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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얼마전 중3 학생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6개월을 살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경악케 한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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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언론의 보도 방향이 모자간의 애틋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모는 듯 하더니 차츰 주변의 무관심 쪽으로 무게 중심을 돌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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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웃도 있었을 테고, 학교 친구나 선생님, 그도 아니면 어머니가 평소에 알고 지냈던 사람 하나 정도는 있었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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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들여다보자. 내가 사는 옆집이나 내 친척 중 한 사람이 혹은 내가 잘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서 위와 같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일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과연 사전에 내가 알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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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1년 중 가까운 친척을 몇 번이나 찾고 있는가. 삼촌이나 이모 혹은 고모에게 정기적으로 안부 인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이, 사회가 삭막하고 무관심해졌다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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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살았던 중3 학생의 경우, 그가 말한 것처럼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서’ 그냥 있을 수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머니가 숨진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 두려워서’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이 소년은 두려움마저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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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온 가족이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한꺼번에 목숨을 끊어버리고, 사업 실패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온 몸을 짓누르는 절망 앞에 생을 포기한다. 성적이 떨어진 학생이, 입학 시험을 잘못 본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절망감이 우리가 사는 사회를 뒤덮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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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체념을 낳고 체념은 자살로 이어진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체념의 상황은 타자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 남의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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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을 해친다. 단순히 헤어진 애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나를 잘랐다는 이유로, 그도 아니면 그냥 재수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남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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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삭빠른 장사꾼은, 문화를 팔아서 한 몫 챙기자는 사람들은 이런 사회적 병리 현상을 잘도 이용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칼로 난도질하는 영화를 만들어놓고 ‘사회적 고발’ 운운하면서 기염을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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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돈 벌기 위해서 절망에 휘감긴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놓고 이를 ‘문화’라고 잘도 포장한다. 나는 이런 부류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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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절망을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부도덕한 절대 권력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을 때 지식인들은 절망했다. 그건 정신적 절망이요, 상실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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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은 생존 자체에 대한 절망감이다. 입시라는 절대적 현실 앞에서, 도저히 취업하지 못할 것 같은 삶의 중압감 앞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속수무책 밀려나는 냉정한 시대의 변화 앞에서,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발견할 수 없는 무기력함 앞에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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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살하거나 죽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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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6개월을 살 수 있었던 소년은 역설적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절망적 상황을 의식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그냥 받아들였기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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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오직 나밖에 없다는 절망적 상황을 좀 담담하게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절망이 나에게 닥쳐왔을 때, 그리고 그 절망을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때로 절망과 친구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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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겨울, 나를 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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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병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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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편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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