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의 눈> ‘꺼삐딴 리’가 다시 생각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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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1. 세상이 하도 어수선해서인지 오래 전에 읽었던 ‘꺼삐딴 리’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1962년 전광용이 <사상계>에 발표했던 단편소설이다. ‘꺼삐딴’은 영어의 ‘캡틴’에 해당하는 러시아말로 ‘꺼삐딴 리’는 소설의 주인공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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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삐딴 리’는 한마디로 변절적인 순응주의자, 즉 카멜레온 같은 인물을 가리킨다. 의사인 꺼삐딴 리는 일제 시대에는 친일파로, 해방 직후의 북한에서는 친소파로, 그리고 월남 후에는 친미파로 시류에 잘도 편승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다. 의사인 자기 직업을 이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류사회에 편입하고,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며 출세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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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현대 한국 사회의 비극적 구조와 당대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으로 사회적 주목을 받았고, 발표되던 해에 동인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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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0여년 전 한국 사회의 지식인을 풍자한 이 ‘꺼삐딴 리’가 다시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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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꺼삐딴 리는 의사이다. 의사란 사람의 병을 잘 진단해 그 병을 고쳐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꺼삐딴 리는 환자가 찾아오면 그 환자의 병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환자의 직업과 경제력, 다시 말해 자신의 출세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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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오늘도 ‘꺼삐딴 리’는 변함없이 존재한다. 아니, 수적인 면에서 1960년대보다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소위 지식인, 혹은 사회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사’자 붙은 사람들이나 ‘좀 가진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대다수의 이런 ‘지도층’ 인사들은 변함없이 해바라기처럼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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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학생들 잘 가르쳐서 미래 사회를 가꿔야하고, 문화 예술인들은 이 시대의 문화적 토양을 기름지게 해야하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사명감을 갖고 국민을 위해 공복의 역할을 다해야만 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마음으로 그야말로 멸사봉공하는 자세를 가져야하고, 언론인들은 권력 감시 본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인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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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독재정권이 끝난 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10년 동안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듯하다. 권력의 분산을 외치는 노무현 정권에서도 사회를 이끌어야 할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기보다는 권력과 가까운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기회를 엿봐왔던 사람들이 변함없이 ‘코드 맞추기’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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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치권과 정부 요직을 두고 이른바 ‘러브콜’이 있을 때 의연하게 이를 거부했다는 얘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자리에 낙점되면 대부분 감읍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바쳐 일하겠다고 일성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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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권력이 좋은가. 수십년 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한순간에 접어 버리고, 권력의 길에 나선다. 덕망있는 교수도, 이름 석자 날리던 언론인도, 또 문화 예술인이나 벤처 기업인들도 다들 그렇게 변신한다. 요즘엔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대놓고 정치권력의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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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온의 기술을 가진 ‘꺼삐딴 리’가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한 우리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권력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제발 날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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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대 c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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