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편견 깬 ‘주문을 잊은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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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편견 깬 ‘주문을 잊은 음식점’
치매인들의 '현재진행형 삶' 놓치지 않아 호평
  • 방연주 객원기자
  • 승인 2018.08.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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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방연주 객원기자] KBS 1TV 특별기획 <KBS 스페셜-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9일과 16일에 걸쳐 방영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서는 제목 그대로 경증 치매인 70~80대 5인방이 음식점 서빙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다뤘다. 1부는 시청률 5.5%로 같은 시간대 방영되는 드라마와의 경쟁에서 1위를 차지했고, 16일에 방송된 2부(6.3%)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날이 갈수록 현대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평균 수명도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다. 누군가에게 연장된 삶은 선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치매에 대한 우리 사회가 지닌 편견을 돌아보는 동시에 여전히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관심을 모았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제작진이 일본의 한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70~80대 5명의 경증 치매인이다. 이들은 마포구의 한 프로젝트 식당에서 홀서빙하며 사회생활에 도전했다. 이연복 셰프가 요리를 맡고, 방송인 송은이가 총지배인을 맡아 식당 운영에 힘을 보탰다.

경증 치매인들은 주문을 받은 음식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거나, 서빙을 하다말고 테이블에 앉아 손님과 수다를 떤다. 최인조 할아버지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첫 제자가 식당에 나타나자 누구보다 반가워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이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는 “명오가 왔다 갔어요?”라고 되묻는다. 실수 연발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에 집중하며, 경증 치매인들이 수동적인 환자가 아니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그려졌다. 무엇보다 치매를 타자화된 관점이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관점으로 풀어냈다.

▲ 지난 9일과 16일 2부작으로 방송된 KBS 스페셜 <주문을 잊은 음식점> 화면 갈무리.

<주문을 잊은 음식점>을 보면, 지난 2015년 소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세븐 송즈>(Song for a Long Life)가 떠오른다. 스코틀랜드의 한 호스피스 센터에서 암이나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프로그램이다.

다큐멘터리 속 호스피스 센터 환자들은 우리가 그간 미디어를 통해 봐온 시한부 환자의 모습과 다르다. 시한부 환자와 그 가족이 느끼는 절망과 눈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7개의 노래를 통해 6명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은 결코 우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다. 죽음이 자신 곁에 성큼 다가와 있지만, 그들은 노래를 통해 과거를 열고, 꿈과 미래를 이끈다.

연출을 맡은 에이미 하디 감독은 죽음을 터부시하는 데서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96살의 시어머니가 병으로 고통스러워하자 감독이 호스피스 센터를 알아봤더니 시어머니가 화를 크게 내는 모습을 보며 ‘죽음’이란 얼마나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인지 느꼈다는 것이다. 호스피스 센터 취재가 쉽지 않았지만, 촬영 3년, 편집에 18개월을 들여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미디어는 누구나 피하기 어렵지만, 당장 알고 싶지 않은 일을 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하다. ‘시한부’, ‘치매’의 경우도 장르의 특성에 따라 활용됐다. 예컨대 드라마에서는 인물의 기구한 상황을 보여주는 장치로 자주 소환된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가감 없이 죽음의 민낯을 비추며 현재의 삶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면서도 때때로 공포나 두려움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활용돼왔다.

그러나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나 <세븐 송즈>에서는 치매와 시한부를 재단하기보다 삶과 결부시킨다.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삶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작은 시도(식당, 노래)를 통해 현재진행형 삶을 놓치지 않는다. 특정한 누군가의 삶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무겁지 않게 전하는 동시에 그간 알게 모르게 가져왔던 사회적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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