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2시간 촬영'... 초장시간 노동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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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주 68시간' 도입 한 달 지났지만 제작 관행 그대로..."제작 시스템 근본적으로 손봐야"

▲ 지상파 방송사에 '주 68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의 혼란만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 PD저널

[PD저널=이미나·김혜인 기자] 지상파 방송사에 '주 68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제작 현장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지난 2일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장시간 노동 관행이 부른 참사가 아니냐는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주 68시간 근로'가 방송 현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부 방송사는 촬영 시간을 제한하는 내부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편성과 제작 시스템의 개선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KBS 드라마국은 TF팀을 꾸려 '15시간 이상 촬영 금지' '15시간 초과시 익일 휴게시간 보장' 등의 내부 지침을 공유했다. SBS <친애하는 판사님께>도 '주 5일, 1일 15시간 촬영' 'B팀 조기 투입' '대본 조기 확보' 등 주 68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하기 위한 방침을 마련했다. MBC <이별이 떠났다>도 비슷한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 중이다.

한 드라마 스태프는 "9월부터는 촬영 종료부터 다음 촬영 재개 시점까지 11시간의 텀을 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얼마 전엔 '하루 20시간 이상은 촬영하지 말라'는 지침도 내려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드라마 스태프는 "6월에 비해 7월 촬영 스케줄은 좀 나아진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체 방송 제작 현장으로 넓히면 이같은 변화의 움직임은 미미한 수준이다. 

김두영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 지부장은 "한 방송사에 편성된 드라마라고 해도 현장에 따라 노동시간 제한이 지켜지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고 말했다.

<PD저널>이 입수한 한 지상파 드라마의 7월 촬영 스케줄(식사시간 포함)에서도 '초장 시간 노동'은 여전했다. 이 드라마는 짧게는 하루 12시간부터 길게는 22시간까지 촬영을 이어갔다. 일주일 동안 평균 85시간 촬영한 주도 있었다. 또 다른 지상파 드라마의 경우 하루 분량의 촬영이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지고, 몇 시간 뒤 다시 촬영이 시작되는 '디졸브'가 빈번했다. 

지난 1일 숨진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 김모 씨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총 76시간 야외촬영을 소화했다. 28일엔 20시간 동안 촬영이 진행됐다. 

제작 현장에선 정부와 방송사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지상파 PD는 "동료들끼리 모이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제작 시스템 안에 많은 주체들이 맞물려 있어 해법을 내는 일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지상파 PD는 "시청자들에게 질이 떨어지는 콘텐츠를 제공하며 '근무시간 단축으로 이 정도밖에 못했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나"라며 "결국 예상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주 68시간제'를 지키지 못해 방송사가 고발을 당하거나 몰래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지상파 3사는 평일 오후 10시대 방송되는 미니시리즈의 회당 방영 시간을 60분으로 줄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작 편수를 줄이는 등 편성 정책도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시즌제 확대가 검토 가능한 대안으로 꼽힌다.

김두영 지부장은 "사전 제작율을 높이면 촉박하게 편성을 받아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지금보다 사정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지금 이 시간에도 폭염 속에서 드라마 제작 현장 노동자들은 절규하고 있다"며 방송사에 노동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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