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PD의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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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함 느낀 입사 초반 지나니 전파 사이로 보이는 알갱이들

▲ ⓒ픽사베이

[PD저널=강소연 KBS PD(<박원의 키스 더 라디오>연출)] “원래 이런 거 저장하는 성격이 아닌데, 이 글은 저장해 놓고 힘들 때마다 봐.”

지난 주말 대학교 다닐 때 활동했던 동아리 사람들과 부산에 있는 후배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같은 서울행 열차를 예매한 동기와 나는 마지막까지 부산역에 남았다. 바로 그때 동기가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글 하나를 보여줬다. 얼마 전 결혼한 선배가 우리가 보낸 선물에 전하는 감사의 문자였다.

“다들 힘들지만 열심히들 살고 있는 거지? 나도 그래. 지금 우리 시기가 그래야 하는 시기라고들 하니까 힘들어도 계속 걸어가고 있음에 의의를 두면서 열심히 가 보자. 뭔가 도착하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냥 그것 자체가 멋있는 것 같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를 말 그대로 허우적대며 걸었다. JTBC <SKY 캐슬>의 예서처럼 목표의식이 명확한 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가 못했다. 단순히 학교에서 배웠던 과목 중 국어가 가장 재밌어서 국문학과를 지망했고 그 외에는 정해진 게 없었다.

주위에서는 모든 것이 열려 있으니 젊음이 부럽다 했지만 그 무한한 가능성을 체험하기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적게만 느껴졌다. 동경하고 배우고 싶은 선배들은 늘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무너지고 흔들리는 나도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주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것도 그런 것이, 나는 뭐든 그럭저럭 해내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학생이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삶의 패턴이 B+ 범주의 학생이라고나 할까.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동기나 선배들의 결은 왠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일기에 그렇게 적었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 사이의 거리는 마치 도착이 3분 남은 지하철과 그걸 타기 위해 뛰는 나 사이의 간격 같다. 숨 멎을 듯 뛰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마지막 순간 꼭 내 앞에서 문이 닫혀버리는 것처럼.'

물론 그 걱정은 적중해 여전히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마음이 어지럽던 시절 나만의 결을 조금이라도 찾게 도와줬던 것이 그 동아리였다. 인문대에 속한 작은 교지 편집부였는데 1학년 때부터 졸업하기 직전까지 그곳에서 매년 몇 편의 글들을 써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자신감도 없던 당시의 나에게 표지까지 예쁘게 제본된 나의 글을 받아본다는 것은 퍽 고무적인 일이었다. 간지럽지만 스무 살 이후의 나의 존재는 거기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절대 잡히지 않을 것 같던 나라는 사람의 모습이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졸업 후 운 좋게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지만 막상 입사해보니 라디오 PD도 손에 잡히지 않는 일들을 주로 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매일매일 정하는 아이템과 원고는 하루치 전파를 타고 날아갔다. 방송이란 게 그렇게 주워 담을 수가 없는 거였다. 생방송이 많고 데일리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더 그랬다. 매일 DJ가 마이크로 내뱉는 말은 곧바로 전파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갔고 어쨌든 날아간 말들은 잡을 수가 없었다.

그게 좀 허무했던 시기가 있었다. 입사 초반이었다. 당시만 해도 노조 파업 전이라 1라디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도 큰 몫 했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데일리로 돌아가는 라디오라는 매체가 그랬다. 하루하루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방송인지 애매했다. 날아가버린 말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매일 사라질 것들을 만드는 사람이구나 하며 존재를 고민하곤 했더랬다.

무언가 조금씩 잡히는 것 같다고 느낀 것은 역시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그와 함께한 나의 역사가 쌓이면서였다. 애정하는 우리 팀이 회의한 내용이 방송에 담기고, 그게 즐거운 결과물이 됐을 때는 똑같이 공중에 날아가더라도 덜 허무했다.

프로그램 매분 매초 나의 숨이 녹아있다는 생각이 드니 전파 사이로 알갱이들이 보였다. 누구에게 가 닿아 그 사람 하루의 일부가 된다는 거, 생각해보면 얼마나 낭만적이야! 그건 사라져도 사라지는 게 아니고 무(無)여도 무(無)가 아니었다. 라디오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모든 것은 원효대사 해골물처럼 나의 문제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손에 잡히지 않을지라도 그 휘발되는 매일이 나의 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의 서문에서 서머셋 몸의 말을 인용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고 말했다. 라디오 제작이 하찮은 일도 아니고 아직 관조를 느낄 만큼 폼나게 일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만큼 의미가 깊어지고 여물어간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좋아하는 선배가 선물해준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연한 기회로 축구라는 운동에 발을 딛게 된 저자의 성적은 공식 경기도 아닌 연습 게임에서 1 어시스트, 1 골(심지어 자책골이다). 하지만 그 1 어시스트와 자책골 뒤에는 꽉 들어찬 마음이 있다. 눈물과 웃음, 고된 연습과 축구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있다. "여전히 드리블은 미숙하고, 트래핑은 불안하고, 킥은 부정확"하지만 그녀는 매번 즐겁게 축구를 한다. 프로의 이야기도 엄청난 성공신화도 아니지만 어떤 경기를 볼 때보다 더 많이 웃고 울었다. 그렇다. 즐거운 걸음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도, 어차피 완벽해지는 순간은 오지 않을 테니 그냥 걷기로 했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도 괜찮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당장 라디오의 미래를 짊어질 훌륭한 PD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걷다 보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길을 잘못 들게 된 내가 주막 같은 데서 잠시 쉬다가 샛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쩌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라디오적인 가치를 지켜나가는 PD가 되어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멋진 사람은 한 걸음부터', '길을 잃기 위해 여행을 떠나네’ 라는 멋진 속담(?)과 노래가 있듯이 말이다.

계속 걷고 달려야 하는 이유는 정말 아주 조금밖에 없다. 대충 정지해 있어도 시간은 흐르니까. 그래서 삶의 의미는 오히려 그 작은 걸음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가느냐이다. <SKY 캐슬>에서 50년을 산 ‘강준상'이 모든 걸 다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절규한 것처럼, 어쩌면 도착지란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재미를 향해 가겠다.

자신만의 골목길을 찾아 맵을 넓혀가려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아름다운 선배의 마지막 글자를 전한다. "그대들 멀리서 응원할게! 즐거움 찾으면서 잘 지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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