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지역MBC'의 목소리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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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지역MBC 공동기획 ‘소수의견’ 28일간의 제작일기

▲ 지난 1일 방송된 지역MBC 공동기획 <소수의견-편집된 지역, 삭제된 MBC> 화면 갈무리.

[PD저널=전우석 경남MBC PD] 지난 크리스마스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송재우 사장으로 스타덤에 오른 춘천MBC의 최헌영 선배였다. 그는 파업 이후, MBC의 반성을 다룬 프로그램에 지역MBC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지역MBC 공동기획’을 제안했다. 약한 긍정의 대답을 하고선 함께 살고 있는 후배 김현지PD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카페라떼를 단숨에 들이켰다.

1.3 기획회의 -제작 1일차

대전에서 지역MBC 16개사 PD가 모이기로 한 날.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대전으로 올라간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무거운 공기가 감싼다. 같은 MBC,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견제의 눈빛과 어색한 말투로 회의는 시작됐다. 각 사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오면서 회의는 뜨거워졌다. 울산MBC 윤길용 사장의 복면가왕은 정점을 찍었다. 결국 1월 말 방송을 목표로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16명의 PD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1.5 구성회의 -제작 3일차

절대로 시간외 수당을 신청할 수 없는 김PD와의 재택근무. 지역MBC의 반성과 다짐... 구성이 쉽지 않다. 기획의 무게가 가늠이 안 된다. 굳이 장르를 따진다면 셀프-르포르타주? 예능 블랙코미디?

1.8. 첫 촬영 - 제작 6일차

비오는 날. 밀양으로 향했다. 과거 밀양 송전탑에 관한 MBC의 왜곡보도에 대한 취재였다. 동행한 후배기자의 용감한 자기고백에 힘입어 첫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고민했다. 이게 블랙코미디가 될까? 아직도 MBC 왜곡보도로 마음을 다친 시청자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공용서버를 개설하자마자 지역MBC PD들이 올려준 영상자료가 60G다. 지역MBC PD들의 지원 사격이 든든한 한편, 프리뷰가 걱정스럽다.

▲ 지난 1일 방송된 지역MBC 공동기획 <소수의견-편집된 지역, 삭제된 MBC> 화면 갈무리.

1.10.세월호와 5.18을 만나다 -제작 8일차

후배들이 목포와 광주로 1박 2일 출장을 떠났다. 인터뷰 진행 상황이 궁금해 연락했더니 목포 숭어가 참 맛있단다. 다음날 돌아온 후배들은 숭어 대신 엄청난 분량의 인터뷰 영상을 들고 왔다. 목포MBC의 민정섭 기자는 세월호 취재 후 우울증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광주MBC의 김인정 기자는 생중계 도중 시민에게 명치를 맞았단다. 예능적 접근은 과감히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전MBC 권성주PD는 충남대에 가서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고 목포MBC 문선호PD가 세월호 관련 영상 20G를 업로드했다.

1.13. 타이틀 확정

방송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타이틀이 정해지지 않았다. 후배 김현지 PD 입에서 ‘소수의견’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느낌이 왔다. 광주MBC 최선영PD는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 또 40G 분량의 자료를 올렸다. MBC강원‧영동 황지웅PD는 본인이 직접 촬영하고 연출한 영상 15G를 올렸다.

1.16. 유성기업과 최승호 그리고 1987

편집기가 없어 인터뷰를 전담한 김PD의 1박 2일 출장. 대전, 아산, 서울로 이어지는 1000㎞ 로드 인터뷰가 이어진다. 대전MBC 안준철 기자의 울분, 유성기업 도성대 지회장의 눈물, 작가 손아람의 의견생태계, 영화 1987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의 직업윤리. 그리고 최승호 사장의 질책과 기대.

많은 분량을 확보했다. 김PD의 체력이 걱정된다. 독박육아와 편집을 하고 있는 나의 체력도 걱정된다. 그날 밤 여수MBC 남현철PD가 인터뷰 영상을 업로드 했다.

1.17. 노동착취 그리고 120G

아침에 출근하니 밤새 파일 변환작업으로 폐인이 되어있는 양PD를 목격했다. 양정헌 PD의 체력이 걱정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올라오는 16개사의 자료들.

1.19 대구에서 만난 분한 울음

대구MBC에서 도성진 기자의 분한 울음을 만나다. 지난 파업 때 ‘MBC를 지켜주세요’ 라는 피켓을 들고 있기 부끄러웠다는 그의 말을 듣고 공감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1.20 원고를 완성하고

1.25 가편을 털고 더빙을 마치고

1.28 믹싱을 끝내고

1.29 종편을 완료하고

1.31 오후 510분 전국방송

2.1 1110분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방송됐다.

▲ 지난 1일 방송된 지역MBC 공동기획 <소수의견-편집된 지역, 삭제된 MBC> 화면 갈무리.

28일 후 끝.

처음이었다. 동시간대에 수도권 인구를 제외한 대한민국 절반이 지역MBC가 공동기획한 ‘소수의견’을 시청하고 있다. 지역이 뭉칠 때 그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소수의견은 단순히 수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을 갖지 못했을 때, 그 목소리가 조직되지 못했을 때 다수의 목소리도 소수의견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지역의 목소리는 소수의견으로 묻히기 일쑤였다. 앞으로는 지역이 편집되지 않도록, MBC가 삭제되지 않도록. 지역MBC PD로서 고민이 많아진다.

함께 작업한 지역MBC PD들-황지웅(MBC강원영동) 최선영(광주MBC) 윤창준(대구MBC) 권성주(대전MBC) 문선호(목포MBC) 채충현(부산MBC) 강병규(안동MBC) 남현철(여수MBC) 민희웅(울산MBC) 황민(원주MBC) 유장욱(전주MBC) 김훈범(제주MBC) 최헌영(춘천MBC) 장세일(MBC충북) 박찬열(포항MBC)-에게 감사한다

P.S

방송 5시간 전, 대전MBC 권성주 PD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회사 내 트래픽 초과로 방송본을 다운받으러 한손에 외장하드를 들고 PC방으로 달렸다고 한다. 이것이 지역방송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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