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이미나 기자] 때론 '빈자리'가 더 많은 것을 의미할 때가 있다. 지난해 7월 MBC <PD수첩> 제작진의 제작 거부가 바로 그랬다. 열악한 한국의 노동 현실을 조명하려다 '노동조합 소속 제작진은 이해당사자'라며 불허 통보를 받은 <PD수첩> 제작진은 더는 제작 자율성의 침해를 참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내려놨다.
합법적 쟁의 행위인 파업과 달리, 제작 거부는 아무도 그들의 안위를 보장해 줄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영백 PD와 김현기 PD는 실제로 이 과정에서 대기발령을 받았다. 편성표 속 <PD수첩>의 자리는 그 후로도 약 5개월 간 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오랜 침묵을 깨는 일이기도 했다. 제작 거부는 이내 같은 현실을 견디고 있었던 시사제작국의 기자들로, 콘텐츠제작국의 PD들로, 아나운서실의 아나운서들로 번져갔다. 10명이 시작한 싸움은 한 달만에 300여명이 동참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5년 만의 두 번째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한국PD연합회는 MBC '정상화'의 첫 삽을 떴다는 평을 받은 <PD수첩> PD들(강효임‧김현기‧서정문‧소형준‧이영백‧전준영‧조윤미‧조진영‧최원준‧황순규, 이상 가나다순)을 언론노조 KBS본부 '파업기획단'과 함께 제30회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 공동수상자로 선정했다. 지난 9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강효임·김현기·이영백·황순규 PD를 만났다.
한국PD대상 역사에서 '프로그램을 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올해의 PD상을 받는 첫 사례다.
이영백 PD 의도하지 않게 <PD수첩> 제작진의 제작 거부가 (그동안 MBC에 존재했던) 부조리한 상황을 깨는 돌파구가 됐다. 상식과 양심을 지키기 위한 작은 행동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큰 상을 받게 돼 감개무량하다.
김현기 PD 당시는 경영진이 극도로 언론 자유를 통제하던 때였다. 어떤 PD가 <PD수첩>에 있었어도 (제작 거부를) 했을 것이다. 단지 그 때 우리가 <PD수첩>에 있었을 뿐이지.(웃음) 모든 시사교양국 PD들을 대신해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강효임 PD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제작 거부를) 시작할 때 두렵기도 했다. 그런 점을 조금이나마 인정해 주시고 좋게 봐주신 것에 감사하다.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열 명의 PD가 지금까지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영백 PD 그때 우리의 행동이 제대로 발화되지 않고 꺼졌다면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을 거다. 결국 이 상은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기에게, 제작 자율성이 돌아온 지금의 MBC가 받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는 <PD수첩> 제작진의 용기가 지금의 결과를 낳았지만, 당시에는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렵지는 않았나.
이영백 PD 직장인으로서 회사에서 징계를 받을 수 있었고, 최악의 경우 해고당할 수도 있었는데,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이미 정영하·강지웅·박성제 등 동기 세 명이 해고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부당한 인사로 현장에 돌아오지 못한 구성원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도 이들과 함께라고, 그런 것들(징계)을 맞닥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작 거부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강효임 PD 시사제작국 회의를 할 때다. 처음엔 '왜 하필 지금이냐'는 기자들의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하면서 회의 후에는 (기자들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시사제작국 기자들이 (제작 거부에) 들어가고 기자 전체가 움직였다.
이후 두 명의 PD는 대기발령을 받았고, 머지않아 파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강효임 PD (과거에는) 구성원들이 툭 건드리면 눈물을 쏟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언론 자유를 위한 파업이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재밌게 하자'는 게 목표였지만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오셨을 땐 다들 많이 울었다. 그 땐 왜 그렇게 눈물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2012년 파업부터 그때까진 정말 많이 울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감정을 추스리는 중이다.
다음번엔 프로그램으로 PD대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할 것 같다.
김현기 PD 내가 받고 싶다고 상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타면 좋지.(웃음) 회사가 정상화되기 전까지 PD들은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거기서 오는 갈증이 있었다. 그동안 쌓인 갈증을 해소하다보면 상을 받을 만한 좋은 프로그램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45일간의 제작 거부와 72일간의 파업을 거친 <PD수첩> PD들에게 2017년은 어떤 의미인가.
황순규 PD 요즘 <아침발전소> 연출을 하고 있는데, 밤을 샐 때 나도 모르게 나태해지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런데 2017년을 생각하면 다시 동기 부여가 된다. 이런 큰 상을 받는 게 방송을 제대로 하겠다며 제작 거부를 했기 때문인데, 지금은 다 할 수 있는 분위기지 않나. 이 상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김현기 PD 끝이 좋은 해였다. 하반기 제작 거부에서 시작해 파업을 거쳐 새 사장 선임, 프로그램 재배치까지 폭풍처럼 흘러갔다. 어쨌든 제작거부 이후 결과가 좋아 회사 정상화의 단초가 됐고, MBC도 다시 앞으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게 됐다. 'MBC호'가 다시 뜰수 있는 활주로를 닦은 해였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현기 PD 사실 준비한 소감이 있다. 우리가 제작 거부를 하면서 <PD수첩> 스태프가 모두 흩어졌다. 스태프가 떠나기 전까지 사무실을 지키면서 우리를 지지한다는 성명도 내 줬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크다. 이 상은 당시 <PD수첩> 스태프도 함께 받는 상이다. 시상식 이후에 모이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