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꿈꾸지 않는, 가장 어른다운 마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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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틸다’, 천진한 아이들이 부르는 '어른이 되면'

▲ 뮤지컬 <마틸다>

[PD저널=권성민 MBC PD] 뮤지컬 <마틸다>를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는 노래는 단연 ‘어른이 되면’일 것이다.

어른이 되면 한없이 높디높은 나무에도 쭉쭉 뻗은 가지도 쉽게 닿겠지
어른이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던 어려운 질문도 풀릴 거야
어른이 되면 콜라 실컷 마시고 늦게 잘 거야 또 출근도 내 맘대로
아침이 오면 눈알 다 빠지도록 밤새서 만화책만 볼 거야
다 괜찮겠지, 어른이니까

어른이 되면 아무리 버겁고 힘겨운 짐도 버텨낼 수 있겠지 씩씩하게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 밤마다 날 괴롭힌 괴물들도 무찌를 수 있겠지 용감하게 어른이 되면

그네를 타는 아이들의 천진한 목소리로 울리는 노랫말을 듣고 있다가 눈시울이 젖어든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냐 얘들아, 어른이 되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려운 질문은 늘어만 가고, 버겁고 힘겨운 짐 앞에 씩씩하지 못할 때가 많아.

노래를 들으면 나는 왜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지 못했을까 쓸쓸해진다. 물론 아이들이 부르는 이 노랫말을 쓴 사람은 어른이고, 당연히 어른은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고 썼다. 그럼 실제로 아이들은 어떤 어른을 꿈꿀까.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더라. 혹은 어른이 되면 무얼 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하며 설렜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던 장래희망은 기억이 난다. 물론 제대로 된 과학자를 생각했던 건 아니다. 독수리 오형제나 태권브이에 나오는 남박사 오박사가 되어 악당들을 무찌르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을 뿐.

하지만 ‘어른이 되면’ 뒤에 따라 붙는 상상들은 그런 게 아니다. “우주선을 태워줘요, 공주도 되고 싶어요” 같은 막연한 꿈, 혹은 장래희망과는 다른 성질의 것일 테다.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너무 오래 전이라서? 생생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많은데 그것만 쏙 골라서 잊은 걸까. 그보다는 차라리 어릴 땐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아이들은 어른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고, 그 속에서 바쁘다. 그 세계의 시제는 늘 현재형이다. 아이들은 오늘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가장 흥미롭고 궁금하고 중요하다.

‘어른’은 너무 막연하고 먼 일이다. 상상도 경험의 재료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이고, 소망도 그 맛을 알아야 생긴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오히려 어른이 되어갈수록 늘어간다. 역설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는 날이 많으니까.

▲ 뮤지컬 <마틸다>

‘어른이 되면’ 무대를 자세히 보면, 주인공 마틸다는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같은 무대에 등장하긴 하지만 또래 아이들이 콜라 실컷 마시고 눈알 빠지도록 만화책 보는 미래를 노래하는 목소리에 마틸다는 없다. 어른의 자유를 꿈꾸게 만드는 것이 오늘의 결핍과 답답함이라면, 무책임한 부모 아래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기는커녕 아이 대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마틸다야말로 가장 간절한 사람일 텐데.

하지만 마틸다는 오늘의 답답함을 미래에 대한 기대로 달래는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약간의 똘끼’가 필요하다고 노래하면서. 마틸다의 눈길이 향하는 곳은 오늘 고통 받는 친구, 오늘 멍청한 부모, 오늘 못된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이다.

마틸다는 오늘을 산다. 그래서 ‘어른 됨’에 대한 어른의 생각을 들려주기 위해 아이들의 목소리를 빌린 ‘어른이 되면’을 마틸다는 노래하지 않는다. 과장과 희화화된 인물들로 가득한 무대 위에서도 마틸다는 가장 비범하고 비현실적인 인물이지만, 어른을 꿈꾸지 않고 오늘을 산다는 점에서 아이로서는 오히려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아이다운 마틸다는 역설적으로 그래서 가장 어른스럽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 허니 선생님이 초라한 오두막에서 부당한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맞서 싸우라며 부추긴다. 그런 마틸다에게 허니 선생님은 힘없이 대답한다. “난 너처럼 용감하지 못해, 마틸다.”

오늘을 사는 마틸다는 용감하다. 현실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눈앞의 문제들을 직면한다. “내 손으로 바꿔야지 나의 얘기”라고 노래하며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는 기다릴 줄도 안다.

우린 어른이 될수록 그런 용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 오늘에 집중할 수 있는 용기. 바라는 삶은 ‘어른이 되면’ 살겠다고 미뤄가면서. 그리고 그런 어른이 되지 못한 스스로를 슬퍼하면서. 허니 선생님의 고백이 유독 크게 들린다. 난 너처럼 용감하지 못해, 마틸다.

보아 뱀이 삼킨 코끼리를 볼 줄 아는 어린왕자의 시선은 실은 어른의 것이다. 어른이 생각하는 ‘순수한 아이’의 시선이다. 비행사가 어릴 적 그린 보아 뱀 그림은 자신의 눈에만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으로 보였을 거다. 또래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누구라도 모자라고 대답했을 그림이다. 그걸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어린왕자>를 읽은 어른이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아이들의 모습에 스스로를 덧입힌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입을 빌려 ‘어른은 이런 게 아닐까’하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저 모든 오늘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살필 뿐이다.

아이는 그렇게 아이의 세계에서 오늘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른들이 더 이상 어른이 되는 걸 미루지 말아야 한다. 마틸다처럼 용감하게 오늘을 직면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면 버겁고 힘겨운 짐도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밤마다 괴롭히는 괴물들도 용감하게 무찌를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비극적인 과거 때문에 상처를 안고 사는 허니 선생님이 힘겹게 버티는 마틸다를 만나자 자신의 소심함을 타이른 것처럼. ‘넌 선생이잖아, 잊지마, 도움이 필요할 거야, 강인하게 싸워줄 사람.’

무대 밖 현실에서 마틸다처럼 학대 받는 아이들은 어려운 책을 척척 읽어낼 수 있는 천재적인 두뇌도, 초능력도, 흥겨운 음악도 없다. 오로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있을 뿐이다. 그 모든 걸 가졌던 마틸다 조차 허니 선생님이 유일한 구원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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