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드라마 PD 인력난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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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30여명 줄줄이 이적...근로시간 단축 맞물려 인력 확보 비상

▲ 드라마 촬영 현장 모습(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MBC

[PD저널=김혜인‧이미나‧구보라 기자] 방송사들이 이달부터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가면서 그렇지 않아도 이적 행렬이 잇따르고 있는 드라마 PD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각 방송사 드라마 PD는 방송사 내에서도 초과 근무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최근 인력 유출도 가장 두드러졌다. 

지상파 3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3년간 KBS, MBC, SBS를 나간 드라마 PD는 30명이 넘는다. 2011년 종편 출범과 2014~2015년 중국 한류 바람으로 대규모 이적 움직임이 있었던 것과 달리 일상화된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상파에서 자리를 옮긴 PD들은 '입봉'한 지 5년 안팎인 '허리급'이 대다수다. 연출은 맡은 드라마 성적이 좋으면 경쟁 방송사나 드라마제작사에서 스카웃을 받고 옮기는 식이다.   

지난해 방송된 <쌈, 마이웨이>를 연출한 이나정 KBS PD는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으로, <고백부부>를 연출한 하병훈 PD는 올해 JTBC로 이직했다. SBS는 2015년 PD 5명이 잇따라 나간 뒤 2016년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PD에 이어 최근에는 <용팔이>를 연출한 오진석 PD가 퇴사했다.

신입·경력 채용으로 인력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매년 드라마 PD 몫으로 2~4명씩 뽑는 신입사원을 제외하면 KBS는 지난해 경력 PD 2명을 뽑았고, MBC는 최근 계약직 조연출 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SBS는 최근 3년 동안 경력 PD를 따로 뽑지 않았다.

▲ 지상파 드라마 PD 인력 유출이 지속되면서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쉴틈 없이 차기작 투입... 외주PD와 갈등도 

인력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방송사들은 드라마 PD 인력난의 악순환을 좀처럼 끊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 드라마 PD들의 업무 가중, 외주 PD 의존도 증가 등은 다시 인력 유출 가속화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방송사 내부에선 드라마 메인 연출을 맡을 중견급 PD들이 부족하다보니 쉴틈 없이 차기작에 투입되는 PD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닥터스>를 연출한 박수진 SBS PD는 종영 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낭만닥터 김사부>에 조연출로 참여했고, 8개월 뒤 <당신이 잠든 사이>를 맡았다. 2016년 SBS <푸른바다의 전설>을 연출한 박선호 PD도 <수상한 파트너>에 이어 현재 <기름진 멜로>를 연출하고 있다.

예전에는 차기작을 맡을 때까지 1년 반 정도 기간을 뒀던 것과 비교하면 준비 기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셈이다. 

과거보다 방송사 PD들의 '입봉' 시기도 빨라지고 있는데, 검증이 안됐다는 이유로 작가들이 '입봉' PD들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대본 이외의 디테일한 부분은 연출자의 몫으로 넘기는데 입봉이 빨라진 PD들을 믿고 맡길 수가 없다"는 게 일부 작가들의 주장이다. 

외주 PD가 지상파 드라마 연출을 맡는 경우가 늘면서 내외부 연출진 사이에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방송사 PD들이 외부 연출자 밑에서 조연출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최근엔 외부 연출 PD를 데려왔더니 방송사 PD들이 조연출을 하지 않겠다고 해 중재한 일도 있다"고 전했다.

올해만 미니시리즈 80편 제작...종편·케이블채널 공격적 투자     

문제는 드라마 PD 인력 유출을 부른 지상파 안팎의 환경이 앞으로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상파 PD들의 이적이 늘어난 건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케이블채널 등이 드라마 편성을 늘리면서 드라마 PD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 컸다. 

최근 지상파에서 다른 경쟁사로 자리를 옮긴 한 PD는 “방송사에 계속 있으면 연출을 맡기가 쉽지 않은데, 보통 연출자들은 연출자로 늙어가기를 원한다. 게다가 올 한해는 미니시리즈만 80편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PD 수요가 많아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 한 고위관계자도 "유료방송 채널들이 월화·수목 미니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 제작되는 미니시리즈만 80편가량 된다“며 ”수요에 비해 연출자가 부족하다보니 어느 정도 지상파에서 경험을 쌓은 PD들을 다른 채널에서 비싼 값에 데려가는 것인데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지상파는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tvN, JTBC, OCN 등 종편·케이블과의 제작비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한 드라마는 제작사가 회당 4억 6천만원을 불러 지상파 방송사들이 모두 편성을 포기했다. 결국 이 드라마는 6억원에 드라마를 구매한 한 케이블방송을 통해 방송됐다.   

'근로시간 68시간' 도입과 맞물려 드라마 PD들 사이에선 인력 충원을 포함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개선을 주문하고 있지만, 방송사들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제시하는 대응은 인력 충원이나 드라마 PD들의 '입봉' 기회를 늘리겠다는 정도다.  

정성효 KBS 드라마센터장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력이 더 필요하니 올해는 경력이든 신입이든 더 뽑을 것”이라 말했다.

최원석 MBC 드라마본부장도 “주로 B팀을 맡았던 조연출들을 많이 입봉시킬 예정”이라며 “주 68시간 근로제가 되면 드라마 한편에 두 명씩 참여하고 있는 PD들의 수도 더 늘리고, 사전 제작이나 제작 기간 확대도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픽사베이

"경직된 제작 시스템·조직 문화 개선해야" 

하지만 지상파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 PD들은 이대로는 지상파의 인력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유료방송과 비교해 높은 규제뿐만 아니라 방송사의 경직된 제작 시스템과 문화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방송사를 나온 한 드라마 PD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새로운 작품을 하고 싶어도 방송사는 드라마기획팀과 데스크에서 제작사와 작가를 다 섭외한 뒤 내부 PD들에게 작품을 배분한다"고 지적했다.

방송사에 있다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한 드라마 PD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할리우드 제작방식’은 자본만 보고 움직이기 때문에 지상파에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지상파는 또 신입 PD들도 키워야하고 유료방송사보다 규제도 많아 여러모로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제작사에서 일하는 지상파 출신 드라마 PD는 "지상파와 달리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적절한 인센티브 등의 동기 부여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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