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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오리엔탈리즘’ 확대 재생산한 미디어, '갈등 고착화' 성찰 부재

[PD저널=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은 서구 중심주의의 근원과 폐해를 잘 파헤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은 서양인들이 동양을 볼 때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는 의미인데, 이것에는 동양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인식이 담겨있다고 했다.

그는 또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인에 대비되는 서양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즉, 서양인들이 열등한 동양에 대비되는 우월한 서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도록 했다는 주장했다.

이러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관점은 남북관계에도 유효할 것 같다. 서양인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편견보다 더욱 심하게 남한사람은 북한사람을 선입견을 갖고 보고 있으니, 이 편견을 북한 오리엔탈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남한사람들이 북한사람들을 볼 때 부정적인 선입관이 있으며, 이것은 북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북한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한 남한의 인식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 오리엔탈리즘은 북한사람에 대비되는 남한사람의 우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다양한 남북간 언론 교류와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남북한 언론 교류와 협력의 틀을 바탕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남북한 간 단절과 반목을 성찰하고 해소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남북간 언론교류와 협력은 지지부진하며, 지난 시기 남한 언론의 북한보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없다. 그저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가시적인 성과 소식만 기다리며 미디어 이벤트만 기획하고 있는 형국이다.

▲ 지난해 6월 연합뉴스 주최로 열린 '통일시대에 대비한 남북 언론 교류 활성화 방안 공동 토론회'에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PD저널

한반도는 이제 휴전을 넘어 종전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휴전체제에서 적을 보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종전 이후에 상호협력을 통해 공동번영을 이루는 동반자로서의 새로운 언론 보도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저널리즘의 노력은 없다. 그저 미디어 이벤트에 물량을 쏟아 붓고 북한에게 경쟁적으로 취재권 등을 요청하여 이른바 한 건 해보자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언론 교류와 협력의 틀도 신문과 방송이 중심이 된 오래된 패러다임에 놓여있다. 신문과 방송 중심의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새로운 방송통신 교류협력의 가능성을 제대로 논의하고 있지 않다.

사실 남북이 정상회담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한반도 평화 구상은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함축한다. 한반도의 변화는 이제 휴전체제에서 종전체제로 가는 대전환의 과정에 있다. 그렇다면 획기적인 평화체제를 맞아 저널리즘도 새로운 지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지속된 저널리즘 속의 분단 이데올로기를 씻어내고, 새로운 저널리즘의 표준을 만들어내야 한다. 방송사에서도 이벤트를 넘어 남북 간 공동의 기억을 위한 기획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미디어 속에 담겨있는 냉전적 고정관념과 상업주의 제작 관행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평창올림픽 보도에서 보여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과 관련한 내용은 센세이셔널리즘의 극치였다. 서양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에서 동양의 여성을 바라보는 관행이 북한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에서 현송월 단장을 바라보는 관행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우려도 든다. 그러한 보도는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과정 속에서도 여기저기 나타난다.

미디어는 이제까지 북한 오리엔탈리즘을 일상적으로 재생산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북한 오리엔탈리즘은 다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구조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미디어는 그 스스로 북한에 대한 어떠한 인식을 만들어왔는지를 한번쯤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냉전시대, 그리고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재냉전시대로 인해 우리 사회에선 분단체제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더욱 고착화됐고 집단 간 갈등을 낳고 있다. 동양을 부정적으로 보는 오리엔탈리즘처럼 우리 사회에도 북한을 적대적이거나 열등하게 보는 북한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했다.

분단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디어가 만들어온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남북교류와 협력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전의 현재 상황에서 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런 인식의 토대가 마련되어야 진정한 남북 언론 교류와 협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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