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표 없는 '협찬 상품권' 어디에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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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느슨한 협찬고지 규정 탓에 '주먹구구' 관리..."영업 비밀" 매출 공개도 안해

[PD저널=이미나·구보라·김혜인 기자] 최근 '상품권 임금' 문제가 불거진 뒤 SBS는 곧바로 '예능 프로그램 상품권 협찬 폐지'를, 정부는 매년 상품권 임금 문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방송사들도 지금까지 '꼬리표 없는 돈'처럼 써온 '협찬 상품권'의 가이드 라인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근절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협찬 규정이 느슨한 탓에 방송사들이 협찬 상품권을 부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분석과 함께 제도 개선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협찬 제도'는 2000년도에 법제화됐다. 방송법 시행령과 협찬고지 등에 대한 규칙에는 방송사가 프로그램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 물품, 용역, 인력 또는 장소 등을 제공 받고 타인의 명칭, 상호 등을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이 끝나면 30초 내외로 자막과 함께 협찬주들의 상호와 협찬품이 노출되는 게 협찬고지다. 

▲ 상품권 협찬고지 화면 갈무리.

방송사, 상품권 '주먹구구' 사용에 '세금 떠넘기기'  

협찬고지는 광고와 다르게 광고효과와 협찬주 노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광고처럼 방송 프로그램별로 시청률과 방송 시간대에 따라 가격을 매긴 단가표를 온라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기백만원으로 업체 이름을 알리려는 중소업체들이 주로 '상품권 협찬'에 나선다.  

이른바 '판넬광고'로 불리는 협찬고지는 방송사가 내부시스템에 특정 프로그램에 어느 정도의 상품권 협찬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리면, 대행사가 협찬주를 확보해 상품권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거래된다. 먼저 대행사가 협찬주로부터 협찬 대가를 받은 뒤, 수수료를 떼고 방송사에 상품권을 전달하는 식이다. 

지난 23일 익명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상품권 협찬 실태를 제보한 A씨는 "방송사에서 상품권을 지급해야 하는 이들의 명단을 받아 우편으로 전달하기도 하지만, 주로 방송사를 찾아가 면대면으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는 밥솥이나 화장품 세트 등 현물 협찬도 많았는데 그런 부분들은 정말 수령자가 명확했다"며 "현물 협찬이 상품권으로 전환된 뒤에 서류 처리를 하던 중 스태프 등 프로그램과 관련된 이름을 본 적도 많다. 가끔 이름은 다른데 주소가 같은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상품권이) 임금으로 전용됐을 수도 있고, 다른 용도로 쓰일 수도 있다"며 "예를 들어 막내 스태프가 '서류 처리에 네 이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걸 거부할 수 있겠나"라고 사품권 사용처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방송사가 내야 할 세금도 대행사에서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 B 씨는 "방송사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일정한 금액을 내는 경우도 있고, (상품권) 금액의 몇 퍼센트를 대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방송사로부터 받은 계산서에) 협찬 금액과 세액이 명기돼 있는데, 세액 부분은 또 납입을 별도로 한다"며 "세액을 다시 '전파료'라는 등의 명목으로 현금으로 방송사에 입금해 왔다"고 말했다.

▲ KBS가 제보자 A씨에게 발행한 계산서 ⓒPD저널
▲ A씨는 KBS에 '전파료' 명목으로 계산서의 세액을 다시 입금해 왔다. ⓒPD저널

전문가들은 협찬으로 들어온 상품권에 대한 세금 납부 부담은 방송사에 있다는 판단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 관계자는 "관련 판례를 보면 대행사는 (협찬을) 대행하는 업체이고 협찬사는 (방송사로부터) 광고용역을 제공받고, 방송사는 광고용역을 제공한 것"이라며 "원천징수 의무는 방송사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2001년 대법원도 협찬품 고지방송이 부가가치세 과세 대상인지를 따지면서 "부가가치세법에 의해 과세대상이 되는 용역의 공급인 광고에 해당되고, 용역의 무상공급에 해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행사의 세금 대납은 수직적인 '갑을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증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C씨는 "우리 입장에서는 방송사는 '슈퍼 갑'이다. 그쪽에서 요청하는 것을 최대한 충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처음부터, 관행적으로 그렇게 진행되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세금을 (대행사로부터) 현금으로 받아 국세청으로 낸다. 대행사와의 계약에 따른 것"이라고 '세금 대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베일에 싸인 협찬 매출', 공개해야 

이렇다보니 방송사들이 이렇게 벌어들인 협찬 매출이 얼마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가 지난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 KBS는 11억여원, MBC는 7억원, SBS는 9억원 규모의 협찬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이 협찬금 세부 자료를 방통위에 제출할 의무가 없어 협찬 매출은 이보다 많을 가능성이 크다. SBS는 지난 18일 '상품권 임금' 대책을 발표하면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교양과 예능 프로그램으로만 거둔 협찬 수입이 49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 KBS의 협찬품 관리 시스템. 하이라이트 부분을 보면 상품권이 '자막 교열'을 한 스태프에게 임금으로 지급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D저널

협찬 관리가 '엉망'이라는 지적과 함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지난해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에는 방송법에 협찬의 정의와 허용 범위를 적시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방송사가 협찬 내역 및 협찬 수입 등 관련 내역을 따로 관리하고 상세 내역을 방통위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협찬 내역 공개 조항에 방송사들은 약속한 듯이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며 반대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민 의원실 관계자는 "광고는 어떻게 (예산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협찬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관리감독도 부족하다 보니 상품권 임금 등의 문제들이 불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도 지난해 4기 정책과제로 '협찬 제도 개선'을 공표하면서 "협찬이 투명하게 거래되고, 건전한 제작재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협찬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 지상파 PD는 "PD입장에서도 원칙적으로 협찬 등의 시스템들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이 좋다"며 "우리가 손해보더라도 떳떳해지는 게 낫다"는 의견을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협찬 제도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이다보니, 협찬을 이용해 제작비 줄이거나 임금형태로 지급해 논란이 된 게 아니냐"며 "정부나 국회, 방통위가 나서 정밀하게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잘못된 관행들이 근절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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