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하나만 들어줘’, 작은 부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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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가진 에밀리의 실종 사건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 지난 12일 개봉한 폴 페이그 감독의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스틸 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어느 날 갑자기 에밀리가 실종됐다. 언제나처럼 일에 쫓기던 에밀리는 그 날, 스테파니에게 전화를 걸어 가끔 그러했듯 자기 아들도 함께 픽업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스테파니의 아들과 자신의 아들을 함께 데려와 달라는 부탁, 처음도 아니었던 그 부탁을 끝으로 에밀리는 실종됐다.

요리, 육아 등을 망라하는 살림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사이트를 운영하는 스테파니는 에밀 리가 걱정이 되어 자신의 구독자들을 향해 에밀리의 실종과 진척 상황을 이야기하지만 에밀리의 행방은 그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가 돌아왔다. 물에 빠진 차에서 에밀리의 문신을 한 사체가 발견된 뒤였다. 그리고 에밀리의 모든 것을 갖게 되었던 스테파니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jean paul keller 의 ca s'est arrange 로 오프닝 타이틀을 장식한 이 영화는 무척이나 감각적이다. 화면의 절개와 색감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져 마치 60년대 프랑스 느와르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뭐랄까. 기분 좋은 착각이다. 이 영화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평화롭고 아늑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심장을 뛰게 하는 오프닝 타이틀이라니. 시작부터 마음을 솔깃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화려하고 세련된 스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에밀리 역을 맡은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공이 크다.

스테파니가 에밀리를 처음 본 것은 그 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스테파니는 학부모 참여 프로그램에 정성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그녀의 눈 앞에 포르쉐 911 문을 열고 멋진 수트에 입은 그녀, 에밀리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잠시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던 스테파니는 얼떨떨한 상태로 에밀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되고 그 날부터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던 두 사람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맞았고 각자의 비밀을 털어놓게 되면서 끈끈한 우정을 갖게 된다.

에밀리의 실종 이후 스테파니와 에밀리의 남편 그리고 에밀리의 비밀과 이면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조금 더 깊은 미스터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비밀과 이면이 드러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점점 더 얽혀 복잡해진다.

스테파니와 에밀리의 관계는 (극중에서 두 사람이 언급한 것처럼) <디아볼릭> 같기도 하고 그들의 마을은 <위기의 주부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에밀리의 비밀은 <빅 픽처>나 <얼굴도둑>이 주는 스릴러의 느낌을 주고, SNS를 통해 누군가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스테파니의 모습은 섬뜩함을 준다.

어쩌면 영화의 시작부터 당신은 이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흐를 것인지 눈치 챌 수도 있다. 이 영화의 결말을 일찌감치 예측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익숙한 클리셰가 많이 보이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영화에서 눈과 귀와 마음을 떼지 못한다. 마지막을 향해 척척 걸어 나가는 이 영화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영리하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중 하나는 아무래도 음악이다. 앞서 소개한 오프닝 타이틀곡부터 스테파니가 처음 에밀리의 집에 갔을 때 배경을 잡아주던 프랑스와즈 아르디의 ‘comment te dire adieu’, 자동차 안에서 일을 꾸미며 미소짓던 스테파니의 기분을 맞춰주듯 흐르던 세르쥬 갱스부르의 ‘bonnie and clyde’, 엔드 크레딧 곡으로 쓰인 ‘노 스몰 칠드런’의 laisse tomber les filles까지 어느 곡 하나 뺄 것 없이 적재적소에 쓰이면서 영화를 묘하게 이끌어 간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요소들이 집결되어 시너지를 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요소는 아무래도 음악이 아닐까.

물론 도그마 95나 의도적으로 영화음악을 배제하는 감독들이 있긴 하지만 영화음악은 영화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감동을 증폭시키고, 영화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토록 감각적이고 흥미진진한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 다른 음악들이 쓰였다면 아마도 감흥은 덜 했을 것이다.

재밌게 본 영화가 금방 잊히기도 하고, 볼 때는 별로였는데 나중에 계속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흥미롭게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음악과 장면이 떠오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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