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한마디로 시작한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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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손으로 기억한다'는 옹기 장인... '장인, 생각하는 손' 특집에 동아줄

▲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2012년 9월, 나는 청송으로 차를 몰았다. 옹기를 만드는 이무남 옹을 만나야 했다. 웅덩이는 반드시 차야 넘치듯 인터뷰도 그렇다. 평이한 질문과 대답이 한참 오고간 후에야 내실 있는 내용이 나온다. 뭐든 일정한 시간을 요구한다.

“옛날에 전깃불이 어디 있노? 호롱불이제. 컴컴한 밤에 호롱불 켜놓고 
옹기를 만드는 기라... 밤이 깊어지면 일을 파하고 돌아가야 하는디 
재미가 붙으면 흙이 손에 착 붙어 안 떨어지는 기라...
내가 글을 아노? 어디 적어 놓지도 몬하고...  
별 수 있나? 작업한 거는 요 ‘손’으로 기억하는 기라...”

“요 손으로 기억하는 기라...” 순간 종이에 벤 듯 뭔가 스윽 지나갔다. 잠시 후 손가락에 피가 맺힌다. 종이 상처. 내겐 종이 상처 같은 말이었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이건 꼭 써야겠다’ 하는 멘트를 만난다. 놓치면 안 된다는 조바심마저 인다. 나도 몰랐던 인터뷰의 방향을 고속도로 표지판처럼 선명히 알려주는 언질.

이무남 옹을 만나기 전에도 전국의 여러 장인들을 만났다. 방짜유기, 쇠북, 삼베, 활, 나전칠기 등. 한 생애를 온전히 하나의 사물에 쏟아 부어 그 완성도를 최대치로 높인 분들. 말 그대로 장인이다. 그분들의 이름 뒤에 붙은 장인이란 호칭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님을 취재 과정에서 여실히 깨달았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나는 40초짜리 스팟에 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영롱한 구슬 같은 서사들이었다. 그런데 그 구슬들을 하나로 꿰는 실을 찾지 못해 고심하던 차였다. 삼사십 분짜리 특집으로 매듭을 짓고 싶었는데 쉬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무남 옹이 스치듯 언급한 한마디,,, “손으로 기억하는 기라.” 그 말이 나에게 구슬을 꿰는 실이 되어주었다. 미로를 벗어나는 실마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장인은 숙련된 노동자다. 그들은 머리로 구상하고 손으로 구현한다. 반복된 이 과정을 통해 수준 높은 성과물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손이 하는 일, 머리가 하는 일로 구분하고, 머리가 하는 일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만, 장인이야말로 손과 머리의 분리를 뛰어넘어 그 둘의 합을 이뤄내는 모델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물었다. 창의적과 창의력의 차이를 아느냐고, ‘창의적’은 머리의 일이고 ‘창의력’은 몸의 일이다. 손발의 힘이다. 창의적인 생각을 실현시키는 힘(力)은 결국 손과 발에 있다. 제법 먼 길인 머리에서 손과 발까지 거리를 좁혀야 창의력이 나온다. 그렇다면 장인만한 사례가 있을까 싶다. 사탕처럼 이리 저리 굴리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기획 의도는 쉽게 써졌다.

“흔히 장인은 ‘전통과 계승’이라는 관점에서 무형문화재로서의 보존적 가치 대상으로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특집은 장인을 ‘손과 머리의 통합적 상징’으로 해석해 풀이해 보았다. 손의 감각을 통해 들어온 작업의 정보를 머리로 종합해 다시 손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부단히 반복하는 사람들이 바로 장인이다. 장인은 그 과정을 통해 일 자체의 완성도와 함께,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유심히 살펴보면 비단 장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손의 감각을 발달시키며 나름의 경험적 지식을 쌓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의 손끝이나 요리사의 손맛, 맥박을 짚는 한의사의 손감각 등은 장인들만큼이나 손과 머리의 통합적 과정을 통해 높은 기능의 단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전문화, 분업화의 이름으로 ‘손의 일’과 ‘머리의 일’이 철저히 분리되어 서열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장인을 통해 그 둘의 통합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측면을 다시금 돌아보고자 한다. 더불어 머리만을 사용하는 '관념적 지식' 못지않게 손을 통해 습득하는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경험적 지식'의 중요성을 장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진지하게 성찰해보고자 했다.”

돌이켜보면, 옹기 장인인 그 분의 말 한마디가 내게는 동아줄이 되어 그해 <장인, 생각하는 손>이란 특집을 제작할 수 있었다. 눈물 한 방울로 사랑을 시작한다는 노랫말이 있는데, 나는 누군가의 멘트 한 줄로 특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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