의 대응책으로 연대를 주장한다. 

-사회적 연대를 주장한 건 법적인 금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논의되었기 때문에 강조하려고 했다. 법은 규제하는 쪽으로도 갈 수 있지만 지지하고 지원하는 쪽으로도 갈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다수의 행동을 제한할 수도 있지만, 소수자의 활동을 지원함으로 균형을 맞출 수도 있다.

지지와 지원의 방안은.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 정치지도자들이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교육을 통한 지원도 주요하다. 각 조직별로 차별과 혐오에 대한 내규를 만들어 자체적인 규율을 해나갈 수도 있다. 또 이주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것 말고도 이주자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소수자들이 스스로 발언하고 연대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요즘에는 혐오 표현에 대해 지적하면 ‘예민하다’는 지적을 듣는 경우도 많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질수록 수위가 낮은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굳이 민감하게 대처할 필요가 없고, 농담으로 넘어갈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하지만 지금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이 문제인 건 차별받고 있는 사회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혹자들은 ‘너무 민감한 거 아니냐’, ‘이런 말도 못 하냐’라고 하는데 진짜 그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으면 차별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면 된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맥락에 대한 고려가 얼마나 있었는지' 되돌아 보는 것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어떤 말이나 할 수 있는 상황이 가장 좋은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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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t 2018-01-18 16:26:22
성소수자는 약자가 아니다. 그 말부터 고쳐야 한다.
기본 언어 선택부터 잘못 되었다.
이성이 아닌 동성같은 성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라고 해서
약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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