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세상보기 첫번째 문화읽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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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광고의 메시지와 숨은 의미
엄창호
<광고평론가,단국대 강사>

|contsmark0|현상이 있는 곳에 비평이 있다. 텍스트가 있는 곳에 비평이 있다. 창작이 있는 곳에 비평이 있다. 비평, 때로는 일반인들이 쉽게 지나쳐버리기 쉬운 현상 속에 잠입하여 그 현상의 원인과 동기를 따지고 꼬집는다. 때로는 텍스트의 틈새에 매복하여 실타래 같이 얽힌 길을 찾아주고 이어준다. 때로는 창작이라는 성채에 침투하여 아무도 알 수 없을 듯한 비밀을 밝히고 알린다. 해가 진 다음에야 비로소 날아다니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일 때도 있지만, 혼돈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비춰주는 ‘백마를 타고온 초인’이 되기도 하는 양식, 그것이 바로 비평이다.광고는 현대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인 동시에 중요한 텍스트이며 독특한 과정을 거치는 창작물이다. 따라서 광고가 있는 한 광고비평의 설 자리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한 세기가 넘은 우리 나라 광고의 역사에 견주어보면 광고비평의 역사는 일천하다. 아니, 역사라고 할 것까지도 없이 광고비평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 자체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최근 몇몇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문화 혹은 문화비평의 그늘진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외롭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광고는 문화의 천덕꾸러기이거나 서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문화냐고 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수천년의 유구한 전통을 배경으로 아직도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문학, 20·30년 전부터 안방 혹은 거실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방송, 최근 3·4년 전부터 문화의 주인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영화…이들처럼 독립적인 생산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을지언정, 광고는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이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쟝 보드리아르가 광고를 ‘현대의 신화’라고 말했던 사례만 참조해봐도 안다.‘광고비평’은 일반적인 ‘광고담론’과는 다르다. 광고비평은 광고의 내적인 장치와 테크닉에서부터, 미학적 구조와 형식, 나아가 광고라는 장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까지 밝혀내는 작업이다. 그것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광고와의 비판적 거리를 설정해준다. 이에 반해 광고담론은 단순히 광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광고비평은 매우 독특한 성격의 광고담론이다.최근 들어, 광고비평이 아직 자리를 잡지도 못한 채 사위어가고 있는 사이, 일반적인 광고담론들은 오히려 무성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1·2년 전부터 웬만한 일간지에서는 광고 관련 기사를 일주일에 한번 이상 싣고 있으며 그 비중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인상이다. 하지만 광고비평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오히려 몇몇 매체에서는 그나마 있던 광고비평란 자체를 없애거나, 광고비평에 내어주었던 지면을 일반적인 광고담론에 할애하고 있는 실정이다.광고비평의 쇠퇴와 일반적인 광고담론의 융성,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물론 일차적으로는 광고비평을 담당할 만한 인물과 지적인 인프라의 부재가 그 이유의 한 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imf사태 전후의 매체상황의 변화에도 상당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매체사의 주된 수입원은 광고이다. 매체사는 경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광고주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런데 매체사가 자기 매체에 실리는 글을 통해 광고주의 광고가 좋네, 나쁘네 시비를 건다면(그것이 광고비평의 목표는 아니지만, 광고주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광고 영업에 적지 않은 지장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광고비평이 일반적인 광고담론에 비해 엄청난 푸대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더구나 일반적인 광고담론은 객관적인 기사로 위장된 광고주의 퍼블리시티의 일환으로 활용될 수도 있으니, 매체사와 광고주 모두 일반적인 광고담론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사실 비평이라는 이름이 붙은 어떤 글도, 매체사의 입장에서는 위험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광고비평을 실음으로써 매체사가 안아야 하는 위험은 다른 비평의 그것에 비해 더 직접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광고보다도 오히려 무성한 광고담론은 지금까지 무엇을 말해왔던가? 