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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독도서⑩]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지난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쌍용차복직노동자에 대한 국가손배 임금가압류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국가손배 즉각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국가손배철회 범국민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주최 측은"10년 만에 복직한 노동자의 첫 임금마저 빼앗는 경찰, 국가손배 즉각 철회를 촉구한다"고 주장하며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철회 권고를 즉각 이행하라"고 말했다.ⓒ뉴시스

[PD저널=오학준 SBS PD(<그것이 알고 싶다>연출)] 10년의 시간 동안 서른 명의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어떤 이들은 불현듯 찾아온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고, 어떤 이들은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무게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렇게 잔혹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공장으로 돌아온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반쪽뿐인 월급, 그리고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었다.

그 서른 명이 유별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경찰의 곤봉에 맞아 몸에 난 상처들이 채 낫기도 전에 물대포처럼 밀려오는 손해배상 소송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원래의 일터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평범한 이들이었기에 더욱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살아돌아온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지난 24일 시민단체 ‘손잡고’와 심리치유센터 ‘와락’,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손해배상과 가압류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우울 증상, 자살을 생각해본 경험, 자살 시도 등이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너무, 자주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파업과 경찰의 잔인한 진압, 이어지는 정리해고와 손해배상 등의 압력은 파업 노동자들의 삶에 비슷한 상처들을 남겼다. 우울, 자살 시도, 궁핍, 사회적 고립과 같은 상처들은 떠난 이들뿐만 아니라 살아남아 공장으로 돌아온 이들에게도 모두 남았다. 공권력이 무관심한 사이에, 상처는 온전히 각자가 감당할 몫으로 남았다.

▲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

하지만 서른 개의 빈자리는 그 상처들을 감당하는 일이 피해자만의 몫일 수도 없고 몫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사회역학’의 시선에서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묻는다. 저자는 혐오, 차별, 고용불안, 재난과 같은 ‘사회적 상처’를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를 더듬고 이 세계에 대한 질문 없이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저자가 논의의 뼈대로 삼는 사회역학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을 밝힌다. 사회역학의 시선에서 보면, 우리 몸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들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된 행동이나 사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흔적들은 집단적인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사회역학은 재난이나 사고와 같은 공통의 경험이 어떻게 집단에게 작용하는지를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예컨대 그가 언급하는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폭염사회>는 그런 사회역학의 시선에서 시카고에 닥친 폭염에 접근한다. 폭염과 같은 재난은 얼핏 보기엔 무차별하고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그가 피해자들을 면밀히 조사해본 결과 고립된 자들, 신체적으로 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폭염은 ‘더’ 잔인했다. 그들은 폭염을 피할 수단이나 자산, 사회적 연결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을 돌볼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했다면, 폭염은 하나의 해프닝처럼 지나갔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와 비슷하게 저자는 사회역학의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관찰한다. 그는 사회 구조의 약한 고리를 이루는 이들이 겪는 질병들과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하나씩 조응시킨다. 해고 노동자들로부터 사회안전망 없는 사회를, 반도체 노동자들로부터 열악한 노동환경을, 소방공무원과 전공의로부터 부당한 인권 침해를 대응한다. 참사 생존자들, 성소수자들, 이민자들과 같은 ‘주변’집단에 속한 이들이 겪는 고통으로부터 다양한 층위의 차별을 짚어나가는 그의 설명은 일관적이고, 동시에 인간적이다.

저자가 보기에 우리를 둘러싼 사회 구조가 특정한 질환들을 유발한다면, 우리는 그 사회 구조 속 불평등이나 차별을 시정하는 방법으로만 이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인 고통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예컨대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지 않고도 노동3권을 온당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손해배상의 한도를 정한다거나, 차별금지법과 같은 규칙을 통해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식으로 구조를 바꿔나가는 방법들을 고민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건 고통에 대한 이해다. 물론 나는 겪지 않은 고통을 왜 그들은 겪고 있는지, 그들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국적과 나이, 성별, 직업이 서로 다르며 그렇기에 언제나 간접적으로만 서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안녕 히어로>에서 파업 노동자의 아들인 현우가 아버지의 선택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 7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비틀거렸던 모습을 떠올린다. 현우처럼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다, 끝내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선택을 존중하고 서로의 삶에 드리워진 고통의 흔적을 인지해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비틀거리는 사람의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로의 거리와 서로의 풍경을 겹쳐보려 했던 감독의 흔들리는 발걸음을 따라하는 것이 나에겐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이 방송쟁이의 ‘사회역학’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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