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모럴 패닉에 대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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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남녀' 출연진 하차 외압 논란... 교육방송 신뢰성에도 상처

[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교수)] 모럴 패닉(moral panic). 사전적으로는 사회의 도덕 기준을 위협하는 걸로 간주되는 특정 문제에 관한 대중들의 우려 표시, 불안 상태로 정의된다. 즉 상식을 위배한 사안에 대한 다수 대중들의 위기 의식을 가리킨다. 우리말로 옮기면, 도덕적 공황 정도가 되겠다.

비판적 사회학과 문화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위 전문용어인데, 그 참뜻은 사실 훨씬 더 삐딱하다. 불순한 미디어문화 연구자들은 모럴 패닉을 하나의 실천으로 파악한다.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특정 국면의 인위적 정치 현상으로 읽어낸다. 1) 특정한 상황에서 2) 어떤 사건이나 상황·인물을 3) 지배 체제와 주류 매체를 중심으로 4) 일탈 혹은 위기로 규정하고 위험한 걸로 낙인찍고 유포하며 4) 그것을 자신의 특수한 가치관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안녕을 해치는 보편의 위협으로 일반화시켜 5) 궁극적으로 헤게모니 주도권을 유지해가는 6) 주류 여론 동원의 과정, 지배 이데올로기 (재)생산의 보수적 문화정치.

그런데 이렇게 분석되는 모럴 패닉 제조의 공식은 최근 발생한 ‘까칠남녀’ 논란에 대입시켜도 얼추 들어맞는다. 촛불혁명 직후 진보적인 가치가 활발하게 개진되고 수구세력의 지배구조가 위협 받는 상황에서 성 소수자·젠더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토론을 시도하는 TV 프로그램에 대해, 일부 보수적인 네티즌들, 몇몇 기독교 단체와 학부모 단체들이 목청을 높이며 비난하고 나선다.

주류매체가 지배 이데올로기 선전채널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몇몇 요인을 실례에 기초해 분석한 노암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Edward Herman)의 선전모델에 따르자면, 미디어를 훈육하는 플래크(flak) 정도가 되겠다. 이들은 지난해 <까칠남녀>가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시청자게시판 등을 통해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했는데, <동아일보>와 같은 보수매체들이 이를 대의·대변해 ‘논란’으로 은근슬쩍 의제 설정한다.

▲ EBS사옥 이미지. ⓒEBS

그에 따라 반대 목소리는 더욱 기세를 높인다. 반대 세력들은 <까칠남녀>의 새로운 성교육·성담론 시도가 자신들의 보수적 가치관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대신 성(과) 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하는 해당 프로그램이 ‘우리 모두’의 (터부시된) 상식을 위배하며 무엇보다 EBS를 시청하는 (보호받아야 할) 어린 ‘우리 아이들’의 가치체계, 건전한 교육관을 위협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반교육적인 것이라 낙인찍는다.

그런 외압을 집요하게 조직하고 개진하면서, 정치적 재활에 나선 보수 세력들은 ‘제작진’ 혹은 윗선을 효과적으로 압박한다. 내부의 반대 의견과 공조한다. 마침내 출연진 배제라는 효과를 얻어내며, 사실상 프로그램의 성격과 방향까지도 크게 바꾸어놓을 것이다.