첫번째는 소재주의적 접근이다. 이러한 광고담론들은 새로운 모델이나 기법 혹은 카피를 소개하는 데 충실하다. 두번째는 마케팅적 접근이다. 이러한 광고담론들은 광고를 통해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어떻게 부각시켰는가를 알려준다. 세번째는 계몽적/도덕적 접근이다. 이러한 광고담론들은 광고가 어떻게 건전한 사회를 해치고 있는가를 집어낸다. 네번째는 좌파적 접근이다. 주로 출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러한 광고담론들은 광고는 자본주의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수단이라는 전제하에 모든 광고 자체를 부정한다.이중에서 최근 각종 매체를 석권하고 있는 광고담론은 소재주의적 접근이다. 이것은 소재를 접근하는 방법에 따라 다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주례사형이다. 마치 주례사처럼 어떤 광고를 칭찬하면서 그 전도양양한 앞길에 축복을 보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광고주가 뿌리는 퍼블리시티를 매체사가 받아 거의 그대로 싣는 담론들에서 많이 보인다. 두번째는 중계방송형이다. 이러이러한 광고가 있는데, 내용은 어떻고 모델은 누구고…하는 식으로 시시콜콜 소개한다. 대체로 해외광고를 소개할 때 사용된다. 세번째는 가십형이다. 빅모델이 그 광고에 출연하게 된 동기, 촬영시의 에피소드 등을 재미있게 다룬다. 스포츠지 혹은 여성지 등에서 많이 보인다. 네번째는 실무지침형이다. 이 광고의 이런 점은 이렇게 써먹으면 좋고, 저런 점은 써먹으면 안좋고…하는 식이다. 주로 광고인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에서 자주 활용된다.그렇다면 광고비평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곧 광고비평은 앞에서 살펴본 일반적인 광고담론들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통한다. 이 질문을 대답하기 위해서는 광고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광고는 예술도 과학도 아니다. 그렇다고 예술이 아닌 것도 아니고 과학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예술이면서 과학이고 과학이면서 예술인, 매우 특이한 존재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광고란 ‘소비자를 설득/자극하여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의 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광고비평의 일차적인 과제는 광고가 어떻게 소비행위를 유도하는가에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광고의 모델, 카피, 테크닉, 장치 등 모든 요소들에 대한 분석이나 설명은 그것들이 ‘어떻게’ 소비행위를 유도하는데 기여하고 있는가를 밝히는 데 바쳐져야 한다. 각 요소들에 대한 분석은 광고의 미학적 구조를 밝힐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은 다시 광고라는 장르의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일반적인 광고담론들은 모델이면 모델, 테크닉이면 테크닉, 카피면 카피 한 두 가지 요소로 초점을 분산시켜 한 광고의 전체적인 구조를 살필 수 없었다. 하지만 광고비평은 각 요소들을 통합하여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되어야 한다.광고비평의 이러한 역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 사람은 미국의 광고기호학자 쥬디스 윌리엄슨(judith williamson)이었다. 그는, 광고는 상품을 파는 기능뿐만 아니라 의미 구조를 창출하는 기능이 있다고 본다. 광고는 물질적 진술을 인간적 진술로, 혹은 인간적 진술을 물질적 진술로 번역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의미의 구조는 바로 그 과정에서 창출된다고 본다. 따라서 메시지, 즉 내용보다는 메시지의 운반기인 의미전달의 구조가 사물, 즉 광고 그 자체라고 단정한다.나에게 ‘광고평론가’라는 과분한 직함을 준 ‘씨네21’의 국내광고비평란을 맡으면서(96년 12월∼97년 10월), 나는 광고의 내용이나 몇몇 특이한 기법의 소개보다는 광고가 창출하는 의미구조가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세세하게는 아니지만, 그 전체적인 비평의 뼈대는 쥬디스 윌리엄슨에게서 빚진 바가 크다.이러한 작업을 통해 나는 디지털 011 ‘두 형사 편’과 ‘사파리 편’ cf에 숨어 있는 몰입과 해방의 의미구조를 밝혀 웃음 유발의 장치와 구매유도의 함수관계를 읽어낼 수 있었고(97년 1월21일호), 비비안 볼륨업의 ‘몸매편’에 숨어 있는 욕망과 결핍과 소비의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97년 4월8일호). 또한 미네라인 ‘천 가지 표정 편’에 숨어 있는 엿보기와 들키기의 변증법을 찾아내고 그것을 신세대의 의식구조와 결부시킬 수 있었고(97년 5월20일호), 오비 라거의 ‘간첩편’과 ‘모델은 그냥 갑시다 편’에 숨어 있는 토테미즘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97년 9월30일호).지금 광고비평은 우리나라 특유의 매체환경이라는 산을 넘어야 하는 것와 함께 좀 더 치밀한 관찰법과 분석 도구의 개발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매체사 종사자는 물론 광고주, 광고인, 소비자 모두의 안목이 더욱 성숙해지기를 기원한다. 광고비평의 활성은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소비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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