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과 특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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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과 특권사회
검찰 과거사위 이달 내 조사 결과 발표 예정... '법관 비리 사건' 은폐한 법원 진실 밝힐 수 있을까
  •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9.03.08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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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전경 ⓒ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꿈 많던 20대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권력을 가진 특권층 남성들에 의해 꿈과 희망이 짓밟힌 배우는 죽어서도 구천을 맴돌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하고 있는 것 같다.

고 장자연 씨는 29살이던 2009년 성접대 대상 명단인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의혹만 남기고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장자연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고인의 동료배우인 윤지오 씨는 최근 자신의 실명까지 밝히며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를 비판했다. 윤 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 리스트에는 국회의원과 언론사 고위층이 등장하고,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성추행을 했다는 목격담도 나온다.

수사기관은 왜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을까. 부실수사 의혹을 받은 이 사건은 검찰 과거사위원회로 넘어가 이달 말 진상조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과연 이번에는 진실이 밝혀져 장 씨의 원혼이나마 달래줄 수 있을까.

법치사회를 유지하는 중추기관, 수사기관이 특권층에 휘둘리면 진실은 사라지고 의혹만 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이미 배웠다. 진실의 희생은 일반 시민의 인권 유린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장자연 사건에 일반시민이 분노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법원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했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후진국은 법원의 법관들마저 타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우크라이나와 함께 사법부 신뢰도가 최하위권을 기록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대법원이 별도의 테스크포스팀(TFT)까지 만들어 타락한 부장판사의 범죄 사실을 축소하기 위해 운영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2016년 당시 ‘정운호 게이트’ 사건에서 정수현 부장판사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자 ‘법관 비리 사건’의 은폐‧축소를 시도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검찰 수사 정보를 공유하면서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판사와 접촉해 영장전담판사에게 들어오는 수사 정보를 빼내도록 지시했다.

이런 부당한 지시를 판사들이 10차례나 수사 관련 기밀을 빼내 법원행정처에 전달했고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주요 피의자인 김 판사는 뇌물공여자를 찾아가 허위진술을 부탁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불법으로 수집된 관련 정보를 영장전담 판사에게 보내 영장심사 가이드라인으로 활용까지 했다는 것이 보도의 주요 내용이다.

판사가 뇌물사건에 연루되자 대법원이 나서서 법정의를 스스로 훼손한 놀라운 사건이다. 일반 국민에게는 ‘법 앞의 평등’ ‘법집행의 공정성’을 주장하며 강력한 법의 파괴력을 추상같이 해내는 법원이 자기식구가 연루되자 내부적으로 이런 반법치주의 행태를 벌이는 데,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앞장섰다는 것은 사법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법관 한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법적 지위를 갖고 오직 법률과 양심에 의해서만 재판을 하도록 신분을 보장하고 있는데, 소수의 양심적인 판사들 외에는 대다수는 부당한 지시에 승복했다는 점이다.

힘없는 일반 시민에게는 무시무시한 판사들이 동료판사의 비리나 대법관의 부당한 지시에는 법정의나 양심을 저버렸다는 점이다. 이들의 부도덕한 직업관은 판사직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재판 자체를 불신하게 만든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징계 대상 법관들의 이중 잣대는 시민의 공분을 부르는 두 번째 이유다. 이런 판사들에게 재판을 받게 되면 법정의보다 힘의 논리, 특권층을 대변하는 변호사의 논리에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진실을 밝혀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과 법원 등 사법부의 타락은 비록 일부라고 하더라도 법정의를 실종시키고 소시민의 인권을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켜 특권사회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법치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퇴행하게 되는 법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은 사법부의 절대적 신뢰를 전제로 한다. 민주 시민이 분노해야 할 세 번째 이유다.

언론은 그동안 수사기관의 문제에 집중했을 뿐, 판사의 비리나 판결 내용, 양형의 적정성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감시가 느슨했다. 일부 판사의 일탈조차도 용납해서는 법치주의를 구현할 수 없다. 더구나 대법원, 대법관의 일탈행위나 불법행위는 취재도 어렵지만 제보를 받더라도 용기 있게 보도할 수 있는 언론이 얼마나 될까.

특권사회는 특권층에게만 살기 좋은 세상이다. 법도 제도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특권층의 일탈, 불법행위에 언론 감시 역할이 더욱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언론 스스로 권력층 행세를 하는 일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절망 속에 젊은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가해자들은 여전히 건재하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피해자도 있고 목격자의 분명한 증언도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장자연 리스트 관련자들을 뒤늦게 기소하더라도 특권판사들이 과연 법과 양심에 따라 제대로 판결할 수 있을까. 타락한 일부 법관, 대법관의 비굴한 모습이 던지는 현실이 왜 사법부 개혁이 필요한가를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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