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중국의 만만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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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중국의 만만디 단상
  • 최상재/SBS 교양국 PD
  • 승인 2004.02.04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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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연초에 중국의 동북지방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전국이 공사 중’이라는 말대로 장춘, 하얼빈 같은 도시에도 고층빌딩들이 치솟고 있었다. 상해나 북경보다 오히려 중국 변방의 도시에서 중국경제의 급속한 성장을 절감할 수 있었다. 여정 중간에 시간이 있어 장춘의 한 재래시장을 구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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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0도에 가까운 추위에도 시장엔 물건이 넘쳐나고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우리 같으면 살인적인 추위라며 바깥 출입조차 꺼릴 날씨였지만 사람들은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졌는지 긴 입김을 내뿜으며 흥정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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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은 또순이들로 온 시장이 가득했다. 우리의 70년대가 이랬을까, 흑백사진들이 머릿속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일행의 왁자한 웃음이 터졌다. 남루한 차림의 아낙이 삶아서 털을 뽑은 오리 한 마리를 옆구리에 끼고 느릿느릿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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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잘리고 물갈퀴 달린 두 다리는 쭉 뻗은 채 꽁꽁 얼어붙은 ‘누드 오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아낙의 모습이 참 우습게도 보였다. 오리 다리에는 서툰 글씨로 20원이라고 쓴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오리를 잡아 시장에 팔러 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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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일행만 재미있게 바라볼 뿐 시장 사람들 중 누구하나 아낙과 오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끝없이 늘어선 번듯번듯한 상점과 억센 남자들로 빽빽한 좌판에는 그 아낙이 낄 자리가 없었다. 한 시간 가량 시장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아낙은 시장입구에 멍하게 서 있었다. 여전히 ‘누드 오리’를 옆구리에 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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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맡은 중국 동포가 혀를 차며 한 마디 했다. “저래 하고 있으면 오리가 팔리겠는가? 개방경제하니까 이제 저런 사람들 점점 없어집니다.” “앞으로 저런 분들은 살기가 더 힘들어 질텐데요?” “그래도 우리가 잘 살게 되면 저 사람들한테도 다 효과가 돌아가니까 일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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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졌다. 앞으로 저 아낙은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든 시장 좌판 하나라도 마련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활기차게 살아갈까? 아니면 예전보다 더 열심히 오리를 키우는데도 왜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지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늙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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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중국인들은 본격적인 ‘잘 살기 경주’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달리는 방법을 몰라서, 달리는 능력이 부족해서 경주에서 뒤쳐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앞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뒤쳐진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잘 살면 모두가 잘 살게 된다고,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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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기 경주가 시작된 지 40년, 한국은 중국인들의 눈에는 꽤나 잘사는 나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경주에 뒤쳐진 사람들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난하다. 밥을 굶는 노인과 아이들, 최저 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노동자,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한국의 농민들을 중국인들은 알고 있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벌금을 낸다는 사실을, imf 시절에 병약자들이 제일 먼저 해고돼 몇 만원의 신장 투석비가 없어 꺼멓게 죽어간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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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의 시장에서 만났던 아낙은 그날 오리를 팔았을까? 하루 종일 시장을 서성이다 그냥 집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바삐 지나치던 시장 사람들 속에 서 있던 아낙의 무표정한 얼굴, 혹한에 장작개비처럼 딱딱해진 노란 오리, 그리고 새파란 그녀의 손이 기억에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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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천천히 가라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하면서 달리라고, 우리는 그렇게 못했지만 너희는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40년 먼저 출발했지만 여전히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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