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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글쓰기를 시작했다 ④]

▲ 업무가 아닌데도 메모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가만히 보면 뭔가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픽사베이

[PD저널=김민태 EBS PD] 매일매일 성장한다고 느끼는 감정만큼 좋은 기분이 있을까. 성장에는 재미와 의미가 절묘하게 섞여 있다. 글쓰기의 마력은 이 성장의 기분 좋음이 끌고 가는 힘에서 나온다. 쓰기가 일상이 되면 수시로 기분이 좋아진다. 더불어 감각기관도 바빠지는데 이는 곧 습관으로 자리잡는다. 필자도 글을 쓰면서 세 가지 습관이 생겼다.

첫째, 입으로 되뇌는 일이 늘었다. 흔히 수수께끼를 풀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데, 떠오를 듯 말 듯, 해결될 듯 안 될 듯한 상태에서 답을 찾아내려는 간절함에서 나오는 행위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을 보고, ‘작가는 왜 그런 말을 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나?’ 하고 스스로 되묻게 된다. 또 ‘내가 했던 생각이 뭐였더라?’ ‘그것이 이 구절과 무슨 관련이 있지?’ ‘아, 그건 아니구나….’ 하는 식의 질문과 경험이 서로 조각을 맞추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되뇌게 된다.

되뇌는 행위를 통해 머릿속에서 맴도는 질문을 상기하고 그에 맞는 데이터를 호출하는 것이다. 퍼즐을 맞추기 직전, 몰입은 최고조에 이른다. 되뇌는 과정은 왕성한 창조활동이다.

둘째, 눈과 귀가 예민해졌다. 글쓰기는 출력 행위다. 입력되는 정보 없이 출력도 없다. 사람이 허기지면 먹을 것을 찾기 마련이듯, 글을 쓰면 새로운 정보에 늘 결핍을 느낀다. 많이 쓸수록 정도는 더해진다. 정보를 얻기 위해 서점과 도서관을 드나드는 빈도가 늘어난다. 지하철에서 한가하게 스마트폰 볼 여유도 없어진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정보이면서 글감이 된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도 글감이다. 내 눈앞에서 재잘거리고 있는 그 사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어떤 지점에서 내 감정이 꿈틀거릴지 알 수 없다. 자연스럽게 경청을 이끈다. 경험이 누적되는 만큼 사람과 사물을 보는 태도가 바뀐다. 이렇듯 쓰기는 생활에서 익숙하게 보던 것도 낯설게 돌려놓는다.

셋째, 손이 바빠졌다. 찰나의 생각은 금방 날아간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복원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생각을 잡아두는 데 실패한 경험이 쌓일수록 기억을 붙잡아 놓기 위해 대비를 하게 된다. 게다가 글쓰기라는 목적까지 있으면 더욱 필요하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메모’다. 메모할 수 없는 상황(가령, 버스에서 하차하고 있을 때)에서는 까먹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되뇐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어떤 식으로든 메모를 한다. 그런데 업무가 아닌데도 메모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가만히 보면 뭔가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일을 내는 사람 중에 메모광들은 수없이 많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지독한 메모광이었다. 그는 떠오르는 생각을 날마다 기록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늘 메모장을 들고 다녔으며, 메모를 다시 주제별로 노트에 옮겼다. 빅토르 위고는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곧바로 공책을 꺼내 적었다.

나의 모바일 메모장도 항상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지나고 나서 봤을 땐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당시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저장한 기록이다. 남이 봐서는 의미 파악이 힘들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메모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그렇지만 쓰는 사람에게는 원석이자 계속해서 쓰기를 촉진하는 트리거가 된다.

글쓰기로 일어난 생활의 변화를 정리해보자. 쓰기는 오감을 동시에 자극한다. 얼핏 보면 수고로운 활동 같지만, 마다하지 않는 것은 나를 위한 자기목적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과정에서 보상을 충분히 받는다. 왕성한 피드백도 부지불식간에 이뤄진다. 무엇보다 나는 이런 활동이 즐겁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다. 말하자면 무엇이든 쓰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글쓰기는 그렇게 가슴 뛰는 하루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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