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에 엄격해진 방송사, 성평등 방송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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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처벌 강화·성평등 교육 실시로 성인지 감수성 높아졌지만...쉽게 안 바뀌는 제작 관행

▲ 지난해 11월 열린 KBS 성평등센터 개소식의 모습. ⓒKBS

[PD저널=김혜인 기자] '미투운동' 이후 성평등 문화 정착에 나섰던 방송사들의 성평등 감수성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예전에는 그다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성희롱이나 성차별적 발언은 줄었지만, 성평등 프로그램 제작까지는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2018년 초 시작된 ‘미투운동’에 방송사들도 성폭력 관련 내규를 개정하고 성평등 전담 기구를 마련했다. MBC와 SBS는 노조 산하에 성평등위원회가 구성됐고, KBS는 지난해 11월 방송사 최초로 성평등센터 문을 열었다. 

MBC와 SBS의 경우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위를 '해고'까지 높이면서 성폭력에 대한 내부 경각심이 한층 높아진 상태다. KBS 성평등센터도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방안과 양성평등 교육 의무화 등이 담긴 ‘성평등기본규정’(가제)를 상반기 내로 발표할 예정이다.

성폭력에 대해 엄격해진 사회 분위기에 방송사 조직 문화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 방송사 중견 PD는 “술자리에서 농담을 하다가도 여사원이 불쾌한 기색이 있으면 바로 사과를 하는 등 입사했을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졌다”며 “사내 성폭력 내규가 엄격해졌고, 미투나 성 관련 아이템을 다루면서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방송사 신입 기자는 “사회부에 여성 비율도 높고 팀장이나 시경 캡의 젠더 감수성도 높은 편”이라며 “외부에서 취재원들을 만날 때 성희롱 발언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선배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항의를 해준다”라고 전했다.

이윤상 KBS 성평등센터장은 “제작진들과 대면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성 관련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 때 센터로 문의를 해온다”라며 "지난해 11월 <시사기획창>에서 ‘집장촌’ 대신 ‘성매매 집결지’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도 제작진이 성평등센터에 자문을 구한 결과"라고 전했다. 

하지만 예능·드라마에선 아직도 성차별적이고 고정화된 성역할을 반영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프로그램 제작에선 개선의 속도가 더디다. 

지난해 11월 방송된 KBS <끝까지 사랑>은 “‘미투’라도 하든가”라는 대사로 미투운동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정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은 <끝까지 사랑> 심의에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을 당해왔던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좌절을 줄 수 있는 한 마디였다"며 "방송사가 인권 감수성과 성인지 감수성을 많이 키워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SBS <런닝맨>도 여성 출연자를 지칭해 ‘꽃뱀’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가족이 등장하는 관찰 예능에선 가부장적인 모습과 위계적인 서열 관계를 언급하는 출연자들의 발언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관련기사 : "밥이나 차려" 왜곡된 성역할 재생산하는 '관찰 예능')

▲ 지난 5월 <런닝맨> 제작진 측은 "너 꽃뱀이지"라는 이광수의 발언을 "너 사기꾼이지"로 정정해 자막을 입혔다. ⓒSBS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TV 프로그램은 시대를 끌고 가야 하는데 고정된 성 역할을 강조하고 양성평등적인 시각을 담지 못하면 시청자들을 붙잡을 수 없다”라며 “젊은 시청자들이 지상파를 더 이상 보지 않는 이유를 제작진이 스스로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 의식은 있지만 오랫동안 누적된 제작 관행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방송사 내외부에서 다양한 스태프가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만큼 성인지 감수성의 차이도 드러난다는 의견이다.   

한 방송사 드라마 PD는 “드라마 캐릭터를 설정하면서 고정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자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작업하며 시청률 공식이 체득된 작가를 설득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라고 말했다.

3년 차 시사교양 PD는 “아직도 아이템 회의에서 미투운동이나 페미니즘을 다루는 주제는 다른 사회 이슈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며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 지금보다 여성 비율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효정 언론노조 MBC본부 성평등위원장은 “‘F등급(F rated) 영화처럼 여성 출연자가 많거나 여성들의 참여가 높은 프로그램에 F 등급을 표기하는 방법도 성평등 프로그램 제작을 권장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며 "드라마국에선 외부 강사를 초청해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는 등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무엇보다 제작진 개개인이 성평등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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