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의 리명운 현실에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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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북한 관리들 감정 노출 거의 없어...남북간 동지적 관계 불가능한 건 아냐

▲ 영화 <공작> 스틸컷.

[PD저널=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SBS PD)] 1997년 ‘총풍사건’의 남북 두 주역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하면, 영화 <공작>을 본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영화의 리얼리티가 궁금한 모양이다. 실제 공작원들의 활동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중국에서 만난 북한관리들의 모습이나 방북 경험에 비추어 대략적인 추정은 가능하다.

실제로 민간교류의 북한측 파트너 중에는 보위부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수 섞여 있다. 우리는 관과 민이 엄격히 구별되지만, 북한은 모두가 국가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라서 그들 모두가 이른바 공작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무난할 것이다.

우선 <공작>을 본 소감을 말하면, 리명운(이성민 분)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해서 리명운처럼 처음부터 자기 속을 확실히 드러내는 북한 관리를 만나기가 불가능하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다짜고짜 남한 정보를 넘겨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패를 먼저 보여주는 바보 같은 짓이다.

북한 관리들은 영화에서처럼 상대에게 감정 노출을 쉽사리 하지 않는다. 의사표현을 명확히 하지도 않는다. 늘 애매한 표현을 쓴다. 의사결정권이 오직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조직에서 섣불리 개인의 의견을 제시했다가는 나중에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부의 지시를 기계적으로 전달하고, 조금이라도 개인의 책임이 될 만한 언행은 하지 않는다. 말도 접촉도 최소화한다. 우리에게 북한사람들이 딱딱해 보이는 이유다. 터놓고 이야기할 정도면 정말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신뢰가 쌓여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마찬가지로 정무택(주지훈 분)이 자신을 국가안전보위부 제2국 과장이라고 소개하는 부분도 실제와 많이 다르다. 북한의 중앙당 간부들이 남한사람 앞에서 자신들의 소속을 명확히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름도 가명을 쓰거나 만날 때 마다 바뀌기도 한다.

정보기관인 국가보위성(옛 국가안전보위부)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해외에서 남한사람과 접촉하는 북한사람은 반드시 두 사람이 한 조로 나오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보위성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을 보위성 소속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 영화 <공작> 스틸컷.

우리가 잘 아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도 사실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위장기관이다. 남북교류와 대남공작을 담당하는 통일전선부 소속이라는 것을 굳이 공개하지 않기 위해서다. 직책도 애매한 ‘참사’ 혹은 ‘책임참사’라고 한다. 따라서 정무택이 흑금성(황정민 분)에 대해 시종일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면서, 자신을 국가안전보위부 제 2국 과장이라고 또박또박 소개할 리가 없다.

리명운과 정무택처럼 북한의 대남사업가들이 남한 사람 앞에서 쉽게 이견을 노출하는 경우도 실제로는 보기 드물다. 북한의 대남사업 일꾼들은 외국에 나가면 반드시 2인 1조로 행동한다. 두 사람은 소속이 다르다. 보고라인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그렇더라도 적을 앞에 두고 서로 갈등을 노출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은 실무자이고 한 사람은 단지 감시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는 거의 없다.

중국을 자신의 안방마냥 활보하는 장면도 실제로 볼 수 없다. 북한과 중국이 전통 우방이긴 하지만 생각만큼 서로 사이가 좋진 않다. 고위층은 모르겠으나, 북한 대사관 직원이나 사업자들이 중국에서 특별히 우대를 받고 생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까다로운 규제를 받는다는 느낌이다. 북한도 중국을 상당히 경계한다.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북한 거주 중국화교를 간첩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접촉을 꺼린다고 한다.

북한 보위부 요원이 중국에서 총을 차고 다닌다거나, 투숙객들이 보는 앞에서 남한사람의 몸을 수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의 나이트클럽에 간부들이 ‘수령님 초상휘장(빼지)’를 달고 들어가 춤을 추는 것은 ‘긍지와 자부심에 가득 찬 조선민족’으로서 불가능하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는 ‘무결점의 초계급적 지도자’이다. 따라서 신적 존재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흑금성이 몇 백만 달러로 거래를 시도하거나, 리명운이 말로 설득하려는 모습은 단지 영화적 설정일 뿐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대화 중에 ‘김정일 위원장’을 감히 거론하는 것조차도 불경스럽게 생각한다. 간혹 남한사람들이 북한측의 환심을 사려고 ‘김정일 위원장님’하며 말을 끄집어냈다가 수습을 못해 곤란해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상급자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남북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공작’에 나선 흑금성은 결국 간첩 혐의로 처벌을 받는다. 권력에 대항한 대가로 묘사된다. 적과 동지가 뒤바뀌고, 사적 이익이 공적 이념을 뛰어넘는다. 구체적 사정에 대해서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실제 공작의 세계에서는 피아 구분이 불분명할 것으로 보인다. 정보 거래도 충분히 가능하다. 진정한 프로에게는 ‘이념’보다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흑금성과 리명운이 여러 고비를 넘긴 뒤 상하이 TV광고 제작 현장에서 조우하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짝퉁시계와 호연지기 넥타이핀의 ‘불공정 거래’가 '신용거래'가 된 셈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북한 관리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투쟁과 갈등의 공간 속에서도 진정성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영화는 보여준다.

과거 남북 민간교류 혹은 남북 방송교류의 성과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이 많았다. 퍼주기만 했지 남은 게 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남이나 북이나 상대 진영에 신뢰할만한 동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진정성 있는 교류로 동지를 만들고, 신뢰할 수 있는 동지와 함께 평화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흑금성과 리명운은 결코 영화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 아닐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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