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시평]지식인 역할, 혼돈의 근원에 대한 성찰에서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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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공식 자리에서는 언제나 확실한 입장을 견지하는 모 교수와 등산을 하면서 나눈 대화 한마디이다. “정말 요즈음 세상살이는 꿈꾸는 것 같습니다. 자주 현실이 꿈처럼 다가오고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조 교수는 어떠시오?” “예. 저도 그렇습니다. 일주일, 한 달 앞을 내다 볼 수 없고 가까운 미래조차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가 불쑥 불쑥 내 앞에 나타나니 오리무중 속을 헤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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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사람들이 필자와 유사한 느낌을 갖고 살고 있으리라 본다. 사회를 분석하고 성찰하여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학자들이 이런 지경인데 일반인은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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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사람들은 경제는 엉망이고 일자리는 줄어 실업자가 늘어만 가고 신용불량자는 400만에 육박하고 있는 마당에 정치는 완전 무질서, 혼돈 그 자체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점진적 개혁 대신에 혼돈이 발생하는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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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치가 사회 어느 부문보다 낙후하여 정치인이 생산하는 정치서비스라는 공공재는 상당수가 불량품이다. 대다수 한국 사람이 동의하듯 우리 정치는 개혁되어야 한다. 신뢰할 만한 대안 세력이 존재한다면 정치세력간의 자연스러운 교체과정을 통해 점진적 개혁이 가능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남북분단 상황에 원인이 있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 불행하게도 보수세력을 대신하여 집권하는 혁신세력은 현 정권처럼 미약한 좌파의 변두리 집단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약한 기반을 가진 집권 세력이 집권하는 일이 필연지사라고 했을 때 이 세력이 정치를 개혁하는 길은 스스로를 먼저 진흙 밭에 던지고 그럼으로써 상대를 유인하여 견고한 기존 정치구조, 인적 구성에 타격을 가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무이한 방책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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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제에 있어 혼돈이 발생하는 일도 유사한 이유 때문이다. 투자위축, 일자리 문제, 제조업공동화문제, 비정규직 문제, 신용불량자 문제 등등 그 어떤 것도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그 동안 대안연대회의가 누차 강조했듯이 우리가 imf위기를 너무 조급하고 급진적으로 시장중심의 개혁을 통해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점을 환기하자. “공산당을 때려잡자”는 구호가 외부의 적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을 표현했다면, “우리 것은 모두 나쁜 것이다. 글로벌스탠더드만이 살길이다”는 구호는 아마도 일류역사상 보기 드문 자기비하와 자학의 예가 될 것이다. 냉정하게 자기를 뒤돌아보되 성급하고 지나친 자기비하는 광기이며 자기에 대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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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불거지고 있는 화급한 경제문제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러한 잘못된 태도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외국자본, 말하자면 오랑캐를 개혁세력이랍시고 상전 모시듯 무분별하게 끌어드린 일이나 급진 시장 개혁이 시행된 일, 그리고 그에 따른 작금의 혼돈 등등도 근본적으로 보면 우리 내부의 대안세력의 취약성, 그들의 미약한 발언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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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필자는 우리시대의 혼란은 문제의 해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회 각 수준에서 상호 견제하고 비판하는, 그러면서도 상호 소통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적 세력의 부재에 근본원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시대의 지식인의 일차적인 역할은, 자기가 마련한 정답을 전문가라는 권위를 내세워 사회에 들이미는데 있다기보다 미성숙한 제반 정치-사회세력들의 발언을 고취하고 의견이 다른 세력들을 대화와 설득으로 유도하여 이들이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래야 사회가 극단과 조급함, 혼란에 빠지는 일을 피하게 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의 역할은 보다 바른 해답을 주는데도 필요하지만 극단과 혼란을 피하면서 사회발전을 기하는데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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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사회의 다양한 견해가 소통하는 공론의 장으로서의 언론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언론의 계몽적 역할을 고려할 때 현재는 미약한 세력의 견해라고 해도 의도적으로 강력한 세력의 목소리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어 조명하는 일은 공익적 관점에서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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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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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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