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과식한 시청자들, '소화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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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켜면 나오는 ‘먹방’, 새로운 시도에 소극적인 방송사들

[PD저널=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SBS가 평일 예능 개편을 통해 금요일에 방송되던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수요일로 옮기고, 그 자리에 <폼나게 먹자>를 새롭게 편성하기로 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방송 모두 음식을 주제로 삼은 예능이다. 낯설진 않다. SBS는 <미운 우리 새끼> 성공 이후 <싱글와이프>, <동상이몽2> 등 비슷한 가족 예능을 연달아 편성한 전력이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먹방’이 가장 싫다던 이경규는 JTBC <한끼 줍쇼>, 채널A <도시어부>에 이어 <폼나게 먹자>까지 먹방을 내세우거나 주요 소재로 삼은 예능을 3개나 맡아 진행하게 됐다. ‘가족 예능’에 ‘가족 예능’을, ‘여행 예능’에 ‘여행 예능’을, ‘먹방’에 또 ‘먹방’을 얹는 이런 트렌드가 계속되다보니 벌써부터 살짝 더부룩하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골목상권 재건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위로가 콘셉트다. 백종원이 출연을 신청한 가게를 직접 찾아가 먹어보고 가게의 문제점을 찾아 솔루션을 제안한다. 백종원을 만난 후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성장기가 재미의 핵심이다.

시청자들은 이번 신포시장 편처럼 대부분 적극적인 자세로 조언을 청하는 학구파 사장들에게는 훈훈함을, 고집불통의 태도와 준비가 안 된 자세로 장사에 임하는 일종의 악역 역할을 하는 가게 사장들에게 분노를 느끼며 지켜본다. 그러면서 백종원의 조언을 받아 완성된 음식을, 혹은 그가 칭찬한 맛을 맛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강하게 느낀다. 실제로 출연 가게들은 tvN<수요미식회>나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 이상으로 방송의 힘을 톡톡히 보고 있으니 기획 의도는 정확히 통했다.

방송을 앞둔 <폼나게 먹자>는 이경규와 김상중 두 명의 방송계 거물이 진행을 맡았다. 첫 회 게스트로는 아이유, 박세리 등 유명인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밥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토종 식재료를 찾아 떠나는 프로그램으로 전통 방식의 요리를 맛보고, 매회 스타 셰프들과 함께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도 공개한다고 한다. 올해 5월 KBS2에서 파일럿으로 잠시 방영했던 <나물 캐는 아저씨>와 유사한 출발인 듯하다.

두 프로그램 사이에는 음식을 제외하곤 직접적인 접점은 없다. 그래서 ‘또 먹방이냐’는 비난 자체가 제작진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시선을 뒤로 빼 예능 전반을 내려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 예능은 그야말로 ‘먹자골목’이다. 오늘날 예능에서 요리 프로그램이든, 힐링이든, 일상 관찰형 예능이든, 여행 예능이든 모두가 먹고 있다.

▲ JTBC <랜선라이프> 출연자인 '먹방' 크리에이터 밴쯔가 편의점에서 '먹방'을 하고 있는 화면 갈무리.

쿡방 열풍을 이끌었던 JTBC는 <냉장고를 부탁해>를 여전히 꼭 붙잡고 있으며 지난 6월말부터 셰프들의 쿡방 <팀셰프> 새로 론칭했다. <랜선라이프>를 통해서는 이 분야 원조라 할 수 있는 1인 인터넷 방송의 먹방을 TV화면으로 송출한다. tvN은 나영석 사단이 굳건하고, <수미네 반찬가게>가 성황리 방송 중이다. 올리브TV는 <전지적 참견시점>을 이끈 이영자의 먹방을 <밥블레스유>를 통해 새 그릇에다 올려놓으며 간만에 먹히는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그 외에도 <1박2일>부터 <나 혼자 산다>류의 관찰형 예능들, <살림남2><동상이몽2><아내의 맛>등 가족 예능 대부분이 먹방과 먹거리에 포커스를 두고 있거나 주요 소재로 다룬다. <나 혼자 산다>에 게스트로 출연했다가 신입회원으로 승격한 화사의 경우 전국 곱창 유통망을 뒤흔든 바가 있다.

가장 고전적인 예능 형식인 <해피투게더><라디오스타>같은 스튜디오 토크쇼나 가장 실험적인 <두니아>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가 먹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복고적인 스튜디오 쇼를 추구하는 tvN <놀라운 토요일>에서도 대표 코너 ‘도레미 마켓’은 쟁반 대신 전국 시장의 핫한 음식을 걸고 노래 가사를 정확히 받아쓰는 게임이다. 역시나 먹음직스런 음식 앞에 ‘쪼는 맛’이 있다.

<무한도전>이 리얼버라이어티와 캐릭터쇼로 쇼버라이어티의 문법과 볼거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발화한 관찰형 예능은 일상성을 재미의 요소로 발견했다. 1인 가구를 조명하고 가족, 친구, 소중한 사람들과의 맛있는 식사와 같은 하루하루의 소소한 행복을 부각한다. 우리 예능만큼 킨포크(kinfolk) 정신을 가장 잘 받아들인 분야도 없는 듯하다. 그 과정에서 2015년 스타 셰프들의 쿡방이 반짝한 이후 ‘먹방’, ‘쿡방’은 철지난 유행이 될 줄 알았건만 오히려 가장 보편적인 소재로 몸집을 불려 예능 콘텐츠를 집어 먹었다.

한때 영화와 경쟁하는 일상의 최대 오락거리였던 TV는 이제 ‘오락기’의 지위는 크게 상실했다. 예능으로 국한해 보자면 일상의 친구와 같은 위안의 매체로 기능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풍경과 연결고리가 강할 때 반응은 더 극적이다. 예를 들면 ‘곱창 사태’ 같은 매커니즘은 분명히 실제 한다. 먹고 마시는 것만큼 직접적으로 소통이 되는 것도 없다.

노래만큼이나 공감 활로를 쉽게 개척할 수 있는 누구나 알고 있는 보편적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최근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에세이의 제목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가장 확고한 인터넷 방송 장르인 먹방부터 <맛있는 녀석들>을 거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까지 잘 먹는 것이 재미이자 공감대가 된다. 이것이 ‘먹방’이 세대와 플랫폼을 넘어 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은 연유다.

다만, 모두가 눈에 보이는 ‘맛’과 ‘성공’을 향해 같은 곳으로 달려들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시청자들은 이미 과식을 한 상태다. 또 다른 탐미보다는 다이어트가 오히려 더 큰 관심사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음식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다른 멋과 가치를 제안하는 다이어트 산업이 팽찰할 시점이다. 그런데 아직 아무도 새로운 블루오션에 도전하지 않고 여전히 또 다른 음식을 권하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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