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정치인 '막말 중계'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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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받으려는 정치인들 막말 릴레이...도구로 활용되는 언론의 책무는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3일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 심판합니다' 행사를 하고 있다. 지역 5·18 단체 등 시민단체는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촉구하며 반대 집회를 열었다.ⓒ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치인들의 저급한 용어나 막말 수준은 그 시대 정치의 현주소다. 오직 대립과 갈등을 표출하중인 국회의원들은 길거리로 나가 패거리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정치인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일부 언론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최근 ‘5.18’ 망언으로 국민적 지탄과 분노를 가져온 것을 비롯해 ‘문빠, 달X’ ‘사이코패스’ ‘한센병 환자’ 등 국회의원 입에서 나온 말은 시정잡배 수준이다. 정치인의 막말 논란은 왜 악화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자극적 어휘로 보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점잖게 이야기하면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고 존재감도 미미해진다. 대신에 튀는 말, 극단적 비유 등을 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면 뉴스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TV 카메라가 조용히 시위하는 모습보다 괴성을 지르는 시위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역사적 평가가 끝난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망언’을 길거리가 아닌 국회에서조차 반복하는 이유는 여기다 하나가 더 붙는다.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효과까지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망언은 실수에서 비롯되지만 정치인, 의원들의 망언은 계산에서 출발한다. 망언으로 표를 까먹는다는 판단이 들 때는 즉각 윤리위를 소집해서 출당 등의 징계를 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복당 시기를 조율한다. 자유한국당 ‘이부망천’의 장본인 정태옥의 실제 사례다.

‘5‧18 망언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징계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황교안 한국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징계 전에는 5‧18 행사에 오지 말라는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무릅쓰고 황 대표는 참석을 공언했다. 징계가 가져올 당내 반발이나 ‘태극기 부대’ 등의 지지자들의 반발이 지지 기반 이탈로 이어질 것 같으니까 형식적인 징계를 하거나 아예 징계를 하지 않는 것이다.

광주에서 항의 받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면 지지층 결집이라는 이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광주행을 강행하는 의도도 있다. 방문지역 시민에 대한 기본 예의를 갖추지 않고 굳이 가겠다는 데는 이런 정치적 계산 끝에 ‘길거리 대권놀음’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야 정치적 이해관계로 움직이지만 언론이 굳이 여기에 도구로 활용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정치인들의 비윤리적 행보나 막말 퍼레이드를 중계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KBS가 망언을 망언이라 말하지 못했다"는 KBS 내부 비판이 제기됐다. 나 원내대표의 여성혐오 발언은 발언 당일인 11일부터 도마 위에 올랐으나, KBS가 이를 막말이라는 이유로 외면했다는 지적이었다. 정치인의 막말을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침묵했다는 말이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성명을 내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비난하기 위한 단어로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일베'의 언어를 대중 연설에 사용한 셈"이라며 "KBS는 발언 당일인 11일은 물론 논란이 커진 그 다음날(12일)에도 관련 내용을 9시 뉴스에 다루지 않았다. 9시 뉴스는 물론 13일(월) 아침광장에서도 리포트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지적에 KBS 보도책임자는 "정치인 막말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비판하거나 두 가지 보도방식이 있는데, 해당 건은 무시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치적 논란사항이나 민감한 이슈의 경우, 과거 KBS는 무보도 전략으로 스스로 공영방송의 책무를 포기했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막말을 무시한 건 정치인들의 막말에 묵인 동조한 결과로 볼수도 있다.

▲ 지난 16일 YTN <더뉴스>에 출연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한센병'에 비유해 막말 파문에 휘말렸다. YTN 자막뉴스 화면 갈무리 ⓒYTN

지난 16일에는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비유해 구설수에 올랐다.

김 의원은 이날 오후 YTN 방송 <더뉴스>에 출연해 “상처가 났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방치해 상처가 더 커지는 병이 한센병”이라면서 “만약 문 대통령께서 본인과 생각이 다른 국민들의 고통을 못 느낀다면 이를 지칭해 의학 용어를 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전날 정의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국회에서 5·18 특별법을 다루지 않고 다시 광주에 내려가겠다고 발표한 것은 사이코패스 수준”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함께 방송에 출연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논쟁하다 이같이 말했다. YTN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국회의원들의 막말에 멍석을 깔아준 셈이 됐다.

국회의원들이 방송사로 출근해 정치토론이나 하고 있도록 만든 방송사도 문제다. 국회는 비워두고 방송가를 기웃거리는 국회의원들은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셈이다. 이들이 저급한 어휘나 부적절한 비유를 쏟아내는 도구로 방송이 전락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무책임하게 막말 중계만 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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