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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 미리 보여주고, A+ 학점 몰아주고...'꽃길 강요하는' 자식 사랑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일전에 고향에서 대중을 상대로 ‘성공실패학’ 특강을 마쳤을 때의 일이다. 그 지역에서는 꽤 재력가로 알려진 A 씨는 개별 상담을 요청했다. 비밀 유지를 신신당부하며 어렵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30대 아들이 제 말을 안 들으려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계속 해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해 제가 00전자 인사처에 이야기해서 입사할 수 있도록 했는데도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수성가한 그는 아들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아 속상해했고, 이미 아들은 아버지와 깊고 오랜 갈등 속에 정신병원까지 드나든 전력이 있었다. 그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들과 통화를 했다. A씨의 과도한 욕심과 획일화된 성공방식 때문에 아들은 정신적‧심리적으로 병들어 있음을 부모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장성한 아들이 어떤 직업을 갖든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이런 행태가 반복되면 더 험한 꼴을 보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자식을 잘 아는 부모는 현명하다. 그들의 든든한 길잡이가 되고 신뢰받는 멘토 역할을 하는 학부모도 많다. 그러나 이처럼 자녀의 앞길을 망치는 빗나간 욕망을 자식 사랑으로 착각하는 부모도 많다.

▲ 지난달 5일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에서 경찰이 이 학교 교무부장이 2학년인 쌍둥이 딸 2명에게 시험 문제를 유출해 성적을 올렸다는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자료를 가지고 나가고 있다. ⓒ뉴시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불법‧탈법을 가리지 않고 나서서 하는 부모들. 숙명여고 교사가 자신의 쌍둥이 딸에게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자녀들이 경찰서에 불려다니는 일까지 생겼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갑자기 1등이라는 성적을 거둔 건 충분히 의심받을 만했다.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청소년 시기에 받은 경찰 조사는 잊기 힘들 것이다.

이보다 더한 케이스가 최근 서울과학기술대에서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과학기술대에 편입한 한 대학생이 같은 학과 교수인 아버지 수업을 듣고 8개 과목에서 최고 학점인 A+를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있는 학교 편입과정부터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학점까지 아버지의 빗나간 자식 사랑이 아들의 인생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심한 경우는 학부모의 권력과 재력이 비례할 때다. 일전에 대한항공 땅콩 사건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한진그룹 회장은 자신의 딸이 어떤 식으로 갑질을 하고 행패를 부렸는지 뻔히 알면서도 고위직을 챙겨준다. 법원이 무죄라고 해도 인간사 징벌은 본인과 그 가족에게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부모의 어리석음과 오만은 단순히 자식의 불행만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법제도를 훼손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박근혜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의 딸 사랑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자녀를 이화여대에 불법 입학시킬 정도의 무소불위의 권력은 거꾸로 자신을 망치고 대통령 탄핵에 일조했다. 이화여대에 불법으로 들어간 것도 모자라 학교에 가지 않고도 학점을 챙길 수 있도록 멀쩡한 대학의 학사관리를 엉망으로 만들고 입학처장, 학장, 교수 등 주변의 조력자들을 감방으로 보내기까지 했다.

자녀에게 ‘꽃길만 가라’고 강요하는 부모, 자녀에게 ‘지방대학은 절대로 안 된다’며 ‘인서울’ 대학만 부르짖는 부모, 자식의 능력과 성격, 재능은 무시하고 자신의 성공방식과 가치관만 따르기를 고집하는 부모, 이들의 모습은 대학 입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시모집을 시작으로 대학 입시가 시작됐다. 논술시험조차 족집게, 찍기 등 요행수를 바라며 고액의 비밀과외를 수소문하는 부모들, 자녀의 좌절과 실패를 인내하지도 받아들이려고 하지않아 자녀를 더 힘들게 하는 미성숙 어른들. 절제없는 욕망이 비극을 부르는 법이다. 행운과 성공은 좌절과 고난을 거친 뒤에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필자를 포함한 부모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세계적 교육자, 루소는 <에밀>이라는 저서에서 “자식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미국의 스티브 잡스는 “Stay foolish, stay hungry”라는 말로 부족함의 미학과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녀를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무지와 어리석음, 과욕 때문이다. 뉴스가 전하는 각종 불행한 인간의 이야기를 보며 오늘도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한다. 자녀의 선택과 판단을 존중해줄 수는 없을까. 그 선택이 조금 잘못되더라도 젊은 시절의 시행착오를 부모가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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