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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1 19:52
  • 수정 2018.05.14 18:23

'PD수첩' PD,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지체할 시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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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전쟁, 민간인 학살' 연출한 김동희 PD "생존자 대다수 노령...갈수록 진상규명 어려워져"

▲ MBC '끝나지 않은 전쟁, 민간인 학살' 편에서 김동희PD(오른쪽)가 피해자 증언을 듣고 있다. ⓒ MBC

[PD저널=이미나 기자]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로 한반도에는 평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8일 방송된 MBC <PD수첩> '끝나지 않은 전쟁, 민간인 학살'(아래 '민간인 학살' 편)을 연출한 김동희 PD는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문경으로, 아산으로, 제주로 향했다. '불행'이라는 한 단어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두세 시간을 훌쩍 넘겨도 끝날 기미가 없었다.

9일 MBC에서 만난 김동희 PD는 "이제는 (시청자에게) '국가의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민간인 학살' 편은 어떻게 착안해 준비하게 됐나.

예전부터 관련 자료들을 쭉 찾아보고는 있었지만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오래된 과거의 일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이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계속 자료를 들여다보게 됐다.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그러면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종전이 논의되면서 이번 편이 갖는 의미도 더욱 커진 것 같다.

사실 이 시점에 종전 선언이 나올 줄은 몰랐다. (웃음) 취재를 시작한 건 제주 4·3 사건 전후다. 과거와 달리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사건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거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추념식에 참석하는 등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놀랍더라. 이제 이런(전쟁 중 민간인 학살) 이야기를 해도 되겠구나, 과거사 청산 문제에 관심을 갖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직접 피해자들을 찾아가 당시의 비극상을 듣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 텐데.

만난 분들이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시작해 현재 시점까지 이야기를 쭉 이어가시더라. 무슨 말이냐면, 이 분들이 그 때의 일로 지금까지 무척 많은 일들을 겪었다는 거다. 가족을 잃은 고통이나 슬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증명하고, 인정받고, 이로 인한 고통을 드러내고, 싸우고, 이 모든 과정이 다 현재까지 너무 힘들게 이어지고 있더라. 그러니 이야기가 수십 년 치일 수밖에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어떤 분께는 현장에 대한 이야기, 어떤 분께는 소송에 대한 이야기 등등으로 나눠서 여쭤보려고도 했는데, 결국 안 됐다. 다 들어야 했다. 어떤 날은 두 시간도 세 시간도 걸리고 했지만 차마 (이야기를) 못 끊겠더라. 이야기의 디테일들도 숨이 막힐 정도로 자세했다. (당시) 현장에 대한 아주 자세한 묘사, '그 날'을 비롯해 그 후로 겪은 일에 대한 디테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 MBC '끝나지 않은 전쟁, 민간인 학살' 편의 주요 장면들 ⓒ MBC

그만큼 생존자나 유족들에겐 당시의 이야기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는 의미겠다.

이야기를 듣는 게 힘들긴 힘들었지만 의무감이 들었다. 이 분들께서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하시겠으며, 이런 이야기가 자세하게 방송된 적도 없었지 않나. 그럼에도 (증언을) 다 방송하지 못해 아쉬웠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조사관이 증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해 주신 이야기가 그랬다.

인솔자 몇 명이 사람들을 (학살하기 위해) 특정 장소로 데려가던 중, 생존자 여성이 갓난쟁이를 업고 따라가다 중간에 일부러 도랑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업고 있던 아기마저 울지도 않고 숨을 참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공포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내내 '이게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인가,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는 것에서 나아가 이명박 정부 당시 석연찮은 판결을 내렸던 사법부에도 주목했다.

지금 우리의 법이, 또 사법부나 우리 국가가 이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송을 놓고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판결 과정이나 판결문으로만 보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판결이 과거보다 후퇴한 것이 사실이다. 국가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인정받는 부분이나 소멸시효도 축소됐고, 청구권도 확 줄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개입이 있었고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법부를 다룬 부분은) 많이 축소됐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쉽다.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가 권력이 가한 폭력'에 대해 사과한 만큼 앞으로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국회에 '정원섭 법'(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존인물인 정원섭 씨처럼 국가로부터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하는 법-기자 주)이 발의된 상황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니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욱 전향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마냥 시간이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정부에서 과거사 문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긴 했다. 그런데 정말 급한 일이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들이) 대부분 노령이기 때문이다. 2004년인가 2005년에 비슷한 소재를 다룬 방송이 있었는데 그 방송에 나온 목격자나 생존자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더라. 이번에 운 좋게 만나 뵌 분들도 대다수 80대였다. 이러다간 당시 상황을 아시는 분이나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다 돌아가셔서 (진상규명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 MBC '끝나지 않은 전쟁, 민간인 학살' 편의 주요 장면들 ⓒ MBC

'민간인 학살' 후속 편도 제작할 생각이 있나.

만약 다시 한다면 '과정'을 담고 싶다. 이번엔 내용만 설명하기에도 숨 가빠 과정들이 많이 생략됐다. 이번에 만난 분들이 싸워온 과정이 정말 엄청나다. 국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것도 모자라 억울함을 드러내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하기까지도 수십 년이 걸렸다.

고양시 금정굴의 경우 유족들이 1995년에 직접 발굴을 했는데, 그때도 (주변에서) '빨갱이다' '여기 그런 일 없었다, 뼈 안 나온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다고 한다. 발굴해 놓은 유골도 누가 가져갈까봐 유족들이 돌아가며 밤새 지켰다고 하고. 이런 과정들이 전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9년간 <PD수첩>이 사회고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 만큼 MBC가 정상화된 뒤 <PD수첩>의 활약을 기대하는 시청자도 많다.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예전처럼 변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 사람들'이 회사를 가지고 장난치던 때에는 <PD수첩>을 못하게 하려고 제작 환경과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PD들은 열심히 일했고, 하지만 많이 조롱받기도 했고, 그런 점이 많이 가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 먹칠을 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PD수첩>은 MBC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과거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더욱 많이 망가졌던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MBC가 회복됐다, 제 역할을 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고, 개인적으로 무딘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담스럽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런 무게가 있지만…어쩌겠나, 감당해야지. (웃음)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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