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이 흐리니 기초의회도 '흙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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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정화 못하는 국회‧지방의회... 외유성 출장‧가이드 폭행까지 부끄러운 지역일꾼의 ‘민낯’

▲ 9일 경북 예천군의회 청사 앞에서 더블어민주당 경북도당 여성위원회 관계자가 '예천군의회는 조폭집단이냐. 전원 사퇴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9년 연초부터 외유성 출장을 떠난 지방의원의 가이드 폭행, 여성 접대부 요구, 거짓 해명에 지탄이 쏟아지고 있다. 경북 예천군의원들의 막가파식 행태로 ‘어글리’ 대한민국을 또 다시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최근 안동MBC가 입수해 공개한 버스안 CCTV 동영상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분명히 드러냈다.

보도된 버스 폐쇄회로 영상을 보면, 지난달 23일 박종철 예산군 의원은 버스 뒤쪽 자리에 누워있다가 앞쪽 자리에 앉은 가이드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오른손 주먹으로 때렸다. 가이드가 허리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막았지만 박 의원은 다시 가이드의 얼굴을 오른손 주먹으로 폭행했다.

버스 안에는 다른 예천군의원도 있었지만 박 의원의 폭행이 이어지는 동안 말리지 않고 구경만 했다. 보다 못한 버스 운전기사가 나서서 박 의원을 말렸다. 가이드는 박 의원에게 맞아 안경이 부서지고 얼굴에서 피를 흘렸다.

영상 공개에 앞서 가해자 박 의원은 마치 일정에 대한 의견차로 다툼이 있었던 것처럼 꾸몄다. 때린 것이 아니라 긁힌 것이라는 주장을 사과하는 자리에서 늘어놓았다. ‘부덕의 소치’ 운운 하면서도 거짓 해명을 일삼은 그의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행태에 자유한국당은 제명조치를 취했다.

따지고 보면, 기초의원들의 ‘무모한’ 외유는 국회의원들로부터 모두 배운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수족 노릇을 하는 지자체의원들에게 실질적인 공천권행사를 하는 국회의원들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언제까지 전통처럼 이어지는 이런 사건마다 흥분만 하고 있을 것인가.

피감기관에서 예산을 받아 외유를 가고, 심지어 국회 본회의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외유를 떠나는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함을 기초의원도 따라배웠다. 국회의원들의 관행적인 관광성 외유가 지자체 의원들의 외유를 정당화할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 분노는 일시적 감정 표출이 아니라 제도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자체 의원들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공당의 책임있는 자세 촉구와 함께 각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나서야 한다.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까.

먼저 국회의원들부터 관광성 외유출장을 없애야 한다. 여야 막론하고 여전히 베트남, 일본, 브라질 등 철따라 외유성 출장 예산을 미리 잡아놓는다. 예산 계획 단계에서 이를 원천봉쇄해야 하고 꼭 필요한 해외출장의 경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해외 현지 가이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회의원들은) 휴가철에 와서 예약도 없이 의회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막상 어렵게 가면 비서를 대신 보내고 차에서 자는 의원도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 특별활동비를 대폭 줄였듯이 국회의원의 낭비성 외유를 막아야 지자체 의원들을 막을 수 있다.

공기업도 낭비성 외유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지방공기업 평가위원으로 한 지역에서 이런 사례를 발견했다. 이들은 노사합의를 내세워 단체로 ‘캄보디아 선진견학’을 다녀왔다. 캄보디아 선진견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왔는지 확인했는데, 맹탕으로 놀고 온 것이다. 국민의 세금이 이렇게 국회, 지방의회, 지방 공기업 등에서 줄줄 새고 있었다. 지방 공기업 예산을 기획, 심의하는 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한통속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은 상대적으로 언론의 감시와 견제가 허술하다. 심지어 언론의 반발을 무력화하는 차원에서 기자를 외유에 동행하기도 한다. 기자가 동행하지 않은 예천군의회의 경우 관광성 일정으로 1명당 442만 원씩 총 6188만 원의 예산을 썼다. 예산자립도가 저조한 지방 자치단체들이 명분없는 외유에 이런 돈을 지출하는데 주민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예산기획 단계에서부터 시민단체를 참여시키거나 공론화가 필요하다.

심각한 문제는 국회의원, 지자체 의원들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불법‧탈법 예산으로 외유를 갔다가 도중에 돌아오거나 물의를 일으켰더라도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끝이라는 점이다. 국회윤리위가 있으나 유명무실하고 예천군의회의 경우 자유한국당이 거의 독식하다시피하다 보니 같은 동료를 징계하기가 어렵다. 잘못이 관행처럼 반복되는 배경이다. 주민소환 이전 단계에서 자체징계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절실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의원들의 거짓말 해명이다. 논란에 휩싸인 의원들은 녹취파일이나 폐쇄회로 영상 등이 공개될 때까지 대중을 상대로 거짓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 순간만 모면하려는 정치인의 거짓말을 지방의원들은 잘도 배운다. 한국처럼 거짓말이 자유롭고 처벌도 관대한 곳이 드물다.

국회의원도 지방의원이 자랑스럽게 가슴에 단 배지는 그래서 수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예천군 주민들이 자유한국당에 쏟은 애정이 국민적 분노와 국제적 망신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주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역의원들은 그 지역 주민들이 자초한 것이 아닐까. 

예천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윗물이 맑아도 아랫물이 흐린 경우가 있는데, 국회라는 윗물의 오염도가 자체 정화 수준을 넘어섰다. 공약대로 기초의원에 대한 공천권을 주민에게 돌려주지 않는 국회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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