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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글쓰기를 시작했다 ③]

▲ 지난해 7월에 열린 '2018학년도 수시모집 서울대 구술면접 특강'에서 수험생들이 입시전문가의 자기소개서 작성과 관련한 특강을 메모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민태 EBS PD] 글을 잘 쓴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본인 입으로 말이다. 반면 “나는 글 못 써”라고 말하는 사람은 눈에 밟힐 것이다.

우리는 잘 쓰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해도 느낌으로 안다. 주로 문학 작품 읽을 때 느낀다. 그런데 '못 쓴다'는 건 뭘까. 보통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매일 쓰고 사는데 왜 못 쓴다고 스스로를 평가할까. ‘잘 쓰지는 못 한다’와 ‘못 써’ 사이의 간극은 꽤나 멀지 않은가.

이와 관련해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이자 사회비평가인 박권일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귀담을 만한 경험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그는 어릴 때 글을 잘 쓴다고 인정받던 아이였다. 그러나 취직을 위해 써야 했던 자기소개서는 번번이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단지 취업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보기에도 한심스러웠다.

그러다 몇 해 뒤 우연히 자전적인 에세이를 쓰게 됐는데, 그 때 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와는 마음 상태가 상당히 달랐다. 글 역시 꽤나 매끄럽게 나왔다. 자기소개서와 자전적 에세이, 이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박권일은 그 이유를 자기소개서라는 특이한 형식에서 찾았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자기소개서는 오직 취업을 목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과거를 전시하는 글이다. 여기에는 어떤 여백이나 외부가 없다. 어떤 공감도 신비도 없다. 발가벗겨진 상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이런 형식과 맥락 속에서 한 개인의 서사가 개별 가치와 생기를 지니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 역시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돋보이게 할까?’ 하고 머리를 쥐어뜯었던 기억뿐이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글쓰기다 보니 정작 제대로 된 내가 없다. 내가 선택한 글쓰기도 아니고 나를 탐색하는 글쓰기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글쓰기는 재미가 없다.

자기소개서라는 글쓰기를 요구하는 사회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글을 쓰게 된다. 자기소개도 해야 하고 요약이 필요할 때도 있고 메일도 중요하고 보고서도 잘 써야 한다. 글은 말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평소에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삶에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문학적인 글쓰기도 수사적 접근법에 지나치게 할애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글쓰기가 '해야 하는' 글쓰기가 된다. 머릿속에 이미 ‘글쓰기는 재미없는 것, 누군가 요구에 의해 하는 것, 내 삶과 그리 관련 없는 것’ 이런 식으로 각인되어 있으면 어떨까. 실력이 느는 건 둘째 치고 글쓰기의 맛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있었던 일에 대해 쓰는 것만으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답을 찾기 위해 페이스북에 자주 보이는 지인의 글을 유심히 관찰했다. 일부는 만나서 인터뷰도 했다. 글쓰기에 대한 책과 논문을 수십 권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단순한 통찰을 얻었다.

쉽고 재밌게 시작하면 누구나 글쓰기를 취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언뜻 허망하게 들릴지 몰라도 글쓰기는 그 자체로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 쓰기는 말하기와 더불어 인간의 강력한 표현 욕구 중에 하나다. 게다가 재미있게 쓰는 방법마저 어렵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쉽게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있었던 일’을 생각 날 때 마다 써 보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여기서 부터 마법이 일어난다. 일단 썼고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 아는 내용이라 별다른 자료를 수집할 필요가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된다. 그러다 보면 쓰기에 대한 자신감도 금세 높아진다.

있었던 일을 기술하는 과정에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쉽게 따라 간다. ‘오늘 무슨 일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서사적 흐름을 갖는다. 일기가 대표적이다. 단상을 적은 메모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다.

글쓰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소통적 글쓰기). 다른 하나는 개인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표현하려는 목적(표현적 글쓰기).

소통적 글쓰기는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다. 무엇 무엇에 대해 논하라. 요약하라. 주장하라. 보고하라. 이런 유의 글쓰기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반면 표현적 글쓰기는 자아 정체성 확립에 관여도가 높다. 유치원생들의 일기장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글쓰기에도 종류가 있고 각기 다른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 그동안 이해 안됐던 현상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재밌을 때와 재미없을 때, 빨리 써질 때와 더디게 써질 때, 감정이 출렁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그 차이를 알게 됐다. ‘누구’를 위한 글쓰기인가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빚어진다.

이제 나를 위한 글을 써 보자. 타인을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닌 나를 위할 때 몰입 수준은 높아지며, 이로 인한 혜택은 바다처럼 팽창한다.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시작은 충분하다. 경험을 기록하면 글쓰기는 훨씬 쉬워지고, 흥미로워지며, 마법 같은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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