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게이머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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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세상에 갇힌 유진우로 암울한 미래상까지 그려...시청자 끌어들이는 게임 세계

▲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현장 포토. ⓒtvN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30년 전에 나왔다면 지금 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PC통신이 막 시작되던 시절만 해도 증강현실이라는 개념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상상하는게 어려웠다. 1982년 나온 SF영화 <트론>처럼 ‘사이버 펑크’라는 장르 속에서 슬슬 디지털 세상의 ‘놀라운 신세계’가 그려지긴 했지만 말이다.

최근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영화가 그려내는 게임의 세계는 훨씬 더 현실감을 준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온 게임의 세계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이야기를 낯설지 않게 만든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포켓몬 고’ 같은 모바일 게임이 전 세계적인 화제를 이끌어내며 포켓몬 출몰 공간에 사람들을 끌어 모았던 사건은 게임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게임에 익숙한 세대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세계는 비현실로만 치부되지 않는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증강현실 게임에 접속한 유진우(현빈)가 거대 석상으로 있다가 살아난 나사르 왕국의 전사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과정은 게임을 할 때마다 치러지는 일종의 튜토리얼처럼 다가온다.

그 과정을 넘어야 비로소 레벨이 하나 올라가고, 그러기 위해서는 녹슨 철검이라도 구해 와야 하는 설정도 그렇다. 어느 카페의 화장실에서 녹슨 철검을 구해와 밤새도록 나사르 왕국 전사와 대결을 벌인 유진우는 아침이 되어서야 그를 죽이고 레벨 2에 도달한다.

게임에 몰입하고 동화할수록 가상세계는 실제처럼 다가온다. 처음에는 허공에 대고 휘두르는 검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차츰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롤플레잉 게임이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다가 캐릭터가 죽었을 때를 떠올리면 쉽다.

감정과 감각이 한없이 실감에 가까워지다 보면(이것은 게임이 게이머에게만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실감이 아니다. 게이머도 게임을 즐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게임을 실제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은 과몰입의 부작용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유진우가 겪는 과정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는 과정과 닮았다. 처음에는 놀라운 신세계에 빠져들어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게임에 몰두하지만, 과몰입하는 순간부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드라마는 이런 상황을 극적인 스토리로 그려낸다. 게임 속에서 라이벌인 차형석(박훈)을 죽였는데, 실제 현실에서도 그가 죽은 사체로 발견된다. 하지만 그 현장을 찾아 다시 게임에 접속한 유진우는 거기 죽은 채로 앉아 있던 사체가 일종의 NPC(Non-player Character : 유저에게 퀘스트나 아이템을 제공하는 가상 캐릭터)로 살아나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을 경험한다.

그리고 차형석의 NPC는 이제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유진우의 앞에 나타난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선율이 흐르고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좀비처럼 다시 살아난 차형석이 유진우를 공격한다.

이건 게임 세대의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유진우가 겪는 가상과 현실이 혼재되어 뭐가 가상이고 뭐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은 어쩌면 게임에 열광하는 이들에게는 유토피아처럼 보일 수 있다. 드라마에 대한 열광은 여기서 나온다.

반면 게임에 빠진 유진우가 폐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게임세대들이 맞닥뜨릴 디스토피아로 보여진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가상세계와 현실을 절묘하게 넘나들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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