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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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의 그늘
3‧1절 특집으로 돌아본 서대문형무소, 숙연해지는 열사들의 행적
  • 하정민 MBC PD
  • 승인 2019.03.05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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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한국관광공사 제공.ⓒ뉴시스

[PD저널=하정민 MBC PD(] 3‧1절 특집을 준비하느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다녀왔다. 역사관은 오전 내내 붐볐다. 취재를 마치고 나올 때쯤엔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조잘대는 아이들 손을 꼭 쥔 가족 무리, 등산복을 입고 둥글게 모여있는 어르신들, 누가봐도 데이트룩으로 한껏 멋을 내고 온 젊은 커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형무소 건물과 전시실을 오갔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이라 한산하겠거니 예상했던 게 부끄러웠다.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의 월요일 코너 ‘명랑한 역사’ 코너지기인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의 배려로 이날 취재가 이뤄졌다. 작가님의 해설을 들으며 30여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역사관 곳곳을 잠시 돌아봤다. 인파에 휩쓸려 몇 차례 작가님을 놓칠 뻔했는데, 무선 수신기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순간엔 작가님과 너무 멀어져서 지직거리는 소리를 따라 황급히 움직이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열심히 무언가를 적는 초등학생, 유심히 해설지를 읽고 있는 어르신, 모두 주말 이른 시간 게으름을 뚫고 나와 이 자리에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표를 끊고 형무소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우람하고 꼼꼼하게 잘 지어진 건물에 압도됐다. 견고하게 잘 지어진 옥사들은 무척 복잡한 감정이 들게 했다. 일제는 이 건물을 지으면서 당시 최신 건축 기술을 총동원했다고 한다. 심용환 작가는 건물이 감탄과 동시에 죄책감이 들게 하는 묘한 공간이라는 설명으로 해설을 시작했다.

빨간 벽돌 곳곳에 흰색 페인트의 흔적이 독특한 색감을 냈다. 원래 옥사에 화장실이 없었다가 해방 이후 옥사 벽면에 돌출된 형태로 화장실 공간을 만들어 붙였다가 떼어낸 흔적이라고 했다. 화장실 대신 변을 담는 통을 감옥방마다 두고 이용했다고 한다. 좁은 공간에 악취가 얼마나 심했을까 생각하며 방을 둘러보는데, 상상해본 냄새보다 서늘한 추위가 먼저 마음을 저리게 했다. 이 감옥방에선 어떤 마음들이 머물렀다 갔을까.

​​​​​​​​​​​​벽에 붙은 전시물에 눈길이 갔다.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작가 심훈의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이 인용돼 있었다. (이후 이 편지글을 ‘김제동의 스크랩’ 코너에서 소개했다.)

이곳에서 사형을 당한 강우규 열사는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의 마차에 폭탄을 던진 당시 65세였다고 한다. 당연히 청년이 벌인 일이라 생각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아 잡아가두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앳된 나이의 유관순 열사도 이곳에서 순국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사형장 앞에 섰다.

얇고 길게 위로 뻗은 미루나무가 보였다. 안내문에는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사형 집행 전 잠시 멈춰서서 나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곳이라고 한다. 유독 파란 하늘과 서늘한 기가 남아있는 이른 봄 날씨가 나무에 걸려 스산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사형장 뒤편으로는 몰래 시신을 형무소 밖으로 보낸 통로가 남아있었다.

심용환 작가는 일행을 사형장 건너편 건물로 이끌었다. 빨간 벽돌에는 총 자국이 잔뜩 나 있었다. 작가의 해설에 의하면 이 자국이 뭔지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고 했다. 다만 해방 이후 다급하게 벌어진 집단 학살의 흔적으로 추측한다고도 했다. 탐방은 이곳에서 마무리됐다. 급히 녹음 장비를 꺼내 참여자들을 붙잡고 소감을 묻는 인터뷰를 했다.

스튜디오에 작가를 다시 모시고 ‘서대문 형무소를 가다’는 제목으로 특집을 진행했다. 방송 말미에 그날 녹음해온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함께 들었다. ‘이렇게 힘겹게 지키고자 했던 조선을, 우리는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는지 시대를 돌아보게 된다’는 한 시민의 목소리에 모두 말문이 막혔다. IZ의 Over the rainbow를 배경음악으로 방송은 담담하게 마무리됐다.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행사와 특집이 이어진다. 우리 방송도 그 흐름에 있고, 이번 방송이 유독 특별하다고 내세울 만하진 않다. 다만 전 스태프가 형무소를 돌아보며 취재하고, 원고를 준비하고 녹음과 편집을 하는 모든 과정이, 매일 하는 일이지만 새삼스레 꾹꾹 눌러쓴 편지 같아서, 누군가라도 조금 더 들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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