논란을 성 윤리(위반) 문제로 프레이밍 함으로써 그들은 도덕적 가치와 지배적 통념을 기반으로 한 자신들의 정치적 위세·헤게모니 지배력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란의 구축·확대 과정을 통해 우익 네티즌-보수 단체-조중동으로 직조된 세력들은 포스트 촛불혁명 시기 이데올로기 문화정치의 주요 축 중 하나인 EBS를 결정적으로 훈육시켜낸다. 혁신적 변화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제어·통제·차단하는 데 성공한다. ‘교육방송’으로 획정한 미래 주체 재생산 장치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 보수의 통제력을 굳건하게 유지해낸 것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진행된 ‘까칠남녀’ 모럴 패닉 진행의 과정을 되짚으며, EBS가 취한 이해되지 않는 처사와 동의할 수 없는 행위들에 대해서도 한번 따져본다. 궁금하다. 논란이 일자 EBS는 특정 출연진 교체를 결정했다. 외부 보수 세력의 시위와 무관한 ‘제작진’ 자체 결정이라며 몇 가지 이유를 댔지만, 많은 이들은 그 연관성을 전혀 의심치 않는다. 물어보자. 대체 성소수자 은하선 씨의 출연 금지는 누가 어떻게 해서 결정한 건가.

EBS를 보수적 학습채널 정도로 닫아두려는 세력들이 비판·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걸 말릴 수는 없다. EBS는 그런 세력에 굴종해 지난 두 정권 내내 보수적 스탠스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일방주의, 전체주의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촛불시민들은 변화를 욕망하고 변모를 기대한다. 균형 잡힌, 다양한 색깔로 꾸려진 교육방송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관용과 인정, 이해와 상생의 문화적 가치에 충실한 열린 EBS.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원해왔던 바다. 은하선 씨 일방 퇴출에 반대하는, 반드시 성소수자로 환원되지 않는 다채로운 목소리들로 구성된 이런 주권자들의 기대 또한 EBS가 마땅히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까칠남녀> 폐지를 요구하고 나선 보수집단의 행태만큼이나 이에 굴복하여 잽싸게 성소수자 출연금지 조처를 내리는 EBS에 경악한다.

‘까칠남녀’와 같은 신선한 기획의도의 프로그램이 제작되면서 새 얼굴과 목소리들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쇄신의 기운이 나타나려 하는데, 흐름을 끊는 성소수자 출연금지의 황망한 결정을 대체 누가 내렸을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사회적 판단을 구하면 될 일인데, 왜 EBS는 서둘러 방송내용과 무관한 사유를 들어 특정인을 하차시켜 논란을 더욱 키웠나. 이 배제가 성소수자 검열, 차별의 (무)의식과 과연 무관한가.

논란 제기된 인물을 제외해 외압을 차단함으로써 프로그램을 지켜내려는 ‘제작진’의 고육지책이었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설명은 진실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뿐. 방송을 즐겨보던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한 PD의 생각과도 어긋나 보인다.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불편한 이야기, 그 속에 숨은 불평등과 편견을 허무는 차별에 화난’ 사람들, 즉 소수자·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원래 취지였다. 그런 용기 있는 시도다.

이렇게 차이의 문화를 EBS 교육프로그램으로 구현하려 한 제작자가 보수 여론집단의 외압에 차별과 불평등, 편견 반대의 시선을 중간에 거두고 만다? 만약 은하선 씨 출연 배제 등의 결정이 담당 PD가 아닌 윗선의 지시·통보라면 외부의 간섭만이 아닌 내부의 통제도 문제가 된다. 이는 모두가 경계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자율성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가.

EBS 구성원 모두가 촛불혁명 이후의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매우 완고한 의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거며, 지난 10여년의 세월 동안 구태의연하게 길들여진 순응의 인사들도 있을 테다. 그렇게 퇴적된 보수주의, 보신주의 적폐가 교육문화방송으로 자기정체 재정립 가능성을 스스로 까먹는 이해 못할 처사로 표현된 건 아닌가.

이번 사태는 결코 간단치 않다. 내·외부 압박에 의해 출연자 차별이 나타나고 제작 자율성이 침해받은 점에 덧붙여, 교육방송 신뢰성에 큰 상처가 생긴 사례다.

EBS 독립성이 포스트 촛불혁명의 국면에서 위세 등등한 보수여론권력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된 중대 사례다. EBS 프로그램 쇄신에 대한 이상한 꺾기. 그 책임을 최종적으로 누가 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과 유감에 대해 장해랑 사장은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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